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정 May 01. 2019

이승환과 하루키, 언니가 내 인생에 미친 영향 2

언니는 고등학교 때부터 기자가 되고 싶어했다. 그녀는 글을 참 잘 썼고 국어성적도 아주 좋았다. 언니가 기자가 되면 멋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고3이 된 언니에게 엄마는 한 곳은 원하는 신문방송학과를 써도 좋으니 다른 2곳은 교대를 넣자고 설득했다. 교대와 신방과에 모두 붙은 언니는 결국 교대를 선택했다. 시골의 4남매 중 첫째인 언니에게 미래가 불투명한 학과보다는 교대가 여러모로 안정적인 선택이었으리라. 대신 학교 신문사 동아리에서 신문을 만드는 것으로 기자에 대한 꿈은 대신했다.


당시 나는 군인이 되고자 했다. 사관생도가 되고 싶었는데 고3 여름방학 사관학교 시험을 치르며 깨달았다. “아! 이 수학문제는 내가 풀 수가 없구나.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하고. 당연히 결과는 불합격. 수능을 치른 뒤 나는 언론정보학과에 입학했다. 나도 그때 내가 왜 언론정보학과를 선택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돼있었을 뿐. 그리고 벚꽃이 피는 3월 학교 신문사를 찾아가 학생기자가 됐고 그렇게 나의 대학생활 절반과 맞바꾼 신문을 만들다 졸업을 앞두고 기자가 됐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지금 뒤돌아 생각해보니 언니는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이승환의 노래와 함께 나의 귀에 들려온 수많은 명곡은 지금 내 인생의 여백을 채우는 음악이 되었다. 여섯 살이 많은 남편과 함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것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니 덕에 들었던 음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비주류 음악의 세계 또한 빛나고 있음을 알게 된 것 역시 언니와 함께 다녔던 인디밴드의 공연장에서였다. 언니의 책장에서 훔쳐 읽은 작가의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됐고, 언니가 현실과 타협하고 선택하지 않은 길을 나는 시나브로 가고 있었다.


글을 쓰며 일을 하던 때 다이어리.


언젠가 언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선생님이 된 걸 후회하지 않느냐”라고. 언니는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취업도 못했을걸”이라며 아주 현실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기자가 되지 않음을 후회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나의 정신세계를 지배해온 동경했던 언니로부터 독립하는 순간이었다. 지금의 나는 내가 만든 게 분명하지만, 내가 뿌리내린 토양엔 분명 언니의 음악과 책, 사상이 녹아있음을 나는 부인할 수 없다.

작가의 이전글 이승환과 하루키, 언니가 내 인생에 미친 영향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