각각 경험하기도 어려운 직장에서의 사건들을 한 직장을 다니는 십년 간 겪었다. 비슷하게 직장을 다니고, 연차를 쌓는 친구들이 보기에도 나중에 직장 썰로 풀면 재밌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당시에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원망한 시기도 있었지만, 매도 어릴 때 맞으라고 인생의 맷집을 단단히 키운 20대였다.
겪을수록 난이도가 올라갔던 인생의 맷집 썰을 푼다.
1.
입사 1개월 차, 30여 명의 유통점 지점장 취임식에 홍보팀 신입으로 동기들과 참석했다. 식사 중 C홍보실장은 갑자기 나를 지목해 대표로 리더들 앞에서 인사하라고 했다. 숫기 없고 대학생 티도 못 벗은 내게 아득한 순간이었다.
동기들의 안쓰러운 눈빛 속, 깊은 심호흡 후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인사와 포부를 외쳤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ooo, ooo, ooo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부끄러움의 껍데기가 벗겨지는 듯했고, 그날 맷집 10단계가 올랐다. 이후 '쫄지마 뭐 어때'라는 마인드가 장착되어 직장생활에 임하게 되었다.
2.
3년차 주니어 시절, 팀 내 C홍보실장의 비리 사건이 터졌다. 감사실 조사 중, 회사는 우리에게 C실장을 직장 괴롭힘으로 고소하라 종용했다. 사내 변호사는 우리를 돕는 척했지만, 실제론 회사의 골치 아픈 일을 우리에게 떠넘기려는 눈빛이었다. 회사의 불순한 의도를 깨닫고 고소를 단호히 거절했다.
결국 C실장은 권고사직 되었고, 우리는 각 계열사로 이동했다. 풋내기였던 나의 직장 맷집이 100단계쯤 올라간 경험이었다.
3.
입사 8년차, 당시 우리 조직은 지주사와 도급 관계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주사가 도급 비용 절감과 통제를 위해, 우리 조직을 특정 계열사로 위장 도급 시키려 했다. 계열사 대표조차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할 뿐이었다. 이상함을 감지했고, 이대로 가다간 특정 계열사로 이동이 불가피했다.
Q 동료가 나서서 지인에게 노무사 무료 상담을 했고, 이를 통해 명백한 노무 이슈임을 확인했다. 즉시 관계자들에게 노무 이슈를 담은 전체 메일을 보냈다. 갑작스레 진행되던 위장 도급 계획은 어야무야 없던 일로 끝났고, 우리 조직원들은 원래 계열사에 남을 수 있었다.
회사에서 나를 지켜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으며, 지난 맷집 덕에 더 높은 난이도를 넘어설 수 있었다.
회사에서 나를 지키는 법을 깨달았던 순간들, 그 모든 맷집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나를 단단히 잡아준 것은 다름 아닌 지난 시련들이었다. 삶의 난이도는 언제나 높아지겠지만, 그만큼 나를 성장시키고 더 큰 보상을 안겨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맷집은 단순히 버티는 힘이 아니라,
더 높은 곳을 가기 위한 디딤돌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앞으로 인생에 어떤 맷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editor 여
글 쓰는 일로 10년을 일했다. 대기업 에디터이자 홍보팀 파트장으로, 1,000여 명을 만나 기록하며 동기부여를 얻었던 10년 커리어가 2025년 잠시 멈췄다. 임신과 출산, 육아라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제 아이와의 만남으로 시작된 새로운 챕터 속에 성장과 동기부여를 기록해 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