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선풍기는 퇴근했는데,
바람 혼자 야근 풀근무하던 9월의 밤이었다.
나는 매달 엄마 책상 위에 헌납봉투를 올려두고
밥만 먹고 튈 생각으로 집에 가고 있었다.
근데 2년 동안 내 피 같은 돈으로 차려준 분식집이
그날따라 문이 닫혀 있었고 불길했다.
그리고 현관문 여는 순간부터 이상했다.
이삿짐 박스. 비닐. 테이프.
이건 집이 아니라 쿠팡 물류센터 창고 같았다.
신발을 휙휙 내던지며 안방으로 뛰어가 열어봤다.
엄마는 이불 덮고 머리를 감싸 쥔 채 누워 있었다.
“엄마 왜 그래!! 어디 아파?!”
“어… 그게… 흑흑…”
“도대체 뭔데!! 마루에 이삿짐들은 뭐고?!”
“그... 그게 집을 팔았는데… 중도금을 잊어버렸어…”
“뭐? 이 집을?! 언제?!”
“일주일 전에… 가게도 내놓고, 집도 팔고…”
“아니 나한테 말도 안 하고? 그럼 중도금은 어디 갔는데!!”
“분명 집에 뒀는데… 기억이 안 나…
아무리 뒤져도 없어…”
정상이면 여기서 같이 울었겠지.
근데 나는 갑자기,
이상하게,
근거도 없이,
내가 찾을 것 같았다.
“엄마. 일단 진정해 봐! 내가 찾을게.”
“네가 진짜…? 그래그래 ”
“대신 약속 하나 꼭 해야 해”
“아이고 뭐든지 다 해줄게 ”
“ 나 쌍꺼풀 수술비 200만 원 바로 줘 ”
엄마는 인생 최악의 날이자 성형 계약 체결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제발 찾아줘…”
그 순간부터 내 눈이 CCTV처럼,
동공 풀가동, 눈알 독립운동이었다.
이성은 퇴근했고,
직감이 수당 근무로 들어왔다.
나는 집 안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손도 자동으로 따라 돌았다.
무당들이 굿판에서 춤추듯이.
동자 방울이 짤랑거리는 소리는 없었지만,
내 청바지 속에 토큰 소리는 들렸다.
짤랑짤랑.
나는 장판 위를 천천히 밟아봤다.
여기 밟으면 느낌 없고,
저기 밟으면 더 없고.
어디는 괜히 서늘했고,
어디는 발바닥이 찌릿했다.
갑자기 나 혼자 수맥 탐사 모드에 들어갔다.
눈 반쯤 풀린 채로,
다시 한번 한 바퀴 돌았다.
로봇청소기보다 목적 없는 동선으로 움직였다.
부적은 없고
작두도 없고
신장대 나무 가지도 없이,
오직 촉만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벽에 걸린 성경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파란 양말통 바로 위.
예수님은 액자 속에서 아무 말이 없었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나는 갑자기 이상할 정도로 확신이 생겼다.
논리도 추리도 없이
몸이 먼저 멈췄다.
“여기다!!”
뇌 속 내비게이션 순간 켜졌다.
나는 거의 바야바처럼 달려가서
파란 양말통 앞에 섰다.
망설임 하나 없이 양말통을
뒤집어엎었다.
양말이 우르르 쏟아지고,
통통한 양말 두 짝을
야매 초능력으로
손에 기를 넣고 휙 까봤다.
양말을 뒤집는데,
꼬수운 냄새 말고 자본주의 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십만, 백만 원짜리 수표와 현금들.
중도금 돈다발.
돈이 먼저 튀어나왔다.
나는 그제야 놀랐다.
그걸 본 우리 엄마,
죽은 나사로 OS 업데이트되듯 벌떡 일어나서,
얼굴이 굳다가 웃다가 덩실덩실 춤을 췄다.
방금 전까지 화병이었다가,
돈다발 축제 MC였다.
감정 시스템 오류였다.
나도 같이 췄다.
이건 그냥 항상 기뻐하라였다.
집은 팔렸고,
분식점도 내놨고,
고모들이 사는 송파구로 갈 계약도 해놨다.
날 버리고 가든 말든이었다.
그 자리에서 엄마는 백만 원 수표 두 장을
시원하게 내 손에 쥐여줬다.
나는 그걸 들고,
"어무니 이사 잘 가시고 행복하세요!"
5분 거리 지하방까지, 인생 최고 기록으로 달렸다.
계단 내려가며 웃고,
현관 열며 웃고,
신발 벗다 말고 또 웃었다.
인생이 망해도, 눈꺼풀은 두 겹으로 살 수 있다는...
슬슬 누워서 잠을 청하는데
미스코리아로 변신한 내가 아롱아롱거렸다.
나도 이뻐질 수 있다는 상상으로
소풍 전날 기분이었다.
수표 두 장 끌어안고
'나는 200만 원짜리 미스 코리아다!!'
혼자 피식 웃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다음 날,
폴더폰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가게는 아직 안 팔렸지? 내가 살려 볼게!"
"뭐? 김밥은커녕 밥도 못하면서? 무슨 업종?"
"무언가 촉이 왔어! 일단 저녁에만 가게 운영 하게."
엄마는 나에게 가게를 해보라고 했고,
다음날,
일단 논현동으로 쌍꺼풀 수술부터 알아보러 다녔다.
나는 그날 이후 통장보다는
내 촉을 먼저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