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없는 유부녀 시절 마주한 이직의 현실
결혼식을 올리기 두 달 전.
당시 재직 중인 회사의 CEO가 바뀌면서 담당하던 프로젝트의 종료 준비가 시작되었다.
해당 프로젝트는 속칭 빡센 프로젝트였지만 그 프로젝트 외에는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그 회사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직 준비는 나에게 당연한 수순이였다.
결혼식 전날에도 새벽 2시까지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신혼여행에서도 헤드헌터와 통화를 했다.
커리어에 욕심이 많은 대리 1년차. 내가 원한다면 이직도 손쉽게 나의 손에 잡힐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이직 준비 기간은 꽤 오랜 기간이 걸렸다.
첫 1~3개월은 멘탈을 온전히 유지하며 지낼 수 있었으며 4개월이 넘어가니 많이 힘들었다. 나는 남편에게 차라리 퇴직을 하고 이 시기에 아이를 가질까? 라는 이야기도 했으며 친정 엄마는 나에게 아이 계획이 있다면 지금 직장이 안정적이니 업무적인 즐거움을 포기하고 가정에 충실한 포지션을 찾아가는게 어떻겠냐라는 의견을 주기도 했다. 이 시기에 아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으나 아이를 가지고 싶었다기 보다는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실직자가 되면 남편을 볼 낯이 없다고 생각하여 아이라도 가지자라는 생각이였다.
나는 꽤 많은 서류를 썼고 그 중 면접은 5개 정도 잡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SK, 라인 등 좋은 기업들의 인터뷰 자리를 가지게 되었는데 면접의 초중반부는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다가 결혼 혹은 자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면접관의 얼굴 표정부터 달라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한지 얼마 안된, 아직은 아이 계획이 없다고 하는 나를, 철없는 소리 하고 있네라고 바라보던 눈빛. 혹은 그 전의 아젠다들을 이야기할 때에는 따뜻했던 눈빛들이 기혼자라는게 인지되는 순간부터 차갑게 변하던 그 순간들에 나는 능력이 있으면 다 된다고 생각했던 나의 인지를 바꾸기 시작했다. 1차 면접에서는 탈락을 면치 못했다. 그러던 중 국내 유명 제약 회사의 면접 1차 자리에 가게 되었다.
해당 포지션에 빠른 채용 절차가 필요하여 1차 면접 자리에서 팀장과 함께 담당 임원이 같이 면접을 진행하였다. 임원의 참석으로 면접 자리의 분위기는 무거웠지만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나는 나의 패기를 한껏 보여주며 나는 이직을 하게 되면 할 수 있다를 보여주게 되었다.
"리오주인님, 결혼했어요?"
"네"
"아이계획은?"
"저는 커리어에 욕심이 많아서 욕심이 해소될 때까지는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습니다."
나의 공식 답변이자 진심을 담은 답변이였다.
이에 임원은 갑자기 나에게 화를 내며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리오주인님이 그런 생각을 가진 거, 시부모님이 알고 계시나요?"
"시부모님과 직접적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남편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거봐, 요새 친구들은 이래서 문제야. 시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순간 너무 울컥하여 달마다 먹는 피임약을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아이 계획은 충분히 제가 조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어떻게 아이가 조율이 된다고 생각하는거지?!"
이 즈음부터는 나는 면접 자리라는 걸 잊고 내 경력과 커리어에 대한 욕심으로 아이는 아직 차분히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와 함께 임원분의 이야기에 하나씩 반박하기 시작했다. 함께 면접에 참석했던 팀장은 끊이지 않는 아이 대화 주제에 리오주인님이 괜찮아서 진짜 일한다고 생각하니까 이렇게 된 거 같다며 급하게 수습을 했다.
면접이 완료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 날의 집에 오는 길을 기억한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면접 과정들을 이야기하며 버스 제일 앞좌석에서 펑펑 울었다. 남편은 우는 나에게
"내가 미안해..."라는 이야기를 했다.
"오빠가 왜 미안해... 근데 너무 화나고 슬퍼. 도대체 내 대답에서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모르겠어."
당연히 제약회사의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헤드헌터로부터 합격했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처우 협상을 진행하자는 이야기에 나는 그토록 원하던 이직이였지만 이직을 하지 않겠다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처음에는 그 회사와 제가 핏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돌려서 이야기를 했으나 헤드헌터가 쉬이 납득하기는 어려웠다. 결국은 나는 면접 과정의 이야기들을 헤드헌터에게 어렵게 꺼냈다.
속사정을 다 들은 헤드헌터는 해당 회사는 최근 출산휴가, 육아휴직자들로 인하여 많은 고충을 겪고 있어서 그럴 뿐 실제로는 여성 친화적인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주었다. 나는 헤드헌터의 설득에도 한사코 갈 생각이 없다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그 분이 그 날 하루 실수하신 거일 수도 있죠. 근데 제가 정말 아이를 가지게 되면 그 분이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안 하실까요? 그 분이 가진 무의식이 제 상사가 가진 무의식이라고 생각하니 무섭네요."
결국 헤드헌터는 설득을 포기하고 나는 그 회사로의 이직하지 않았다.
그 후에 나는 다른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다. 이직한 회사의 인터뷰 과정에서는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어떤 역량을 가졌는지를 위주로 이야기 나누었을 뿐. 기혼/미혼/아이의 유무에 관련된 질문은 없었다. 뽑히고 난 뒤, 내가 기혼인 걸 알고 얼굴이 빨개진 팀장님의 얼굴을 기억하나 그건 정말 당혹스러움의 표현이였지 잘못 뽑았다의 표현은 아니였다.
그 이후 나는 한번의 이직을 더 했지만 그 때의 이직 경험은 내가 결혼을 하게 됨으로써 겪게 되는 이직의 현실을 겪게 되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세상들이 펼쳐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이 때의 경험으로 난 다르다라는 걸 보여줘야겠다라는 생각이 더 확고하게 잡혔다.
일도, 육아도, 그 어떤 것도 내가 걷는 길을 다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참고로 이 에피소드는 9년이 지났고 지금은 기혼 여성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진 걸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어느 곳에서는 위와 같은 에피소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보며 혹여 비슷한 경험을 한 누군가가 있다면 괜찮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정말 괜찮다! 그 회사는 갔으면 더 문제가 있었을 회사니까.
그리고 이후에 펼쳐질 나의 이야기에도 회사와 커리어, 아이에 대한 연관성이 나오지만 회사는 내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육아와 커리어를 펼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오히려 구직자의 입장이 된다면 면접자리를 나를 증명하는 자리 보다는 쌍방이 검증하는 자리로 인지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