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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숲 May 20. 2018

[조지아 여행] 조지아인에게 정교는 삶 자제

<트빌리시 츠민다 사메바 성당>


조지아 정교의 중심 - 트빌리시 츠민다 사메바(성 삼위일체) 성당





트빌리시에서의 첫날이 밝았다. 동네 산책에 나섰다. <츠민다 사메바 성당>을 찾아 나선 길이다. 여기 사람들이 그냥 '사메바'라고 부르는 곳이다. 사메바 성당은 엘리아 언덕꼭대기에 위치해 있는데, 내가 묵고 있는 숙소에서 아주 가까웠다.  


어제 비가 온 뒤끝이라 날이 많이 흐렸다. 하지만 공기는 깨끗하고 상큼했다. 기온은 얇은 겉옷이면 충분할 정도로 온화했다. 월요일 아침 9시가 넘은 시간 골목길은 이제야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골목 어귀에 성물판매점이 보였다. 골목길 양 옆으로 호스텔과 게스트하우스, 여행사,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건물들은 낡고 허름했다. 우리 기준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손 볼 시기가 지나버린 건물들이 태반이었다. 


성물 판매점이 보였다. 규모는 작았지만 안을 들여다 보니  십자가와 이콘, 교회 관련 서적 등 성물이 가득했다.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안에는 밖에서 본 것 보다 훨씬 많은 성물들이 벽과 진열장에 빈틈없이 진열되어 있었다. 십자가 목걸이, 팔찌, 묵주 반지 그리고 기념품이 될 만한 물건들도 두루 갖춰져 있었다. 


  



한참 구경을 하고 조지아 국기와 십자가가 함께 들어간 팔찌 2개를 사들고 나왔다. 이콘화에는 성서 속의 인물뿐만 아니라 조지아 역사 속의 인물 중 성인을 그린  성화도 다수 있다. 조지아 역사를 알면 성화속의 인물과 내용을 한결 쉽게 해독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역으로 성화를 통해서 역사를 알 수도 있을 것인데, 외국인에게 두 가지 모두 쉬운 일은 아니다.   


가게를 나와 5분 정도 더 언덕길을 올라가니 교회의 입구가 보였다. 이곳은 사메바의 뒷문이다.

  

  



입구 한 켠에 망토처럼 생긴 검은 옷으로 온 몸을 휘감은 여인이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이후 다른 교회에서도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구걸하는 여자들을 여러 차례 보았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의 <츠민다 사메바>성당은 조지아 정교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성당이다. 조지아어로 '츠민다'는 ‘거룩한, 성스러운’이라는 뜻이고 '사메마'는 삼위일체라는 뜻이다. 즉 성 삼위일체(트리니티) 성당이다.   


주지하다시피 조지아는 그리스 정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나라이다. 국민의 83.9%가 조지아정교 신자이다(2014년 통계). 러시아 정교와 구분하여 조지아 정교라하고,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와도 구분된다. 통계를 확인하기 전까지 나는 조지아 정교신자가 90%를 넘을 줄 알았다.  83.9%라는 수치는 내게는 좀 놀라웠다. 게다가 이슬람교 신자도 10% 가까이 되었다. 가끔씩 눈에 띄었던 <할랄>레스토랑이 통계상의 수치를 보고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그럼에도 83.9%라는 수치는 놀라운 수치다. 국민 대다수가 단일한 종교로 통일되어 있다는 말이니 말이다.  





여행 중에 만난 한 조지아인은 자기들의 조상과 나라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나는 우리의 조상이 자랑스러워요” 

“어떤 점이 자랑스럽나요?” 

“우리 조상들이 종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정교를 믿는 국가를 물려 준 점이 가장 자랑습니다. 우리는 이 종교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지켜왔습니다.”

  

그의 어투에는 단호함과 긍지가 가득했다. 그는 종교인도 아닌 평범한 일반 시민이었다. 그 정도로 조지아인들의 신앙심은 남달라 보였다. 운전대를 잡은 버스기사들도 교회나 길가에 세운 십자가가 나오면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성호를 그었다. 그들에게 종교는 뗄 수 없는 생활이고 일상처럼 보였다.  






기독교가 조지아에 전래된 것은 4세기 경이다. 기독교 전래 과정은 중세 조지아 문학의 가장 풍부한 소재로, 이미 6세기 이후 전설과 결합되어 각색되어 전해져 왔다. 그 결과 역사적 사실과 전설과 민담을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록 미리안 3세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유가 정치적인 목적이 더 강했다하더라도,  정교는 조지아 국민들에게 깊숙히 파고들어 뗄 수 없는 조지아인들의 삶의 한 부분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트빌리시의 츠민다 사메바성당은 1995년부터 2004년까지 약 10여 년에 걸쳐 건설되었다. 1991년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이후 러시아 정교에 맞설 성당을 짓기 위해 온 국민의 성금으로만 지어졌다고 한다.  


조지아의 유명 건축가인 아킬 마인디아스빌리가 6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95년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이 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 중 하나이다. 


대천사, 성녀 니노, 성 게오르기우스, 성 니콜라스, 12사도 등 9개의 예배실이 있다.  





334년 기독교를 받아들인 조지아인들은 2천여 년의 세월이 흐른 2004년 엘리아 언덕에 우뚝 선 사메바를 통해 신앙의 건재함을 온 세상에 고백하고 있다.  


내가 들어선 곳은 정문이 뒷문쪽으로 분홍색 작은 성당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사메바가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교회건물을 보는 순간 나는 거대한 규모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교회는 한 눈에 담기 힘들 정도로 거대했다. 사메바는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아마도 트빌리시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장소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당 안은 주요 성인의 이콘과 촛불과 십자가 등으로 가득했다. 정면 벽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거대한 프레스코화가 그려지고 있었다.  





벽쪽에 노약자들을 위한  1-2개의 벤치형 의자 외에는 교회 안에 의자가 없다. 개신교 교회나 카톨릭 성당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신에게 죄를 고하고 용서를 빌기 위해 교회를 찾는데, 편하게 앉아서 죄사함을 받고자 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교회 중앙에 커다란 의자가 있었는데, 이 의자는 예배의식에서 주교가 앉는 자리이다. 예배당에 의자가 없는 점 역시 카톨릭이나 개신교 교회와의 차이점이다.  


일요일이 아닌데도 예배당안으로 끊임없이 사람들이 들어왔다. 잠시 그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먼저 교회 입구에 들어서면서 고개 숙여 절을 하고 성호를 긋는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이콘 앞에 서서 또 성호를 긋고, 촛불 봉헌을 하고 이콘화에 입을 맞춘다.  






어떤 이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했고, 어떤 이는 아예  이마를 바닥에 조아리며 기도를 올렸다. 한참 동안 기도문을 암송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경책을 펼쳐놓고 읽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과 소통하고 있었다.  





예배가 없거나 예배시간이 아니면 문이 닫혀 있는 한국의 교회와 성당이 떠올랐다. 어쩌다 문이 열려 있어도 곱지 않은 시선이나 경계의 눈초리를 던지는 교회 관계자들… 슬금슬금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잠시 예배당에 머물러 있었던 개인적인 경험이 떠올랐다. 항상 열려 있고 자유롭게 교회를 찾아 초를 밝히고 기도를 올릴 수 있는 조지아 교회와 비교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제들의 모습도 보였다. 매 시간마다 어떤 의식을 행하는지, 한 시간마다 2-3명의 신부가 나와서 기도문을 암송하고 촛불을 붙였다. 정교의 의식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저런 의식은 매 시간마다 하나요?" 옆에 서 있던 조지아인에게 물어보았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가 멋적게 대답했다. 


조지아인들 역시 사제들의 행하는 의식에 관해서는 잘 모르는 듯 했다. 그리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검은 옷을 입은 수도사들과 수녀들도 보였다. 지방에서 올라온 수도사나 수녀들로 보이는 그들도 일반들처럼 이콘 앞에 서서 기도를 하고, 휴대폰으로 성화나 성당 내부 사진을 담고는 했다. 처음에는 검은 옷을 입고 커다란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사제인 줄 알았다. 그러나 수도사와 사제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예배당에서 긴 시간을 보내고 밖으로 나왔다. 정문쪽에서 성당 건물을 다시 올려다 보았다. 정말 거대하고 웅장했다.  그리고 절제미가 느껴지는 엄숙함이 서려 있었다.  





정문쪽을 보니 보면 쿠라 강변 언덕과 언덕 위 조지아 '어머니 상'이 한 눈에 들어왔다.  사메바를 엘리아 언덕에 세운 이유는 분명한 듯 하다. 트빌리시 전체가 신의 가호 안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어머니상과 ‘사메바’는 조지아의 어느 지점에 서도 눈에 들어온다. 트빌리시 사람들은 조지아를 상징하는 정교사원과 어머니상이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속에서 사는 듯 했다. 


조지아 사람들에게 사메바는 ‘교회’이자 ‘휴식공간’이다.  신도뿐만 아니라 모든 조지아인들이 언제든지 참배하고 기도하고 휴식을 취하는  조지아 국민 모두의 공간이다.  

  




사메바는 밤 늦게까지까지 개방되어 있다. 조지아에 머무는 동안 숙소가 가까운 덕에 아침 저녁으로 그리고 늦은 밤시간에는 사메바를 찾곤 하였는데 정문은 물론이고, 예배당의 문이 닫혀 있는 곳을 본 적이 없다. 늦은 밤에도 예배당을 찾아와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신앙이란, 종교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무엇인가', '신은 실재하는가',‘절대적 존재를 믿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일 뿐인가?' 여러 질문들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이 질문들에 대해 저마다의 답을 할 것이다. 나 역시 나의 답이 있다. 그리고 두 시간 이상 예배당에서 머무든 동안 조지안들의 답도 들은 것 같다.  





2천년 동안 하나의 종교를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땅,  

그런 땅을 물려준 조상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땅,  

조상대대로 믿어왔고, 내가 믿고, 내 자식이 믿을 종교는 '조지아 정교'이외에는 없다고 믿는 사람들의 땅이 바로 조지아다. 


그 중심에 사메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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