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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리 Mar 29. 2023

24살, 월 300 받으며 일합니다.

2년 차 정규직 영어강사 스토리

저는 영어 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월 300만 원의 수입을 얻고 있어요. 물론 이 돈이 숫자 그 자체로 많고, 적고를 나타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의 기준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 업계 내에서, 꽤나 높은 강도의 업무에 비례하는 만큼의 돈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사라는 직업이 정말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직업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겪어 보면 '단순하다'의 '단'자를 알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적어도 저와 제가 몸담고 있는 곳은 그래요. 우선 회사에는 소비자가 있습니다. 이곳을 이용하는 소비자의 니즈는 꽤나 단순합니다. 


'내 아이의 점수를 올려주세요.'


말은 단순합니다. 하지만 학부모만 고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그들의 자식이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해집니다. 그들은 자신이 기르는 자식만큼, 저희를 믿고 맡기게 됩니다. 그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책임감을 무시할 수 없게 됩니다. 강사라는 직업은 10대라는 학생들과 3-40대의 학부모라는 소비자를 동시에 케어합니다.


10대들은 아직 자아가 형성되지 않았기에, 사춘기를 비켜간 아이들은 부모와 같은 신념을 가지고, 부모의 말대로 성실하게 공부를 하는 한편, 사춘기에 직격탄을 맞은 아이들은 부모와 반대로 하려고만 합니다. 그 사이에서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내가 네 편이야'라는 정신적인 지지를 하는 것에 있어서 감정적인 소모가 아주 큰 직업입니다.


의무교육을 마치고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맨 정신이 아닌 채로 오는 학원에서 입시 공부를 합니다. 영어뿐만 아니라 수학, 한국사, 운동, 댄스, 국어, 논술 등등 학교에서는 채울 수 없던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평일과 주말 없이 심지어 일요일까지도 학원을 갑니다. 그래서 저도, 주 6일 출근합니다.


단순히 제가 300만 원이라는 돈만 바라보고 이런 일을 했다면 위에 굵게 표시된 '책임감' '감정' '케어'라는 단어들은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죠. 물론 그렇게 매 해 연봉 앞자리가 바뀌면서 생기는 안정감은 크게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아이들을 보며 그들에게 생기는 '정'과 '욕심', 학부모와 래포를 형성하면서 느껴지는 '임무감', 치열한 입시 과정 속에서 한 몫하고 있는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이 저를 살아있게, 움직이게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계속 이 일을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이번 글의 제목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300이라는 돈은 크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이 강사 시장에 달려들지는 않을 테니까요. 실제로 사람들은 다른 곳의 이상에 휘둘려 '내가 있는 곳보다는 저곳이 천국 같을 테다'라는 착각에 빠져서 이곳저곳으로 옮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최근에 많이 가지고, 이직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출근을 한 순간부터는 뭔가 모를 에너지와 함께 하루를 반복하지만, 출근 직전, 주말 단 하루, 자기 전에는 뭔가 모를 찝찝함이 존재했어요. 이게 정말 '나'를 위한 일인가? '남(=학생)'을 위해 사는 직업이 내가 진정 원하던 삶인가? 하지만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새로운 직장을 가진다고 해서 '낙원' '천국' 소위 말해 '꿀 빠는 직업'이 있을까요? 그 사이에서 저는 저만의 기준을 세우고 가치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타이틀을 바꾸게 되었어요. '학원 강사'가 아닌, 오전에는 작가, 오후에는 학원 강사로 말이죠.


오전에는 글을 씁니다. 학원 강사 특성상, 그리고 제 기질이 아침형 인간이라 다행히 14시 전까지는 글을 쓰기에 최적화된 체내, 체외 환경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글을 쓰는 것은 저를 차분하게 만들어 주고, 생각의 폭을 넓혀주며, 머릿속의 잡념을 사라지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출근을 해요. 야근의 걱정이 없습니다.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오히려 에너지를 얻어요. 귀여운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고, 나중에 덜 힘들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두 개의 타이틀로 살게 된 지는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습니다. 4년 동안 심심할 때 글 올리며 운영하던 블로그에 매일 글을 쓰게 된 지는 이제 2주 정도 되고 있어요. 타이틀을 두 개 가지자는 것도 글을 올리면서 들었던 생각이죠. 이번 브런치 스토리 작가를 시작으로 조금 더 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풀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의 이야기는 24살에 머물러 있는데요, 이후의 글들도 계속 지켜봐 주세요. 저의 파란만장하고, 절대 치열하지 않은 삶들을 소개해 볼게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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