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가족여행기 3편: 맛있어서 흥하는 오사카

by 심쿵이애비

일본, 우리는 서로 닮았어요.

일본에서 오사카를 수식하는 말 중 하나가 '먹다가 망하는 도시'다. 오사카는 예부터 물류의 중심지였다. 오사카 시내를 가로지르는 요도가와 강은 바다와 수도인 교토를 수로로 이어주는 기능을 하였고, 오사카는 운하도시이기도 해서 물류가 발달되었다. 바다와 접하고 있어 수산물이 풍부하기도 했다.


근대에는 오사카와 같은 생활권인 사카이와 고베가 개방항이 되면서 서방의 문화와 함께 식음료도 오사카를 통해 일본에 들어오면서 서양 음식이나 디저트가 오사카에서 현지화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먹고 살기 어려운 근대 조선인이나 현대 한국인들이 오사카로 많이 이주하면서 야키니꾸같은 한국식문화도 일본의 식문화와 혼합되어 전파되었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먹기 위해 일본을 가려면 오사카로 가는 것이 맞다.


우리가 계획한 음식은 많았지만, 성인 남성 한 명과 성인 여성 한 명, 초등학생 여아 한 명이 먹을 수 있는 음식량은 많지 않다. 일본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떠오르는 스시와 사시미는 아직 심쿵이가 즐기지 못하는 메뉴라 과감하게 제외했다. 만약에 오사카에서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난 타코야키와 우동, 일본식 커리를 이야기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예전에 정말 맛있게 먹었던 일본식 커리는 동선이 맞지 않아 방문하지 못 했다. 그래도 총 4박의 일정 동안 여러 메뉴를 먹을 수 있었고,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우메다 한큐백화점의 <동양정>에서 먹은 함박스테이크다.


일본은 스스로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루어냈고, 제국주의에 한 축이 되었으며 지금은 초강대국인 미국과 치열한 전쟁을 하였고, 비록 패전국이 되었어도 이내 황폐한 나라를 재건하고 경제 초강대국이 된 것에 자부심이 큰 나라인 것 같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이 모든 것으 시발점이 되었던 '아시아 최초 근대국가'라는 것에 자부심이 매우 큰데, 일본 스스로 자신들이 서방국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실제로, 일본 곳곳에는 근대화 시절 양식의 건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한국은행 본점이나 옛 서울역의 모습과 유사한 양식의 건물들이다. 또한, 서구의 음식을 일본식으로 변형하여, 이제는 고유명사가 된 메뉴도 종종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서구의 커틀릿을 변형하여 만든 돈카츠(돈가스)나 크로켓을 변형한 고로케, 커리를 변형한 카레라이스 등이다.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일본 총리와 일본 최초의 돈카츠 집으로 알려진 곳으로 가서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이것 역시 일본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서양의 커틀렛을 가져와 돈카츠를 만들어서 너희에게 전해준 것처럼, 너희는 우리 덕분에 근대화를 한 거야.'


이렇게 해석될 여지가 다분한데도 그 자리에서 쏘맥을 말고 있었다는 우리나라 대통령...말을 아끼겠다.


뭐, 어찌됐든 함박스테이크 역시 일본 근대화를 상징하는 음식 중 하나다. 일본은 천년 넘게 육식이 금지된 나라였다. 메이지 유신 즈음, 서양인 옆에 있는 일본인들은 난쟁이처럼 보였을 것이다. 건장한 체격을 가진 백성을 원했던 메이지 덴노는 육식금지령을 해제하고,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돈카츠나 스키야키 등이 보급되었다.

그 때 함께 보급된 것이 햄버그 스테이크, 일본식 함박 스테이크다. <동양정>이 일본 함박 스테이크의 원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역사만 해도 100년이 넘은(since 1897) 유서 깊은 가게다. 워낙 유명한 가게라 1시간 이상 웨이팅은 기본이며, 백화점 개점 시간에 오픈런을 해야 기다리지 않고 맛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일부러 점심시간을 피해 조금 늦은 오후에 방문을 했는데도 이미 눈에 보이는 대기인원이 20팀은 넘어 보였다. 운이 좋게도, 대기가 얼마 남지 않은 한 여성분이 일행이 오지 않기로 해서, 자신의 대기번호를 우리에게 넘겨주었고, 우리는 겨우 10분 정도 기다린 후 자리를 안내받을 수 있었다. 지배인으로 보이는 중년 신사의 친절함과 어설프면서 반가운 한국어를 통해 좋은 자리를 안내받았고, 우리는 이 가게의 가장 유명한 메뉴들을 주문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맛있는 함박 스테이크'를 생각하면 정확히 부합한다. 고기는 부드럽고 속이 촉촉했으며, 일본식 함박 스테이크 특유의 계란 후라이와 함께 먹는 맛도 일품이었다. 식전에 나오는 토마토 샐러드도 이들의 시그니처 중 하나인데, 맛보다는 그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돋보이는 메뉴다. 음료나 커피는 특별한 것이 없었지만, 디저트 역시 이들이 자랑할만한 수준이었다.

20230615_055607281_iOS.jpg 맛있다. 그렇다고 독보적인 맛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 시간 이상 웨이팅을 할 가치는 있는 곳이다. 맛보다는 브랜드 때문.

100년 전의 맛이나 분위기를 잘 간직한 곳이었다. 100년 전의 일본의 지식인이나 부자들은 이런 곳에서 토마토 샐러드로 입맛을 돋운 뒤, 불과 얼마 전까지는 먹지 못 했던 고기를 함박 스테이크로 먹고, 서양 귀족들이 먹던 케이크를 디저트로 먹으며 서양인들 흉내를 내며 부국해지고 강병해지는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을 것 같았다. 지금은 이런 구성이나 가격이 호화로운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잘 대접받은 느낌을 받은 한 끼였다.

20230615_124055705_iOS.jpg '츠루동탄' 그릇 크기에 놀라고 있는 심쿵이

'츠루동탄'이나 '이치란'처럼 네임드 식당도 물론 맛있었다. 이런 식당들은 너무 과하지도 않고 모라자지도 않은, 매우 일반적인 입맛에 부합하는 경우가 많아 실패가 드물다.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인들까지 길게 줄을 서는 것은 이유가 있는 법이다. 개인의 주관적 취향을 모두 채울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식후 만족감을 채울 수 있는 맛이다.

20230617_040811769_iOS.jpg 한적한 동네의 길가에서 먹은 이름도 알 수 없는 일종의 '만두'. 육즙이 그대로 살아 있고, 겉은 바싹한 맛이 들도록 구웠다.

의외의 소득도 있었다. 어쩌다보니, 관광객들은 전혀 가지 않는 동네에도 가게 되었는데, 그 곳에 현지인들이 길게 줄을 선 식당도 있었다. 급하게 구글링을 해보았지만, 한글로 된 리뷰가 하나도 없었다. 어떤 메뉴인지, 어떤 맛인지도 모른 채 먹은 음식은, 일본에서 먹은 음식 중 최고의 맛이었다. 그 경험을 계기로 두 번 정도 그런 시도를 해 보았고, 모두 성공했다. 지나가다 우연히 먹은 식당에서 멋진 음식을 먹으니, 계획하고 먹은 맛있는 음식보다 기분이 더 좋았다.


흔히들 오사카와 부산이 많이 닮아 있다고 한다. 각 나라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 바다로 접하고 있는 항구도시, 화끈한 야구에 대한 열정 등이 그렇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닮은 점은 음식이다. 개인적으로 남도 음식도 좋아하지만, 한국 최고의 식도락 도시는 부산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 취향 차이는 있겠지만, 부산이 적어도 한국에서는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식도락 도시라는 것에는 동의할 것이다.


'먹다가 망하는 도시'라고? '맛있어서 흥하는 도시' 오사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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