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나라를 여행 중인 엄마
엄마의 치매나라 여행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2012년 6월.
그래도 이때는 정신이 있으셨는지 옛날 생각에 잠을 못 이루던 나날이었다.
지금은 까맣게 잊어버린 그 여자,
아버지의 여자.
치매 초기인 엄마는 지금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30대에 가 계시다.
당시 아버지가 다방 마담과 바람을 피워 딴살림을 나서 엄마는 어지간히 속을 태우고 있었다.
화병이라는 게 정말 있는 건지 엄마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고...
이젠 세월도 흘러
엄마 속을 무던히도 태우던 아버지도 이미 돌아가셔서 이 세상에 안 계시는데,
요즘 와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약 50년 전 그 이야기를 꺼내신다.
그때 생긴 속병이 도져 소화가 되질 않아 제대로 드시질 못해 이렇게 야위었다.
그래서 요즘 나와 내 여동생이 엄마의 상처 가득한 마음을 치유하는데 적극 나서기로 했다.
엄마에겐 역시 딸이 있어야 하나보다.
시간이 많은 내가 엄마를 모시고 맑은 숲을 찾아 나섰다.
동생은 카드를 주면서
"언니, 기름값 해~ 엄마랑 맛있는 것도 먹고 ^^*"
일주일에 한 번씩 근교의 산에 모시고 가기로 했는데 가까운 축령산을 먼저 다녀왔다.
그 다음주는 광릉수목원으로 잡아놓았고.
예쁜 카페에서 차도 마시고
우아하게 식사도 하고
이곳저곳으로 맑은 바람을 쏘이고 다니는데도 엄마의 병은 낫질 않는다.
'그때 니 아버지가 내속을 얼마나 썩였는지....'
'그년이 낮짝도 어찌나 두꺼운지 조강지처인 내 앞에서 얼굴을 빤히 치켜들고...'
하면서 하소연하는 통에 전화기를 들면 한 시간은 기본으로 들어야 한다.
지난주에는 계룡산에 있는 어느 마음수련원에서 일주일을 혼자 계셨다.
수련이 끝나는 날에 맞춰 모시러 간 김에 근처에 있는 신원사에 들렀다.
고즈넉한 산사에서 새 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거닐어도 엄마는 우울하다.
엄마는 젊은 시절 굉장한 미인이었다고 고모들도 얘기하고,
내 친구들도 엄마들 중에 우리 엄마가 제일 예쁘다고 했었는데
정작 알아주어야 할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너무나 자존심 상하셨나 보다.
어서 엄마가 30대를 거슬러올라가
꽃다운 신혼시절 20대 나이로 가야만 속병이 나을 텐데
30대의 괴로운 시절이 너무 오래가고 있다.
2012년 6월
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