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정 Jun 26. 2019

남편의 출장을 앞둔 아내의 기분

내 머릿속은 온통 ‘어떡하지’ 이 생각뿐

남편이 미국으로 3개월 출장을 간다. 출국이 1주도 남지 않았다. 요즘엔 하루에도 몇 번씩 문득 ‘아,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한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남편 없이 6살 3살 아들 둘과 긴긴 여름을 보낼 생각을 하니 저 가슴 깊은 곳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http://www.freepik.com


남편은 예전부터 해외에서 생활을 하고 싶어 했다. 가능하다면 이민을 가고 싶다고 했다. 캐나다 어학연수 당시의 기억 때문인지 본인의 개인적인 성향 탓인지 외국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습관처럼 말했다. 몇 년 전에는 이민 박람회에도 다녀왔다. 여기저기 돌아보다 캐나다 이민을 도와준다는 부스에 들어가 상담을 받았다. 남편과 내 직업 등을 물어보더니 캐나다에서는 남편의 직업을 살릴 수가 없다며 다른 일을 해야 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주는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퀘벡으로 들어가서 몇 개월 살다가 영주권이 나오면 그때 살고 싶은 주에 가라고 했다. 지금은 캐나다의 이민 정책이 포용적으로 바뀌었지만 당시 만에도 아주 제한적이었다.


지금 한국의 학력, 직업 어느 것도 보장을 받을 수가 없다니. 막연히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얘길 들으니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나는 그렇게는 안 간다고 했고, 남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결단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그렇게 굴뚝같은 마음만 갖고 살던 남편은 미세먼지로 마스크 없이 밖에 나갈 수 없는 날이 많은 봄만 되면 그렇게 이민 얘길 한 번씩 꺼냈다.


그러다 지난해 1년 미국 연수에 지원할 기회가 생겼다. 갑자기 1년 일찍 진급을 하는 바람에 대상자가 됐다. 그 직책 1년 차만 지원할 수 있는 연수이기 때문에 기회는 오직 한 번뿐. 하지만 함께 지원하는 동료가 막강했다. 남편은 이번에 이 동기가 1년 먼저 진급을 하면서 연수를 다녀오고 다음 해에 자기가 가면 되겠지 했는데 같이 진급을 해버리는 바람이 경쟁자가 된 것이다.


지원을 할 때만 해도 지원 자격에 해당하는 영어 성적은 남편만 있어서 이러다 자기가 갈 수도 있겠다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동료는 이 연수를 위해 몇 달 동안 영어공부를 했고 영어 성적 제출 마감 며칠을 앞두고 성적을 만들었다. 그리고 결국 그 동료가 최종 선발됐다.


남편은 지난해 1년 연수에서 떨어지고 상심이 컸었나 보다. 처음엔 그렇게 속상해 한 줄 몰랐다. 한참 지나고 나서 몇 달 전 몸이 안 좋고 힘들었던 게 그것 때문이었다고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게 속상했으면 말이라도 하지, ‘진짜 괜찮다’, ‘그 친구는 그럴 실력이 된다’ 이런 교과서에나 나오는 얘길 뭐 하러 아내에게 한 건지. 나였으면 질투하고 화를 냈을 텐데. 남편은 그걸 모두 속으로 삭혔다.


연수에서 떨어지고 올 초에도 3개월 출장의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지금 부서 상황상 자신이 자리를 비울 수는 없다며 다음 텀에 가겠다고 했단다. 와 이런 얘길 할 때 보면 진짜 남편이 부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http://www.freepik.com


그리고 이번이 바로 그다음 텀이다. 이번에 출장을 가게 될 것 같다고 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남편은 기쁜 마음 한편으로 오래 집을 비우는 게 미안한 눈치였지만 나는 정말 잘 됐다고 생각했다. “내가 애들 데리고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걱정 말고 다녀와!”


그런데 출국일자가 정해지고 그날이 다가오니 점점 걱정이 된다. 주중엔 그나마 괜찮지만 아이들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안 가는 주말은 어쩌지? 물론 지금도 남편이 주말 중 하루 반나절은 출근을 하지만, 주말 내내 남편이 없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삼시 세끼 밥을 해 먹이고 치워가면서 주말 이틀은 어떻게든 보낸다 치자. 근데 방학은 또 어쩌나? 물론 어떤 일이든 어떻게든 되겠지만.


이럴 때 현재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명언이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나는 올여름 내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으로 이 말을 되뇌겠지.


이번 출장에서 남편은 하고 싶은 게 많다고 했다. 일은 일대로 하고, 운동도 하고, 요리 수업도 받고, 여행도 하겠단다. 그래도 2달 정도 버티고 나면 나머지 한 달 정도는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 같이 있다 올 예정이니 나에게도 버티는 이유가 되리라. 요즘 외국에서 한 달 살기 하는 사람 많은데 우리도 날씨 좋은 곳에서 먹고 마시고 여행하고 한 달 동안 사랑을 충만하게 채워야지.


일상에서 벗어나 3개월 지내며 하고 싶은 것들 다 하고 오면 남편의 이민 가고 싶단 얘기가 좀 들어갈까? 아니면 더 가고 싶어 질까?

작가의 이전글 세상 하나뿐인 만삭 사진을 찍는 유쾌한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