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정 May 27. 2019

신혼집 가구 직접 만든 남자가 여기 있습니다

내가 결혼•출산•육아를 하며 하지 않은 4가지 ① 혼수 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사람들이 으레 하는 것들이 있다. 결혼식을 준비할 때는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라는 결혼식 준비 패키지가 존재하고, 아이를 낳으면 산후조리원에 들어가고, 아이의 성장앨범을 만든다. 누가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통 다들 그렇게 한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다들 으레 하는 것 상당 부분을 하지 않았다. 특별한 철학이나 의지가 있었던 건 아니다. 우린 그냥 그 상황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했을 뿐. 지나고 보니 그 결정들이 모여 다른 방식의 삶이 되고 그것들은 우리 가족만의 추억이 되었다.




7년 연애를 한 우리 부부가 결혼을 결정한 이유는 내가 살던 집의 계약 만료와 이직이 결정적이었다. 서울에서 혼자 살던 나는 새로 출근할 회사 근처로 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영 맘에 드는 집이 없었다. 마침 서울 집에서 회사까지 회사 버스로 출퇴근하느라 힘들던 남편은 이 참에 함께 살 신혼집을 구하자고 했다. 우린 그렇게 신혼집을 계약했다.


남편이 만든 침대와 침대  옆 조명 '발광목'. 지금은 아이들 때문에 이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신혼집을 계약한 뒤 이에 맞춰 결혼식 준비를 시작했다. 신혼집에 들어간 뒤 결혼식이 늦어지면 양가 부모님들께서 걱정을 하실 테니 늦지 않게 식을 올리기로 했다. 이 사람과 결혼을 하겠다 싶긴 했지만 결혼식 날짜가 그렇게 정해질 줄은 사실 나도 몰랐다. 자취 집 짐을 빼던 날 남편 차에 쓰던 살림을 싣고 새집에 들어갔다. 남편은 집에서 회사를 다니던 상황이라 옷 말고는 가져올 짐이랄 것도 없었다. 밥그릇, 국그릇, 숟가락, 젓가락, 전기밥솥, 이불 정도를 싸가지고 새집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함께 살면서 필요한 것을 하나씩 샀다.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은 전자제품 비교 분석에 능한 남편이 고르고 샀다. TV는 사지 않기로 했으나 영화와 음악만큼은 좋은 걸로 보고 들어야겠다며 프로젝터와 스피커만큼은 신중하게 골랐다. 음식을 하다 블렌더가 필요하면 블렌더를 사고, 청소기가 필요하면 청소기를 샀다. 나는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살았고 남편은 하나 둘 필요한 살림을 늘려갔다.


처음엔 가구도 전혀 없었다. 싱크대 옆 아일랜드에서 식사를 하고, 침대 없이 바닥에서 잠을 잤다. 컴퓨터는 스피커를 살 때 함께 온 박스 위에 올려두고 쓰던 참이었다. 이런 불편한 생활을 하면서도 가구를 사지 않은 이유는 남편이 직접 만들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목공은 남자들의 로망 아니던가. 원래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라 그러라고 했다. 남편은 관련 전공을 한 것도, 관련 직종에 종사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분명 잘할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남편은 바로 공방에 등록했다. 그러곤 선생님께 사정이 이러저러해 천천히 배울 시간이 없으니 바로 가구제작에 들어가야겠다고 얘기했단다. 그날부터 남편은 틈만 나면 공방에 가서 가구를 만들었다. 평일에는 매일 가구 디자인에 집중했다. 그는 꿈에서도 가구를 만들었으며 자다가도 가구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메모를 하기도 했다. 이런 걸 보면 정말 엄청난 집중력을 가진 사람이다.


주말에는 아침을 먹고 공방에 가서 점심밥도 거른 채 가구를 만들고 저녁이 다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 나도 동의를 한 일이니 처음엔 그러려니 했으나 주말마다 남편은 공방에 가고 나는 독수공방을 하니 이게 뭔 신혼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남편이 만든 침대와 침대 옆 엽탁. 물론 아이가 둘인 지금은 이런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거실장
식탁과 벤치.
원래는 침대 옆에 옷 등을 걸어두고자 만든 사다리였으나 지금은 아이들의 전면 책장으로 활용 중.
거실 테이블은 아이방 좌식 책상으로 쓰는 증.

침대, 거실장, 책상, 책장, 식탁, 식탁의자, 거실 테이블, 조명까지 우리 집의 가구가 모두 만들어지는 데는 6개월여의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감각 좋은 남편이 공들여 만든 우리 집 가구는 그때 보아도, 지금 보아도 참 예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남편의 가구는 낮게 만든 침대와 침대 옆에 뒀던 조명 ‘발광목’. 블로그에 올려둔 조명 사진을 보고 어디서 구매했냐는 쪽지도 여러 번 받았을 정도다. 지금은 뭐든 만지고 오르려는 아들들 때문에 소파 위에 두고 책을 읽을 때 조명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잠자리 독립을 하면 다시 침대 옆에 둘 생각이다.


어떤 친구들은 혼수도 하나 안 하고 결혼해서 좋겠다고 하고, 어떤 친구는 자긴 아무것도 없이 몇 달간 박스 놓고는 못 산다고 얘기한다. 그러게 말이다. 그러니까 결혼은 맞는 사람끼리 하는 거지 싶다.

작가의 이전글 이승환과 하루키, 언니가 내 인생에 미친 영향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