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설거지 좋아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그럼요, 설거지가 얼마나 즐거운데요'라는 답을 들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설거지는 해야 해서 하는 거지 좋아서 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까지는 본 적이 없다.
그래도 나의 남편은 그 질문에 "싫어하지 않아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이다. 내가 설거지가 하기 싫어 식기세척기를 사자고 했을 때 그는 "그럼 내가 할게"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오랫동안 설거지를 같이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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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할 때 남편은 주말마다 우리 집에 올라왔다. 나는 집에서 밥을 잘 안 해 먹긴 했지만, 혹시 먹더라도 그냥 설거지통에 쌓아뒀다. 남자 친구였던 지금의 나의 남편이 나보다 집에 먼저 도착하면 우렁각시처럼 설거지를 해놓곤 했다.
근데 결혼하고 나니 상황이 좀 달라졌다. 설거지를 쌓아 두는 내게 그는 설거지는 바로바로 하는 거라고 얘기했지만, 귀찮음이 낳은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나도 일을 할 때는 평일 저녁 같이 음식을 해 먹고 같이 치우면 그만이었지만,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자 다시 설거지가 쌓였다.
그럼 퇴근한 남편은 집에 오자마자 설거지부터 한다. 나는 아이부터 달래고 조금 있다 하려고 했는데 남편이 집에 와서 설거지부터 하는 모습을 보면 불편한 마음을 둘 데가 없다. 나중에는 남편의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설거지부터 하는 상황이 됐다. 나는 그렇게 점점 의식적으로 설거지를 했다. 해야 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안 하면 남편이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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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할 때도 내가 할 때와 남편이 할 때의 주방 상황이 좀 다르다. 나는 가능한 음식을 다하고 난 뒤 한꺼번에 치운다. 반면 남편은 음식을 하는 중간에 설거지 거리가 나오면 바로바로 설거지를 한다. 남편이 밥을 하면 식사를 할 때 주방이 깨끗한 데 반해, 내가 밥을 하면 식사를 할때 설거지 통에 그릇이 하나 가득이다.
그래도 이젠 그 눈치 덕에(실제로 눈치는 안 줍니다. 그저 자기가 할 뿐. 잔소리도 안 합니다.) 식사를 하면 바로바로 설거지를 하려고 노력한다. 노력은 하지만 설거지는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설거지가 싫다.
그래서 내가 몇 해 전부터 눈독 들이던 게 하나 있었으니, 바로 식기세척기다. 식기세척기만 있으면 그 누구보다 잘 쓸 자신이 있었다. 남편에게 얘기했다. 그러나 남편은 남의 집(전세 집)에 공사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남(집주인)에게 싫은 소리 하기도 싫고, 설거지는 그냥 하면 되니 자기가 하겠다는 답이 또 돌아왔다. 설거지가 스트레스가 아닌 사람에게 식기세척기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친한 언니의 식기세척기 예찬을 들으니 또 사고 싶어 졌다. 어차피 살 거라면 빨리 사서 쓰는 게 이득이라는 말을 들으니 그런 것도 같다. 지금 집에 이사 오면서도 식기세척기가 사고 싶었지만 남편은 다음 우리 집에 입주할 때 사자고 나를 설득했다. 결국 나도 그러마 했다
그러다 지난주 아이들이 다시 원에 가지 않으면서 삼시 세 끼를 해 먹이니 설거지가 정말 더욱 하기 싫은 거다. 하루 종일 밥을 하고, 하루 종일 설거지를 하는 기분이랄까?
그러다 정확히 식기세척기 자리 하부장 문이 망가지고 말았다. '이건 사야 해'의 기운이 감도는 걸 느꼈다. 그럼 검색만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식기세척기를 검색했더니, 이 귀신같은 알고리즘은 자꾸 인스타 창에 식기세척기 광고를 띄웠다. 더 사고 싶게. 이끌리듯 광고를 눌렀더니 마침 식기세척기 원스톱 설치 이벤트를 하고 있다는 게 아닌가? 그래! 사야겠다. 이건 운명이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보며 일도 하는 내게 남편은 더 이상 안된다는 얘길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식기세척기가 우리 집에 왔다.
(이럴 거면 진작 살 걸)
떨어진 문짝을 수리한 지 사흘 만에 하부장을 들어냈고 다시 나흘 후 식기세척기님이 우리 집에 강림하셨다. 나를 설거지로부터 구원해줄 식기세척기 이모님이 말이다.
간단히 한 아침 식사접시를 식기세척기에 넣고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은 그 정도면 그냥 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노노~ 나는 그 누구보다 식세기를 잘 쓸 수 있는 사람이라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답했다.
흔히들 이모님 3종 세트라고 한다. 건조기,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삼종세트를 완성하고 나니 진짜 이모님 안 부럽다. 나를 가사노동과 가사 스트레스에서 일정 부분 해방한 위대한 이 기기에 고마움을 담아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