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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Jun 27. 2019

층간소음 유발자도 스트레스받습니다

이 글은 윗집 입장에서 쓰인 글이라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아들 둘을 키우는 우리 집은 층간 소음 스트레스로 힘들어하고 있다. 아랫집이 아닌 윗집으로 말이다. 우리 집 아이들이 보통의 아이들에 비해 얌전한 편이긴 하지만 아이는 아이인지라 완벽하게 제어가 되지는 않는다. 그나마 6살 첫째 아이는 말을 들어서 집에서 항상 뒤꿈치를 들고 다니는데 3살 둘째 아이가 문제다. 아무리 혼내도 그때뿐이다. 

아랫집엔 부부와 초등학교를 다니는 여자 아이가 산다. 몇 번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이는 영어 책을 손에 들고 책을 읽고 있었다. 누가 봐도 얌전한 아이다. 지금 모습으로 봐서는 아마 어릴 때도 뛰는 걸로 엄마에게 혼이 난 적이 없었을 것 같다. 그런 여자 아이 한 명을 키우는 아랫집 부부는 아마 우리 집이 이해가 안 될 것이다. 백 번 이해한다. 

 


3살 아이에게도 실내화를 신기려 애쓰지만 그리 오래 신고 있지는 않는다.


우리라고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우리 집 거실과 복도에는 두꺼운 층간소음 매트가 깔려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매트 위로만 다니는 건 아니다. 그리고 실험을 해본 결과 우리 사는 아파트는 두꺼운 매트로도 층간소음이 해결되지 않았다. 집에서는 실내화를 신기려 노력하고 있으며 뛸 때마다 뛰지 말라고 혼을 내고 있다. 하지만 실내화를 벗어던지는 둘째는 뛰지 말라는 말을 한 귀로 흘리는 것 같다. 누가 그랬다. 이때 남자아이는 강아지보다 말을 듣지 않는다고. 결국 우리 집은 아랫집과 불편한 관계가 되고 말았다. 우리 집은 층간 소음 유발자, 아랫집은 층간 소음 피해자로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 집으로 이사를 한 뒤, 바로 아랫집에 인사를 갔어야 했다. 물론 그런다고 지금의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내 마음의 짐은 좀 덜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사를 한 뒤 짐을 정리한다고 며칠 늦게까지 깨 있었다. 그렇게 사흘쯤 지나니 다음날 아침 현관문에 포스트잇이 붙었다. 아랫집이었다. 며칠 참다가 화를 누그러 뜨리고 쓴 편지였다.


미리 인사를 갈 걸 하루 종일 후회했다. 다음날 남편은 회사 근처의 유명한 케이크집에 들러 케이크를 사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 첫 아이를 데리고 아랫집 초인종을 눌렀다.


“이사하고 먼저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밤에 짐을 정리를 하느라 아이들이 깨 있어서 피해를 줬습니다. 앞으로 밤에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랫집 남편과 좋게 얘기를 하고 있는데 아내분이 나와서 불편한 마음을 내비쳤다. 웃으면서 옆에 서있던 첫째 아이도 상황을 파악하고는 얼음이 되고 말았다. 죄송하다는 말을 연거푸 몇 번을 더 하고 남편은 아이와 올라왔다.


그날부터 우리 가족의 본격적인 스트레스가 시작됐다. (물론 층간 소음 피해자인 아랫집의 스트레스 역시 엄청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 발소리만 나도 ‘뛰지 말아라!’, ‘걸어 다녀라’ 목소리가 높아졌다. 층간 소음을 줄여준다는 슬리퍼도 사다 신겼고, 매트도 더 깔았다. 그러나 남자아이의 기억력과 자제력은 엄마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선다. 꼭 소리 높여 혼내는 상황이 발생했고 아이의 울음으로 상황이 정리되곤 했다.


그렇게 몇 번 크게 혼난 큰 아이는 스스로 소리 나지 않게 뛰는 방법을 터득했다. 발꿈치를 들고뛰니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랫집에 피해는 주지 않는 것 같아 일단 두기로 했다. 엄마로서 그것까지 못하게 할 수는 없었다. 첫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몇 번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는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그러나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둘째 아이. 누워만 있던 둘째 아이가 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이의 기는 소리가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다시 문 앞에 포스트잇이 붙었다. 둘째 얘기가 분명했다.

 


우리 집 아이들 실내화


이때 까지만 해도 미안하기만 했던 층간소음 유발자의 마음은 조금 억울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돌도 되지 않은 아기의 기는 소리가 문제가 된다면 그건 기는 아기의 잘못일까? 기게 둔 아기 엄마의 잘못일까? 어쩌면 아파트를 지은 사람의 잘못이라는 생각도 들어 더욱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기는 아이를 못 기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 곧 걸음마도 시작할 텐데. 아이가 걸으면 나는 또 얼마나 더 큰 죄인이 되어야 하나? 눈 앞이 깜깜했다. 아침마다 현관문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을까 봐 문 여는 게 겁났다. 차라리 소리가 날 때 바로 연락을 주면 바로 조심할 수 있으니 카톡으로 연락을 달라고 아랫집에 내 연락처를 남겼다. 그 이후엔 아이와 둘이 있다가 카톡이 오면 혹시나 아랫집일까 봐 마음을 졸이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하루는 옆집 언니가 돌이 지난 둘째 아이와 우리 집에 점심을 먹으러 왔다. 내가 층간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지라 언니도 아이의 발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가 매트가 없는 곳에서 발을 떼기가 무섭게 카톡이 울렸다. “우리 아이가 방학이라 낮에도 집에 있는데 발소리가 들려서 신경이 쓰이니 조심해달라.”라고 했다. 평일 낮 한시의 일이다. 옆집 언니는 불편해서 더 있을 수가 없다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거실과 복도에 깔린 매트.


아파트는 공공생활공간이다. 1층과 탑층을 제외하고는 아랫집에 누군가가 살고, 윗집에도 누군가가 산다. 윗집에 사람이 사는 이상 사람 사는 소리가 들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소리가 어느 정도인지와 아랫집 사는 사람이 얼마나 소리에 민감한 가다. 그 소리가 커도 아랫집이 개의치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고, 그 소리가 크지 않아도 아랫집이 소리에 민감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윗집과 아랫집은 랜덤이어서 어떤 집은 아이가 막 뛰어다녀도 인터폰을 받는 일이 없고, 어떤 집은 아이가 기는 소리만으로도 주의해달라는 소리를 듣는다. 피해 당사자인 아랫집은 억울하겠지만, 그렇다고 윗집도 스트레스를 받긴 마찬가지다. 층간 소음 피해자만 피해자 같지만, 사실 스트레스 지수로만 놓고 보면 층간 소음 가해자의 것이 더 클 수도 있다.


아랫집이 우리 집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건 정말 백 번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역시 층간소음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평소 화가 없는 나와 남편은 오직 이것 때문에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있다. 우리 집은 매트 위에서도 뛰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걸음걸이로 지적을 받는 상황이 반복됐다. 집에서 노는 아이들이 걸음걸이로 혼나는 지금의 상황은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아이들에겐 집에서 마음 편하게 돌아다닐 자유가 필요하다. 결국 이사밖에 방법이 없다는 게 우리 부부의 결론이었다.



우리는 아래 집에 정중히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층간 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아주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첫 아이는 그래도 말을 들어서 집에서는 항상 뒤꿈치를 들고 다니는데 이제 걷기 시작한 둘째 아이는 도무지 말을 듣지 않습니다. 당연히 거실과 복도에는 매트가 깔려 있지만 아이들이 매트 위로만 다니는 게 아니라 층간 소음이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부부가 아이들이 뛰는 것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희 집이 이사를 가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은데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이사를 가야겠다. 아이들의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그런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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