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의 가장 사랑스러운 도시, 시그나기>
‘아아악~’
결국 ‘악’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시그나기행 택시를 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시그나기행 마르슈루트카 출발지인 전철역을 잘못 알고 내리고, 술 취한 듯한 택시기사와의 실랑이 등 결국 짜증이 폭발하여 택시기사가 주유를 하는 사이 결국‘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한번 차 오르기 시작한 짜증이 점점 더 수위를 올려 나를 집어삼키기 일보직전에 터져버린 것이다.
다행히 내가 탄 택시의 기사는 타인의 짜증에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인품의 소유자였다. 그는 '무슨 일이냐'라고 묻지도 않고 그저 내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대체로 이곳 사람들이 그랬다. 별로 흥분하지도 않고 담담하고 차분하게 남의 말을 잘 들어준다. 자신이 직접 당하는 부당한 일에도 흥분하거나 화를 내는 것 같지 않았다. 공평하다고 해야 할까. 모든 것을 흡수하는 듯하다고나 할까. 체념과 관조의 중간 어디쯤에 서 있는 사람들 같았다.
그래서 사소한 바르르 떨고 마는 나의 즉흥적 감정 발현이 부끄러워질 때가 종종 있었다. 어찌 되었건 나는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다.
시그나기'는 수도 트빌리시에서 약 110킬로 정도 떨어진 조지아 동부 카헤티주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여행 안내서에는 도시를 중세 시대의 유적과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조지아의 보석’이라고 치켜 세운다. 그래서인지 조지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시그나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차로 약 1시간 4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도 아마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이 도시를 빼먹지 않은 이유 말이다.
카헤티주는 조지아 와인의 70%가 생산되는 조지아 최대 와인 산지다. 도시로는 텔라비, 크바렐리, 라고데키, 구르자니 등이 유명하다. 물론 나는 모두 처음 도시이름이지만 말이다.
시그나기는 아제르바이잔 국경과 가까워서 아제르바이잔 국경을 넘어온 여행객들에게 첫 번째 기착지가 되곤 한다. 대부분의 팩키지 여행자들은 시그나기에서 반나절 만에 보드베 사원과 마을을 둘러보고 텔라비를 거쳐 트빌리시로 들어간다.
1762년 카르틀리-카헤티의 왕인 에라클리 2세는 시그나기 인근 지역에 거주하던 다게스탄 부족이 자주 출몰하여 약탈을 일삼자 장장 4킬로에 달하는 성벽을 쌓고 요새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요새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살기 시작했고 마을이 되었다. 당시 세워진 성벽과 요새가 지금도 남아 있다.
시그나기로 가는 길은 대부분 완만한 평지길이었다. 트빌리시에서 출발해 20여분 정도 달리니 평범한 시골 마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가레조'라는 기차역도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기차가 운행되지 않고 폐역사만 남아 있었다.
조지아의 시골 마을들은 가난해 보였다. 정비되지 않은 길과 오래된 집들, 사람들의 남루한 차림새, 낡은 간판이 내걸린 텅 빈 상점들…그 사이에 간혹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은 무표정하거나 고달파 보였다. 조금은 음울해 보이는 풍경이었다.
“나는 와인을 마시지 않아요. 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어느 시골마을을 지날 때 뜬금없이 택시기사가 말했다.
“정말요? 난 조지아 사람들은 당연히 와인을 좋아하고 많이 마시는 줄 알았는데요.”
“아뇨, 다 그런 것은 아니에요. 난 와인 대신 가끔 맥주를 조금씩 마셔요. ”
“저 사람들은 젊어서부터 와인을 많이 마셔서 저렇게 된 거예요.”
하며 담벼락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의 말은 조금 의외였다. 나는 당연히 조지아 남자들은 모두 포도주를 좋아하고, 술도 많이 마시는 줄 알았다. 나는 그만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모든 조지아 남자들이 술을 좋아하지도 않는 듯 했고, 또 와인보다는 와인보다는 '차차'라는 조지아식 '보드카'를 선호하는 것 같았다.
마을을 벗어나니 포도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포도밭은 끝없이 이어졌다. 시그나기에서 텔라비로 이어지는 조지아의 동부 평원을 조지아의 ‘와인루트’라 일컫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포도나무는 이제 막 심었는지 아직 작은 묘목 수준이었다. 땅 위에서 약 30센티 정도 올라온 정도로 포도넝쿨이 타고 올라올 막대들이 더 눈에 잘 띄었다. 포도나무의 잎이 자라나고 포도송이가 열리려면 아직도 몇 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늘에는 짙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이 아름다운 평원을 칙칙하고 음울하게 뒤바꿔 놓고 있었다.
농부가 포도밭을 일구고 있다. 트랙터처럼 생긴 엉성한 차량을 몰며 포도나무 사이로 무성한 노랑 망초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던 그가 우리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 왔다. 포즈를 취하며 자기를 찍으란다. 나는 사진을 찍기는 했지만 그에게 사진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진을 보여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사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또 다른 농부의 모습이 보였다. 밭 한 가운데 차를 세워 놓고 밭을 갈고 있었다. 그의 하얀색 차와 빨간색 셔츠가 선명하게 대비를 이루어 한 장의 그림같았다.
아직 자라지 않은 묘목 수준의 포도나무, 구릉 위에 깔린 짙은 먹구름, 텅 빈 들판, 이 모든 곳에도 불구하고 들녘에서는 풍요로움이 느껴졌다.
몇 달 후면 포도나무에는 포도송이들이 주렁주렁 달리겠지. 짙은 자줏빛의 포도알들은 달짝지근한 포도향을 내뿜을테고 말이다. 포도송이를 따 담아내는 농부들의 부지런한 손놀림과 분주한 발걸음, 잘 열린 포도를 보면서 환한 미소를 짓는 농부들의 모습이 벌써부터 상상이 되었다.
카헤티 지방의 비옥한 토양의 양분을 빨아들이고 태양과 바람을 머금으며 자신의 향을 만들어 낼 것이다.
조지아를 여행하면서 문득 ‘이 땅은 사람들을 위한 땅이 아니라 포도를 위한 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4월의 조지아 들녘에 높이 떠 있는 태양은 인간에게는 너무도 뜨거웠다. 마땅히 피할 곳이 없는 곳에서는 마치 형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쉼 없이 불어오는 바람 역시 인간에게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쉼 없이 불었다.
태양과 바람에 속절없이 노출된 인간의 피부는 검게 그을리고, 생채기 투성이가 된다. 그 결과 인간의 피부라 하기에는 너무 거칠고 두껍고 뻣뻣한 마치 동물의 가죽처럼 변해버리고 만다. 반면 포도나무들은 바람과 햇살을 맘껏 머금으며 최상의 포도주를 위한 완벽한 준비를 해가고 있는 것이다.
조지아인들은 ‘포도주를 담그는 일'을 신이 자신들에게 부여한 신성한 의무로 여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신은 지상의 모든 땅을 모든 민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땅을 모두 나누어주고 돌아오던 신은 신나게 연회(수프라)를 즐기던 조지아인들과 맞닥뜨렸다. 조지아인들과 함께 술을 마신 기분이 좋아져서 자기 몫으로 담겨 둔 땅을 조지아인들에게 줘 버렸다. 그 땅이 바로 지금의 조지아이다.
신은 자신에게 바칠 포도주를 만들 민족으로 ‘조지안’을 선택했고, 조지아인들은 신을 향한 감사의 인사로 포도주를 만든다.
9월 초가 되면 포도수확이 시작된다. 포도수확은 시그나기, 텔라비로, 크바벨리 순으로 차례차례 이어진다. 그때가 되면 이 알라자니 평원은 어떤 모습일 지 기대가 된다.
평원을 지나고 산 길로 접어들어 구비구비 몇 번을 도는가 싶더니 시그나기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택시기사가 대뜸 차를 세웠다. ‘여기가 포토존이야’하면서.
차에서 내리니 너른 평원과 산 경사면에 옹기종기 작은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이 보였다. 옛날 성 모양을 닮은 보드베 수도원도 보였다. 산등성이 너머로 알라자니 평원과 순백의 설산이 평화롭게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