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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May 29. 2016

그대, 글쓰기가 쉬워 보이는가?

대필작가의 변辯   

대필작가를 유령작가라고도 한다.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다른 사람이 되어, 그 사람의 생각과 입장을 글로 써주고 대가를 받는다.

나도 다양한 종류의 대필을 해준 적이 여러 번 있었으니 유령작가라고 볼 수 있겠다.

글쓰기를 처음 시작한 20년쯤 전부터 글이 돈벌이가 되다 보니 글을 정신적 자산으로 여기게 되었다.

내 이름으로 세상에 나가지 않는 대필 글은 저작권까지 포기한 셈이 되니 더 비싼 값을 받아야 한다는 프로의식도 가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어느 부인도 단골이었는데 내가 써준 글 덕분에 이미지가 높아져서인지 꽤 후하게 값을 쳐주곤 했다.

그러다 보니 직업병도 생겼다.

원고료를 주지 않는 동호회 카페 같은 곳에 사뭇 진지한 글을 쓰다 보면 이 정도면 얼마짜리쯤 되겠는데? 싶은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다. 글은 곧 돈이라는 인식이 박혀 글쓰기를 지극히 아끼게 된 것이다.

내가 글 써서 몇 번 상도 받았다는 사실이 주위에 소문나면서 청탁도 들어왔다.

주로 자식들 대입시 때와 취업 때 필요한 자기소개서였는데 합격이 되면 거하게 밥을 얻어먹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고료를 받곤 했다.

한 번은 동네 친구가 남편 이름으로 회사 사보에 낼 기고문을 쓰느라 끙끙대길래 윤문을 봐주었다. 말이 윤문이지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해서 줬는데 그  글이 사보에 실리고 여기저기서 잘 썼다는 인사를 받은(당연하지, 프로작가가 쓴 글인데)  남편의 사기가 올라가 시댁 식구들로부터 칭찬받았다며 고마워했다.

그 친구는 답례라며 카페에서 차 한 잔 산 걸로 끝이었는데 어쩐지 무시당한 기분이 들었다. 글을 쓴 노동의 대가가 고작 카푸치노 커피 한 잔 값이라니. 나의 직업병이 깊어졌나 보다고 우울했던 적이 있다.

얼마 전에 이런 경우가 다시 생겼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모임에 나갔는데  사회적으로 비교적 성공한 친구가 (남편이) 내 이력을 듣고 반색을 하며 가까이 왔다.

몇 번 모임 하면서 나를 열심히 챙기더니 드디어 속내를 보였다. 자기가 간부로 있는 어느 특별한 모임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글을 하나 실어야 한다며 짧은 글 하나 써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글의 주제가 쉽게 떠올랐고 짧은 분량이라 하루 만에 써서 보내주었더니 너무나 고맙다며 덕분에 자신의 입지가 올라갔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한 달 후쯤에 또 연락이 왔다. 네가 너무 잘 써줘서 또 청탁받았지 뭐냐고 원망스러운 애교를 부리길래 마침 할 일도 없고 해서 또 써줬다. 이번 주제는 잘 떠오르질 않아한 일주일쯤 고심해서.

그 친구는 그 글 덕분에 자기를 대하는 회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며 작가 친구를 둔 자기는 행운아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엊그제 이 친구가 또 전화를 했다. 그 잡지에서 아예 자신의 고정칼럼을 하나 정해놓고 계속 글을 써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그 잡지가 뭔지 본 적도 없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이제는 원고료를, 아니 대필료를 계산해 볼 때가 온 것이다.

나는 조심스레 이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쪽에서 원고료를 얼마로 책정하고 있느냐고.

그랬더니 이 친구 내게 전화를 해서는 깔깔 웃기부터 했다. 원고료 같은 건 없다고.

자선봉사단체이기 때문에 잡지도 회원들이 자비로 출판하고 있는데 회원들이 낸 글을 싣다 보니 편집자도 윤문 보느라 죽을 맛이었을 것이고, 그나마 전업작가가 써준 멀쩡한 이 친구 글에 옳다구나 반색해서 고정란을 만들었을 것이다.    

중간에 이 친구를 만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밥도 먹고 고가 화장품 등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게 원고료였던 셈이다.

앞으로도 써줄 글에 대한 대필료도 이런 식일 거라고 생각하니 예의 그 직업병이 도졌다.

작가 모임에 나가 이 얘기를 했더니 모두들 절대 써주지 말라며 격분했다. 글이 어떤 이에게는 출세의 수단이 되므로 대필료가 억대가 될 수도 있는데 공짜 글이 웬 말이냐는 것이다.

대필료 받으면서 글을 써주는 것만 해도 작가로서는 억울한 일인데 남의 글을 자신의 글인 양 내보는 데는 어떤 대가가 당연하게 있어야 할 것이라는 판정을 받고 나니 내 직업병이 도진 게 아니구나 내심 안도하게 되었다.  

나에게 글을 부탁하는 그 친구의 태도는 분명 정중하고 고마워하고 있지만 글쓰기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식 같은 글을 그냥 달라고 하는가 말이다.

글은 잘 못쓰지만 말솜씨는 보통이 아닌 이 친구에게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고민이다.

서로 글로 주고받으면 내가 이길 자신이 있는데, 만나면 생글생글 웃는 이 친구에게 또 넘어가버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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