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교토 여행
지난 연말 일본 교토를 여행하고 왔다.
재작년 겨울에 남편과 함께 후쿠오카 온천여행을 다녀온 후 두 번째로 다녀온 일본 여행이다.
일본, 하면 나는 엄마가 먼저 떠오른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김구나 안중근 열사 위인전을 읽으며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있는데, 엄마는 일본 사람들이 참 예의 바르고 경우 있는 사람들이라고 칭찬을 종종해서 학교 교육과의 괴리로 혼란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아마도 정치적으로는 상관없이 일본 사람들이 엄마의 어린 시절에 좋은 추억을 남겨주었나 보다.
딸과 함께 한 모녀 여행이다 보니 나도 내 엄마 생각이 났던 걸까?
나와 함께 여행한 딸은 이미 결혼한 유부녀다. 남편들을 두고 모녀가 해외여행을 간 셈인데, 생각해보니 좀 뻔뻔한 장모가 아닐까 싶은 마음이 나중에야 들었다.
애초에 여행 계획은 딸 혼자 가는 거였다.
여행을 함께 하기로 했던 사위가 회사 일로 도저히 짬이 나질 않자 딸 혼자 여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럴 경우 대체로 여행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딸이 하도 강경하니까 사위도 마지못해 찬성했나 보다. 우리 집에 다니러 왔을 때 딸의 여행 계획을 알려주면서 사위는 은근 말려주길 바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장모라는 사람이 그보다 한 술 더 떠서 '나도 같이 가자~' 하고 말았으니.
두 남자가 철딱서니 없는 모녀라고 생각하며 걱정하거나 말거나 우리는 개의치 않고 룰루랄라 떠났다.
딸은 일본이 처음 이라면서도 미리 준비를 잘해서인지 간사이 공항에 내리자 교통 패스카드를 사서 충전을 하고 유심도 사서 교체를 하는 등 차근차근 준비를 했다. 나는 옆에서 구경만 해도 자유여행 기분으로 업되었다.
간사이 공항에서 교토 시내까지는 JR 하루카 기차를 탔다. 오래된 기차라 그런지 내부는 마치 우리나라 무궁화호 정도 수준의 느낌이지만 앞 의자와의 간격도 넓고 왠지 분위기도 있어 보였다. 교토까지는 75분 정도 걸렸다.
두 모녀는 기차역에서 내려 호텔을 향해 캐리어를 질질 끌고 갔다. 딸의 말로는 7,8분 거리니까 걸어가자고 한 건데 길을 잘못 들어 15분 정도는 걸린 것 같다.
어쨌거나 예약해둔 호텔까지 무사히 도착했는데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딸은 어지간히 긴장했었나 보다.
로비에서 투숙 안내를 받고 호텔방에 들어서자마자 침대로 가서 대자로 뻗으며 말했다.
"우와- 무사히 도착했다!"
베이스캠프인 그랜드 바흐 호텔은 교토 시내 한복판에 있어 여러모로 편하고 규모가 작아서 오히려 더 좋았다. 단체 여행객들이 없으니 항상 조용하고, 작지만 규모는 다 갖춘 스파 또한 깨끗하고 좋았다.
호텔 주변에 먹을거리가 워낙 많아 조식을 신청하지 않았는데 하루 정도는 먹었어도 괜찮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집에 돌아와서야 들었다.
호텔 레스토랑에는 밤 9시가 되면 각종 음료와 오차스케라는 녹차 말아먹는 야참을 제공해줬는데 지금도 가끔 생각날 만큼 맛있게 먹었다.
도착한 첫날은 호텔에서 뒹굴며 쉬다가 호텔 길 건너 니시키 전통시장 구경을 하는 등 몸을 풀었다.
'교토의 부엌'이라고 불릴 정도로 시장 안에는 여러 가지 진귀한 음식들이 눈길을 끌어 규모가 꽤 컸는데도 다리 아픈 줄 모르고 한참 동안 걸어 다녔다. 알고 보니 니시키 전통시장은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단다.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두부도넛과 타코야키, 해물꼬치 등 길거리 음식도 먹으며 즐겼다.
작은 포장으로 만들어 놓은 도미회도 한 팩 사 와서 호텔에서 먹었는데 꽤 싱싱하고 맛있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음식들을 사 먹으며 한 때 일본산 먹거리를 피했던 생각이 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일본의 원전 사고 이후 일제 화장품까지 갖다 버렸던 기억을 깨끗이 잊어버렸나 보다. 교토의 시리도록 맑고 아름다운 하늘을 보면서 정말 보이지 않는 불순 물질이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늙은 나는 실컷 먹어도 되지만 앞날이 창창한 딸에게는 왠지 제지하고 싶었던 일본의 식도락 여행이었다.
그러면서도 먹을 건 다 사 먹었다. 맛있는 게 너무 많았으니까.
다음 날은 기요미즈데라, 즉 청수사에 올랐다. 물론 맛있는 먹거리는 본격적으로 계속된다.
청수사 포스팅은 다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