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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Jun 24. 2020

첫 식물은 로즈메리

로즈메리 / 초록 초록한 것이 기분까지 초록 초록해지는 느낌적인 느낌

본래 살아있는 건 잘 못 키우는 사람이다(아이들 빼고). 강아지, 고양이 한 번 키워본 적 없고 선물 받은 식물도 우리 집에 오면 그렇게들 죽어 나갔다. 몇 번이고 말라비틀어진 식물을 보며 절대 식물은 키우지 말아야지 했었다.

그런 내가 며칠 전부터 허브를 들이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들 중에 취미로 꽃을 배운 사람이 셋이나 되는데 식물 얘기가 종종 오가던 중 코로나 바이러스로 집콕 생활이 길어지자 그중 몇이 집에 식물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즈음 나 역시 식물을 키운다는 책이 눈에 들어오던 차였다.

그날은 오전에 미팅을 마치고 계약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기분이 무척 좋았으며, 점심으로 카이센동을 포장했고, 간식으로 먹을 빵을 사 가지고 나오는데 노란 빵집 앞에 식물 파는 예쁜 가게가 보였다. 꽃을 파는 곳은 아니라 편의상 식물 집이라 하겠다.

뭔가에 홀린 듯 일단 식물 집에 들어갔다. 인테리어가 특히 맘에 들었고, 주인인지 알바인지 하는 사람이 잘 생겼다. 뭔가를 사야겠다는 생각에 둘러보다 중품 크기의 로즈메리를 골랐다.  손으로 식물을 사긴 정말 오랜만이다.


내친김에 화분까지 사려고 했는데, 잘생긴 주인 혹은 알바가 말했다. “화분보다는 그냥 라탄 바구니 같은 데에 넣어두면 더 예쁠 것 같아요.” 듣고 보니 그렇다. 그럼 유칼립투스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 아인 꽤 까다로워 키우기 힘들 거예요”라고 한다. 이러니 더 믿음이 간다.

결국 로즈메리만 샀다. 어쩜 포장도 센스 있다. 한 손엔 빵을 다른 한 손엔 큼직한 로즈메리를 들고 나왔다. 잠시 내가 마틸다(레옹의 그 유명한 장면 아시죠? 내용은 기억이 안 납니다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점심은 남이 해준  밥(특히 내가 좋아하는 메뉴다)을 먹을 예정이고, 밥을 먹고 먹을 달달한 빵을 샀으며, 로즈마리는 바람에 흔들려 향기롭다. 이 순간, 나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로즈메리를 며칠은 일하는 서재방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물을 주고 로즈메리를 쓰담 쓰담한 뒤 손바닥을 펴 향기를 맡으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다. 초록 초록한 것이 보기에도 참 좋았다. 이래서 식물을 키우는 건가?

그 뒤부터 계속 식물이 사들였다. 가족과 캠핑을 다녀오는 시골길 화원에서 스위트바질과 오렌지 자스민을 사 왔고, 그 이후 인터넷으로 레몬밤, 루꼴라, 고수, 잉글리시 라벤더, 스위트 라벤더를 더 구매했다. 기왕이면 음식 하면서 쓸 수 있는 것들과 향과 꽃이 예쁜 아이로 골랐다.

베란다에 식물들이 모아 놓고 보니 내 자식마냥 기분이 좋다. 집에 생기가 넘치는 기분이다. 분갈이를 해주려고 화분도 몇 개 샀다. 요즘엔 그릇이 아닌 토분이 그렇게 예뻐 보인다.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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