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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Sep 08. 2017

엉터리 북유럽 여행기

1. 여행은 그렇게 떠나는 거란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옛날부터 내겐 여행에 대한 징크스가 하나 있다.

어딘가 여행을 떠나려고 계획하고 있으면 직전에 꼭 무슨 일이 생겨서 떠나지 못한 적이 여러 번 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도 그랬고, 하다못해 신혼여행 조차도 계획대로 원하는 곳으로 가질 못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여행계를 하자거나, 몇 달 전부터 여행 계획 짜자는 지인들이 있으면 나는 무조건 손사래부터 쳐왔다.

내 여행 계획을 미리 알고 방해하는 도깨비를 피하려면 계획 없이 훌쩍 떠나버리는  방법이 있는데, 내가 다녀온 해외여행 대부분은 그렇게 이루어진 셈이다.

이번 북유럽 여행도 그렇게 도깨비처럼 갑자기 떠나게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떠나기 일주일 전에 여행사에 결재하자마자 발목을  잡혔다.

친정 동생이 병원에 입원을 한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주저앉았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지만, 나는 결재가 이미 끝나서 취소하게 되면 엄청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나 자신부터 설득했다. 어차피 떠나지 못한다 해도 내가 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함께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은 몇 년 전부터 적금을 부어가며 계획한 건데, 한 친구가 건강상 이유로 취소하게 되어 대타로 내가 들어가게 되어 여행 갈 사람은 따로 있었다느니 어쩌니 하며 여행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어 있던 참이었다.

아무튼 눈 질끈 감고 뒤돌아보지 말고  떠나자 하며 여고시절 친구들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원래 여행이란 그렇게 떠나는 것이란다.


환갑 진갑 지난 여인들의 북유럽 여행은 전적으로 여행사의 패키지 투어에 의존하게 된다.

남편과 배낭 메고 함께 떠날 수 있는 날이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미리 답사 가는 거라고 큰소리치며 나선 길은 결코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다.

패키지 여행이 대부분 그렇듯이 하루에 많은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게다가 오랜만에 자유를 만끽하는 여고 친구들과의 여행이다 보니 수다 떠느라 여기가  거기 같고 거기가 여기 같은 여정이 계속되었다.

처음엔 장소라도 메모해가며 여행기 쓸 거라는 야무진 생각에 사뭇 진지했지만, 워낙 바삐 이동하는지라 저녁에 숙소에서 곯아떨어지고 나서 하루  지나면 어제 어디엘 다녀왔었는지 하얘졌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 찍은 사진들이다.

아직도 여기가 어딘지 헷갈린다.


기억하기론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버스 타고 이동하다가 화장실 가라고 내린 휴게소 같은데,  그 옆에 있는  이곳은 150년쯤 된 교회라고 한다.

대부분의  유럽이 그렇듯 유료화장실인데다 다음 목적지까지는  참을만해서  이 교회로 들어가 둘러보았다.

교회 내부보다도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이 이 묘지들이다. 교회 건물을 삥 둘러가며 있는 이 묘지의 주인들은 이 마을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란다. 100년 이상 되는 묘지도 많은데 꽃을 심어 아름답게 꾸며놓았다. 이날도 꽃을 새로 심으며 돌보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그 후로도 유럽 도심 곳곳에서 많은 묘지들을 보았지만  모두 다 평지에 공원처럼 잔디도  잘 가꾸어 놓아서 우리나라처럼 혐오시설로 생각되질 않았다.

불과 두 달 전에 엄마를 수목장으로 모셨던  터라 내 마음이 더 편했는지도 모른다.


두서없는 여행기는 계속된다.

코펜하겐의 상징 인어공주 동상을 보러 간 날.

관광객이 어찌나 많은지 가이드의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외침만 기억에 남는다.

인어공주 할머니의  실루엣이라도 건졌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내가 중학교 때 눈물을 흘려가며 읽었던 기억이 있었지만, 내가 그녀를 너무 늦게 찾아왔나 보다. 별로 감흥이 없다가 집에 와서야 생각났다.

여행은 그런 건가보다.

집으로 돌아와 트렁크를 베란다에 내놓고 햇볕에 말리면서야 새록새록 생각나는 것.

이제부터 하나하나 12일간의 기억을 더듬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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