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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Sep 05. 2015

봄날이 간다

치매 나라로 여행 떠날 준비를 하던 엄마


요즘 와서 치매 증상이 더욱 심해진 엄마

치매 병력이 얼마나 되었는지 그동안의 햇수를 헤아려 보았다.

치매 일기를 찾아보니 처음 기록했던 날이 2012년 봄,

벌써 3년째다.


                     


 


     

“언니, 엄마가 아무래도 이상해.”

어느 날,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스렌지 위의 곰국을 태운다던지 현관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는 거야 보통 사람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는 일이지만, 엄마의 행동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것이다.

엄마와 함께 TV를 보면 화면 속의 인물들과 현실을 혼동하기도 하고, 병원과 약국 순례를 하면서 많은 약을 구입한다고 한다. 얼마 전 한의원에서 보약을 지어왔는데 또 다른 한의원에서 한약이 택배로 와서 물어보니 ‘몸이 허해서 보약 좀 먹으려는데 아깝냐’고 전에 없이 물건까지 집어던지며 화를 내시더란다.

결정적으로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갔던 건,

한 손자의 존재를 아예 모르시는데 대해 모두들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손자 이름을 말하자

"걔가 누구냐?"

고 말간 얼굴로 말씀하시던 엄마.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니 다행이도 아직 치매 직전 단계로 약을 복용하면 병을 어느 정도 늦출 수가 있다고 한다.


그 후 매일 아침마다 엄마에게 전화로 통화하며 상태를 점검했다.

엄마는 주로 아침에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모르겠다거나 외출을 해야겠는데 작년에 백화점에서 산 빨간 모자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등 일상적인 대화였기에 어지간하면 치매인지 분간하기가 쉽질 않았다.

그러나 같이 살고 있는 동생은 무척 심각했나보다.

맞벌이 부부인 동생은 그동안 아이들까지 키우면서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해주던 엄마에게 더 이상 의지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혼자 계시는 낮에 누군가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까지 되었다.


엄마가 집을 찾아오지 못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자 자연스럽게 요양원 얘기까지 나왔지만 우리가 보기에도 엄마는 요양원에 갈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큰딸인 내가 엄마를 모셔오게 되었다.

물론 그게 그렇게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란 것을 곧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너무나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또다시 봄이 왔는데 나는 겨울보다 더 우울하다.

엄마의 치매는 서서히 심해지고 있고

우리 집 강아지까지 근심을 보태고 있다.

이제 열 살이 넘었다고 노화현상이 슬슬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백내장이 생겨 여기저기 부딪치고 다닌다.

동물병원에서 검사를 했는데 당뇨나 다른 병은 없고 노환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두 손 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고 귀여웠던 미니였는데 노환이란다. 노환!

이렇게 봄날이 가고 있다.


                                                             2012년 봄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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