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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May 27. 2016

장미파 작가

박완서 작가를 흠모하다

그러니까...

작가라면 하다못해 초등학교 백일장에서 참방이라도 받아보았거나 일기 잘 쓴다는 칭찬이라도 받았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싹수라는 게 있는 거니까.

생각해보니 나는 학창 시절 백일장에서 상을 받은 기억이 없다.

다만 백일장이 열리고 있는 동안 내내 가슴 두근거렸던 기억만 남아있다. 뭔가를 쓰고는 싶은데 어떻게 표현하지?  고민하며 시간을 다 보내고는 정작 마감시간에 가서 절망에 울어버리고 싶었던 기억이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백일장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건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해마다 11월이 되면 각 신문사에서 공지하는 신춘문예 공모를 보고 가슴이 콩닥거리고 두근거려 잠못이루며 일 년에 한 번씩 계절병을 앓았다. 얘길 들어보니 다른 작가들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고 하는 걸 보면 나도 영 자질이 없었던 건 아니었나 보다. 적어도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지닌 마음만큼은 말이다.

막연히 뭔가를 쓰고는 싶지만 대학엘 가지 못한 나는 이제 결혼까지 하고 나면 더욱더 글 쓸 일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니 우울했다.  

그러던 중에도 마흔 살이 넘은 나이에 등단해 문청 아줌마들의 전설이 된, 박완서 작가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보며 희망을 가지기도 했다. 나중에 듣고 보니  등단이 늦었을 뿐이지 작품은 꾸준히 쓰고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럼 그렇지 싶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결혼한다고 해서 작가의 꿈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살림을 하다 보니  작가가 된다는 건 허황된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다 보면 신문 쪼가리 하나 읽을 틈도 없었으니 글까지 쓴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렇게 평생 살림에 파묻혀 살 줄 알았던 내게도 여유로운 시간이 찾아왔다.  아이들이 유치원엘 가게 되니  비록 오전 한나절이지만 나만을 위한 시간이 생긴 것이다.

당시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 친하게 지내던 이웃 여자들도 아이들이 유치원 가면서 육아로부터 잠시나마 해방이 되었다.  아침에 유치원 보내면서 만나면 어느 한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커피 마시고 수다 떨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되어버려 반나절의 자유는 끝이 난다.

처음 얼마 동안은 육아로부터의 해방감에 취해 수다를 즐겼지만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수다모임에서 빠져나왔다.  

이 황금 같은 시간에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무얼까 생각하니 역시 책을 읽고 싶었고 더 나아가서는 글쓰기였다. 그러나 막연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저 문학사상을 정기 구독하고 그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작품 읽는 걸로 갈증을 풀었다.  우리의 멘토 박완서 작가의  기사가 나오면 모두 찾아 읽기도 했다. 그분은 책상도 없이 밥상 하나 펴놓고 글을 쓰신다기에 '그래, 이렇게 능력 있는 작가도 열악한 환경에서 글이 나오는데. 아직 젊은 나도 가능성은 있어' 하며 열정을 키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책상이 없어 밥상에서 글을 쓴 게 아니라 밥상 앞에 앉아 집필하는 게 그분의 습관이었단다. 게다가 대가족의 온갖 살림을 다하면서 글을 썼을 거라는 짐작이, 사실은 살림을 전적으로 해주는 사람이 있어 마음 놓고 집필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긴 글을 쓴다는 게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인가. 선생의 그 많은 작품들이 빨래하다 말고 쓰고 김치 담그다가 쓰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사뭇 위안이 되었다.


글은 혼자 쓰는 외로운 작업이라고 여겼던 때, 서울에 유명한 작가들이 강의하는 글쓰기 문화센터가 생겼다는 기사를 보고 또다시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곳에 가면 뭔가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지방에서 살아야 하는 내 처지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얼마나 갈망했으면 새벽 비행기 타고 서울로 날아가 강의를 듣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얼마 후 내가 사는 도시에도 문화센터가 생기면서 글쓰기 강좌가 열려 비행기 탈 일은 없게 되었다.  유명 작가는 아니더라도 등단작가의 소중한 말 한마디 한마디 놓칠세라 수강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나갔다.

글쓰기 좋아하는 동지들을 만나니 그동안 동네 아줌마들과 차 마시며 수다나 떨었던 시간들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러나 그 수다들이 내 글쓰기의 자양분이 되었다는 것도 나중에 깨닫게 된다. 작가에겐 공짜가 없고, 세상 모든 일이 훌륭한 소재가 된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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