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하기 싫어서 쓴 글
그동안 몇 번을 노트북 앞에 앉았다. 한두 문단을 써 내려갔다가 재미없어. 한번. 얘기가 산으로 가는데? 두 번. 그렇게 몇 차례 글을 뒤집어엎고는 당연한 사실을, 내가 항상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나는 재밌는 글이 화수분처럼 나오는 사람이 아니다. 완벽한 글을 써낼만한 역량이 없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이경미 감독의 에세이를 보면 그런 말이 나온다. 쓰레기를 쓰자.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도 그냥 앉아서 쓰레기를 쓰자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자는 것이다. 기적은 없다. 그렇게 쓴 글을 어쨌든 쓰레기이겠지만 멈춘 기계를 다시 돌리는 것보다는 천천히라도 똥이라도 만들어내고 있던 기계를 관성적으로 돌리는게 낫다. 어쩌다 멋진 게 나올지도 모르니까. 그래 나도 쓰레기를 쓰자.
최근에 학업적으로 , 개인적으로 잠시 멈춤의 시간이 왔다. 하루 종일 침대에만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난봄, 코로나로 인한 2주 방학 동안 깨달은 게 있었다. 나는 그렇게 누워있으면 우울증 직전까지 간다는 것 그리고 멈춰놓은 일상을 다시 돌아가게 만들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 월요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일요일에도 일하면 된다는 농담 (헛소리)가 미친 소리 취급받으면서도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일 거다. 그래서 몸을 일으켜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집안을 돌봤다. 멈추지 않기 위해서. 일상에 잠시 멈춤이 아니라 느리게 재생을 걸어두기 위해서였다.
다른 어떤 활동들과 집안일은 좀 다른 속성을 지닌다. 집안일을 싹 하고 나면 집안이 깨끗해지고 이 깔끔하고 기쁜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하지만 곧 나의 존재 자체로 집안은 다시 어지럽혀진다. 내가 끊임없이 흘리는 머리카락, 요리하고 먹고 나서 생기는 설거지거리들. 샤워한 번만 해도 생기는 물때들과 수건들 집에만 있는데도 생기는 빨래들. 그리고 쌓이는 먼지들. 그렇게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쪽으로 간다는 당연한 물리법칙을 지켜보고 있다가 다시 에너지를 쏟아 집안을 깨끗하게 만든다. 마치 시지프스가 된 것 같다. 열심히 언덕 위로 바위를 굴려 올리지만 중력에 의해 다시 굴러 떨어지는 바위 그리고 다시 열심히 그걸 끌어올리는 시지프스.
예전에는 시지프스가 그 바위를 왜 굴려 올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아래에 두고 그 큰 바위에 기대서 차가운 칵테일이나 마시면서 휴가를 즐기면 안 되는 걸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우리는 공은 그 아래에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마음의 명령을 듣는다. 그게 아래에 있으면 그 사실 자체로 괴로움이 있다. 집안일은 끊임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공과 같아서 계속 끌어올려줘야 하지만 그 아래로 떨어지는 걸 용납할 수는 없는 어떤 이유가 존재한 것이다. 나에게는 삶을 깔끔하게 영위하고 싶은 욕망, 시지프스에게는 신의 형벌이 그것이다.
다양한 수납법, 집안 정리법 등이 끊임없이 인기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시지프스의 형벌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어쨌든 그들이 결국 해방하지 못했다는 것을 동시에 증명한다. 인간은 집안일의 형벌에서 영원히 해방될 수 없을 것이다. 집안일을 편하게 해 주는 그 어떤 것들이 생겨나도 형벌은 끝나지 않는다. 그 집안일을 도와줄 무언가를 지불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어차피 끝낼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바위를 끌어올려야 한다. 묵묵하고 성실한 불평 없는 시지프스처럼. 청소기 먼지통을 비우면서 생각한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감내해야지 어쩔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