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휴직을 원하는 남편

아이를 만나기 전, 지금의 남편과 나눈 이야기들

by 리오주인


나의 남편은 구남친과 헤어진지 얼마 안된 나에게 바로 고백을 시전했다.

솔로 상태에서는 항상 소개팅에 오픈되어 있던 나에게 그의 초조함은 이해가 되지만 그 시절 나는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오빠, 나랑 결혼할 생각 있어?"

"어"


그의 자신감 있는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어 버렸다.

그는 나와 친구로 지내보니 결혼하기에 너무 좋은 여자라는 걸 알아봤고 본인도 결혼 생각을 가지고 사귀자라는 말을 꺼냈다라는 것이다. 그룹사 교육에서 만난 그는 첫 인상 때도 느꼈던 그 패기를 나에게 시전하니 말문이 막혔다. 오히려 결혼을 원했다라는 내가 부담스럽다라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와 나는 세 번의 데이트를 하고 서로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로 했고 우리는 두 번의 데이트를 하고 결혼을 바라보는 연인의 길을 같이 걷기 시작했다.


그를 만나보니 그는 친구일 때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친구인 사이에서의 그는 흔히 말하는 '마초'와 같은 성격으로 경상도 종가집 장녀로 커온 나에게는 거부감부터 일으키는 사람이였다. 그러나 그는 남자친구로서 '마초'라기 보다는 '나의 든든한 지지자'에 가까웠다. 사실 이미 나는 남편을 만나기 전, 꽤 많은 연애를 거쳤기 때문에 남자에 대한 환상은 없었다. 스펙 좋은 사람, 잘생긴 사람, 연하, 연상 등 꽤 많은 연애 데이터를 거친 나에게 그는 새로웠다.


그 이유는,

그는 야근을 기꺼이 하며 커리어를 키워나가는 나에게 불만 한 마디도 토로하지 않았다. 단순히 말을 안했다가 아니라 정말 불만이 없어 보였다. 당시 나는 보통 저녁 11시 전후로 업무가 끝났는데 그는 일이 일찍 끝나는 날 우리 회사 앞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나를 기다렸다. 카페 영업 종료 이후에는 내 자취집에 가서 내가 미처 하지 못한 집안일을 해주며 나를 반겨 주었다. 그런 그에게 마음을 열게 되며 나는 남편과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선 양가로부터 지원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경제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둘 다 독립적인 가정을 꿈꾸기 때문에 이 결정은 큰 어려움이 없이 수월히 합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가지는 문제는 나에게는 아주 중요했다. 나는 커리어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아이를 위해 내 커리어를 포기한다는 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였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였다. 일도 그렇듯이 결혼과 육아에 있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모든 욕심을 부리고 싶었다. 그렇기에 아이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뜻밖의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다.


"나도 육아휴직 할꺼야"


그는 아이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하는 것이 아빠로서의 특권이라고 말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환상을 가졌나? 라는 생각을 가졌다.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저 사람이 저렇게 말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난 사실 아빠가 육아에 참여한다는 걸 개념으로만 알고 있지 현실을 실천하는 사람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의 말이 낯설었고 처음부터 신뢰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믿음의 육아가 아닌 다른 곳에서 생기기 시작했다. 그가 육아휴직을 한다는 말과 함께 맞벌이를 하고 싶고 대신 내가 맞벌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맞벌이를 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게 뭔지 모르는 나는 커리어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라는 내 의사를 존중해 주는 말로 이해했다. 그러나 그는 정말 충실하게 내가 일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평일 야근으로 지친 내가 주말에 늦잠을 자면 내가 하지 못했던 집안일을 대신 하거나 혹은 위경련이 많이 온 주에는 토요일에 날 깨워 한의원에 데려다 주었다. 급한 업무로 어디에서든 일을 해야되면 그는 절대 불편한 기색 없이 내가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이러한 것들이 현실로 오자 육아휴직을 하고 육아에 참여하겠다라는 그의 말도 "진짜"가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그와 짧은 1년여간의 연애의 종지부를 찍고 결혼을 하고 신혼집에서 살고 있을 때에는 자연스럽게 나 또한 그는 육아휴직을 하겠구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만 바로 아이를 가질 수는 없었다. 나는 신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기쁨도 맘껏 누리고 싶었고 아이가 생김으로써 물리적인 시간 제약을 받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어 당장 결정을 지을 수 없었다. 물론 커리어의 중간 시점에 회사의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하여 담당하던 업무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갑작스럽게 퇴사를 고민하면서 '이 시기에 아기나 가질까'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던 적이 있다. 지금은 그 때 아이를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아마 그런 이유로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지금처럼 육아에 충분히 만족하지 못했을 것 같다.


물론, 아이를 가지는 것은 모두 다 내 맘대로 되지는 못했다.

직장도 사람이 가장 어렵듯, 아이가 생기는 것도 결국의 '사람'의 일이기 때문에 아이를 가지는 시점까지는 내 맘대로 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긴 신혼 기간 동안 커리어를 지키며 아이를 육아하기 위한 기반을 차곡히 나 스스로도 채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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