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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May 01. 2019

이승환과 하루키, 언니가 내 인생에 미친 영향 1  

언니는 이승환을 좋아했다. 메탈리카의 팬이었고, 3호선 버터플라이의 공연을 따라다녔다. 물론 이 음악들은 시간차를 두고 언니의 정신을 지배했지만 분명한 건 언니가 이들의 음악을 정말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그때 내 취향을 고백하자면 나는 내 나이 많은 여성들이 그랬듯 HOT에 열광했다. 언니와 나는 2살 차이.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언니와 나는 닮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었다.


기간으로 따지면 이승환에 빠져 있던 기간이 가장 길었다. 언니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관통하는 단 한 명의 연예인이 바로 이승환이었다. ‘화려하지 않은 고백’의 3집부터였는지, ‘천일동안’의 4집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한 건 어느 순간부터 이승환의 1집부터 모든 곡이 언니의 소니 CD플레이어에서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이 정도 되면 팬이 아닌 나라도 전곡을 다 외우는 상황이 된다. 97년에 발매된 5집의 ‘붉은 낙타’는 나 역시도 꽤 좋은 노래라고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언니의 테이프와 CD로 듣던 이승환과 이오공감 앨범을 남편은 LP로 갖고 있었다.


언니는 ‘유희열의 음악도시’도 꼭 챙겨 들었다. 이승환이 패널로 나온 뒤부터였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언니는 자신의 음악세계를 확장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나라 음악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라고 할 수 있는 90년대 음악을 섭렵해나갔다. 그리고 정말 좋은 노래를 찾게 되면 나에게도 들려주곤 했다. HOT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던 나에게 이승환을 좋아하는 언니는 뭔가 성숙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던 모양이다.

남편과 음악을 들으면서 알게 된 명반들. 김현철의 1집을 LP로 듣고 있자면 경험하지 못했던 시절이 참 아련하게 느껴진다.


언니는 이 시기 즈음 록 음악에 발을 들여놓았다. 메탈리카, 레드 제플린, 롤링스톤즈 등의 앨범을 즐겨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쉽게도 폐간된 ‘핫뮤직’을 사 모았다. 도대체 이런 시끄러운 음악을 왜 듣는 건지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다행히도 록 음악을 들을 때 언니는 이어폰을 이용했기 때문에 내가 항의할 여지가 없었다. 크면서 느낀 거지만 오히려 언니처럼 조용한 성격의 사람들이 오히려 록 음악에 열광하더라. 그리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3호선 버터플라이 등의 인디밴드에 심취했다. 덕분에 나는 노래도 잘 모르는 밴드의 공연과 뒤풀이까지 따라간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주류 음악 말고도 좋은 음악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그와 함께 언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즐겨 읽었다. 당시 일본문화에 대해 다소 거부감이 있던 터라 일본 작가의 책을 읽는 언니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난 몇 달 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전국적으로 센세이셔널한 흥행을 일으켰다. 내가 언니 몰래 이 책을 읽은 건 초등학교 5~6학년쯤이었는데, 그때 나는 ‘아니 언니가 이렇게 야한 책을 읽다니!’하는 생각과 함께 ‘들키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이불속에서 몰래 책장을 넘겼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언니는 왜 하루키의 책을 좋아하는 거야?’, ‘이 책이 뭔데 이렇게 유명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당시 나의 독서는 하루키의 다른 책으로 확장되지 않았다.


서가의 하루키 컬렉션. 수집욕 없는 내가 모으는 유일한 것.


대학생이 된 뒤 나는 나도 모르게 하루키의 문장을 좋아하고 하루키의 책을 수집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언니 자취방 책장에 꽂혀 있던 ‘태엽 감는 새’ 4권을 빌려와 읽은 뒤였다. 나는 하루키의 책에 점점 빠져들었고 지금까지도 그의 에세이를 사랑한다. 그 책은 아직도 언니에게 돌려주지 않고 내 컬렉션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승환과 하루키, 언니가 내 인생에 미친 영향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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