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바보로 만들었소.
1987년,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노래는 달콤했었다.
뜻 모를 가사 위로 부끄러운 냄새의 멜로디가 흘렀다.
5교시 체육시간.
노작지근한 몸을 이끌고
체육복을 갈아입었다.
넓은 운동장은 우리 반이랑
2학년 선배 남자반이 같이 쓰고 있었다.
선배들은 축구를 하고,
우리 반은 피구를 하려고 주번이 주전자 물로
운동장에 선을 긋고 있었다.
줄 맞춰 서서 준비운동을 했다.
휘슬 소리에 맞춰 팔을 돌리고 고개를 젖혔다.
팔은 360도로 돌리는데, 내 의지는 절전모드였다.
다 같이 움직이는데
나는 단체사진에서 눈 감은 애였다.
옆줄 여자애가 나에게 말을 시켰다.
“루달아 오늘 수업 끝나고 어디 가?”
“응, 안드로메다 견학 가.”
친구가 자지러지게 웃었다.
나도 그 웃는 모습이 웃겨서
몸을 흔들며 같이 웃었다.
그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여자 체육 선생님이 갑자기 뛰어왔다.
허공을 가르더니 내 뺨을 후려쳤다.
하얀 면장갑을 낀 손으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고개가 꺾였다.
착.
그리고 바로 연타.
내 옆 친구도 같이.
착짝. 촤악.
무방비였다.
뺨 위로 불길이 번지듯 얼굴이 금방 달아올랐다.
선생님은 다시 돌아갔다가
해맑은 미소로 지으며,
흰 손에는 출석부를 들고 왔다.
느닷없이
우리 머리를
두 번, 쫙쫙 내리찍었다.
나는 울었다.
친구는 안 울었다.
체육 선생님은 표정 없는 근육으로 말했다.
“야! 울지 마!”
시간은 멈춘 것 같은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마음은 터질 것 같았고
머리는 텅 비었다.
그 울음이 금지사항이었는지,
더 화를 부추겼는지
운동장 한복판에서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
둘이 무릎을 꿇었다.
그 사이로
2학년 선배들 축구공이
우리 머리 위를 몇 번이나 넘나들었다.
난 살아있는 생물이 아니라
발로 차이는 돌멩이 같았다.
'이젠 학교에 얼굴을 어떻게 들고 나니지?'
얼굴이라도 공을 맞으면 더 창피할 것이고,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구멍도 없었다.
엉켜버린 자존감과 시퍼런 긴장감이 뒤섞였다.
식은땀조차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남자반 체육선생님이 조용히 오셨다.
손을 내밀며 일어나서 가라고 하셨다.
그제야 여자 체육 선생은
우리를 신경도 안 쓰는 얼굴로
피구를 시작했다.
피구를 좋아했지만
못하는 척했다.
내가 흘렸던 눈물은
믹서기에 갈린 콧물 같았고
대야에 젖은 양말을 쥐어짠
구정물 기분이었다.
그날 맞고 나서
마치 기분은 점점 썩은 청과물 즙으로 젖었다.
맑아질 가망이 없어 보였다.
며칠 뒤,
여전히 자존감 바닥으로 지냈는데,
세상의 기준과는
조금 다른 속도로 걷는 사람...
첫 미팅이었던 불편한 2학년 선배.
학교 교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왜...
선배는 편지를 줬다.
하필 종이도 반듯했다.
이런 날엔 구겨진 종이가 와야 맞는 건데.
알고 보니
그 운동장에서 축구하던
2학년 선배반 중 그 오빠는 날 본 것이다.
나는 벌을 받고 있었고,
공은 내 머리 위를 넘나들고 있었고,
나는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선배는 분위기를 Wi-Fi처럼 못 잡았다.
편지를 내밀며
떡볶이 먹으러 가자고 하는 것이다.
집에 가서
혼자 읽기엔
조금 위험해 보여서,
그 자리에서 편지를 펼쳤다.
' 봤다. 너. 체육시간. 무릎 꿇고 기도했다.'
나는
벌을 서고 있었는데,
그 오빠는
기도 중이라고 생각했다.
신은 없었고,
그는 고백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 전혀 다른 종교를 믿고 있었다.
사랑은
체벌의 언어로
전해졌다.
15년이 흐르고, 내가 운영하는 공간에서
수학 선생님과 함께 연주를 했다.
씁쓸하고 스트레스 쌓인 날이면
내 안의 해묵은 구정물을 투명하게 걸러내는
나만의 필터 곡이 됐다.
*말할 수 없는 비밀 OST (쇼팽 왈츠 7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