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아버지 부고 메시지를 받고 고향인 대구로 내려가던 길이었다. 충주를 지나 괴산휴게소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10대와 20대를 함께 보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난 서울에, 그 친구는 포항에서 일하며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정말 가끔 통화는 했기에 전화가 온 것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훈아, 니 은수랑 언제 마지막으로 통화했노?"
"글쎄, 설 전에 전화왔던 것 같은데. 왜?"
"은수가...죽었단다..."
그 말이 끝날 때, 괴산휴게소의 입구가 보였고, 난 급하게 핸들을 꺾어 괴산휴게소로 들어갔다. 아직 한창 햇빛이 강했던 평일의 오후, 차가 많은 시간대였다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내 드렸고, 남들보다는 조금 일찍 아버지의 죽음도 경험하였다. 서른아홉, 누군가의 죽음이 낯선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친구의 죽음은 처음이었다. 내용을 들으면서 목소리는 침착했던 것 같고, 손은 떨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억이 뚜렷하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도, 어떤 대답을 해야 할 지도,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할 지도 몰랐다는 것이다.
친구와 전화를 끊고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감정을 추스리기 보다는, 내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슬펐다. 눈물도 났다. 허망했다. 화가 났다. 죽어버린 친구에게도, 그저 죽음의 소식을 듣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나에게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대구까지는 아직 2시간 정도 남았고, 함께 친했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리거나 단톡방에 소식을 알렸다. 전화가 밀려왔다. 모두 나와 같거나 비슷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서른아홉. 죽기에 알맞은 나이가 있겠느냐마는, 죽기에 너무 이른 나이다. 그리고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을 듣기에도 너무 이른 나이다. 우리 모두는 처음 겪는 낯선 감정을 느꼈다.
원래 목적지인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가서 조문을 마친 후, 부리나케 친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친구는 죽었는데 나는 살아있다는 것까지도 죄송스럽단 생각이 들어 어머니와 아버지께 인사도 드리지 못 했다. 아...그 때 위로의 한 마디라도 드렸어야 했는데...용기가 나지 않았다. 가까운 친구 대부분이 이미 장례식장에 와 있었고, 아무런 말 없이 소주잔을 비우고 다시 채우기만 했다.
끊었던 담배를 피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알지 못 했다는 변명을 하기에는, 떨어져 있는 동안의 친구에 대해서 너무 몰랐다. 짐작은 했지만, 내 친구는 대학 시절부터 만나서 결혼한 제수씨와 별거 후 이혼을 하였고, 극심한 스트레스와 잦은 음주가 생활이 되었으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심장에 이상이 있다는 의사의 진단도 있었다고 한다.
친구가 죽기 두어달 전,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것이 기억났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해가 머리 위 어디쯤에 있는 낮이었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걸려온 친구의 전화가 낯설었다. 별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무엇인지는 모르는 쓸쓸함과 외로움을 느꼈다. 그 때, 나는 친구에게 물었어야 했다.
"은수야, 뭐 힘든 일 있나?"
그 한 마디를 하지 못 한, 그 미안함이 지금도 가슴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새벽까지 자리를 지키다 집으로 와 다음날엔 출근을 했다. 대표님께 사정을 이야기하고, 반차를 쓴 후 다시 대구로 향했다. 친구의 마지막은 함께 하고 싶었다.
시간은 흘렀다. 여전히 그립다. 하지만 친구를 잃은 슬픔과 상실감은 시간이 조금씩 해결해주고 있지만, 다른 감정이 나를 사로 잡았다. 이렇게 갑자기 내 곁의 누군가가 떠난 것은, 내 곁의 다른 소중한 존재 역시 아무런 예고 없이 떠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게 내 가족이 될 수도 있고, 또는 다른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인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더 사랑하는 것만이 방법이었다. 내 가족과 나를, 내 주변의 소중한 존재들을 더 사랑하기로 했다. 친구에게 미안하지만, 난 더 열심히 살기로 했다. 그렇게 싫어하던 운동을 시작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손을 놓았던 독서도 다시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열심'이었다. 소중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큰 행복이지만,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불안감도 공존하기 시작했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정말 많은 술잔을 함께 한 친구.
계속 그립겠지. 그리움을 느낄 때마다 나의 소중한 존재들을 점점 더 사랑하겠다.
보고싶다, 은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