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짝사랑은 손등에 국도 깔렸다

외사랑의 본질

by 루달


세상은 IMF 후폭풍, 난 얼굴에 리모델링 시절이었다.


엄마에게 쌍꺼풀 수술 비용을 받기 며칠 전,

결혼한 친구가 불러서 술자리에 나간 적이 있었다.


1차에는 친구의 남편 친구가 같이 나왔다.

체육 임용고시 준비 중이라 했고, 키는 185cm,

박진영을 닮았고, 젓가락을 내 것부터 챙겨주었다.

통장을 맡기면 잔액부터 지켜줄 것 같은 인상이었다.

난 입술을 살짝 깨물며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겨드랑이라도 씻고 나오는 건데'


그 남자는 소주병을 숟가락으로 뻥 땄고

안주 나오기 전 뜨거운 콩나물국을 후루룩 마셨다.

예상외의 행동이 호기심을 끌었다.

분명 겉멋인데, 완성도가 높았다.

난 이미 그 남자의 마성에 빠져버렸다.


2차로 두꺼비 노래방에 갔고,

나는 이은미의 〈기억 속으로 〉를 불렀다.

표정부터 과몰입이었다.



그 남자는 내가 마이크를 놓자마자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여태 들었던 노래 중에 네가 제일 잘해.”


그 순간, 콩닥콩닥.

내 머릿속에서 혼인신고서가 자동 출력됐다.

혼수 상담 예약, 신혼여행 장소, 새초롱 입덧,

예식은 우리 교회에서... 시뮬레이션이 돌아갔다.

노래방 기계는 꺼졌는데, 내 인생 기획서는 켜졌다.


거기다가 그 오빠는 다 마신 캔맥주를 하나 집더니,

아무 생각 없다는 표정으로 캔을 콱 찌그러뜨렸다.

내 눈에 뭐가 씌였을까?

20년 넘게 사는 동안

캔깡통에서 멜로디가 들리기는 처음이었고,

손등에 핏줄이 튀어나오는 모습이

혈관이 아니라 사회기반시설 같았다.


환청도 환각도 아닌 대환장이라고 할까?


그 오빠 손등에는 국도가 쫙 깔려 있었다.

내 심장은 여기저기 뛰고

맥박 톨게이트도 같이 뛰었다.



친구가 툭툭 치면서,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루달아 , 저 오빠 너한테 관심 있는 것 같아.”

“정말?"

그때 친구 신랑이 캔을 뒤집으며

맥주가 벌써 다 떨어졌네!”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더 시켜요! 제가 살게요!”

관심은 못 사도 맥주는 살 수 있으니까.


나는 연애는 몰랐고, 결제는 알았다.

결국 노래방비도 내가 냈고,

오르골 소리 나는 캔맥주도 계산했다.


밖으로 나오자 남자가 말했다.


“루달아, 집 어디야? 오빠가 데려다줄게.”

누군가 나를 무서워하지 않고,

데려다주는 것도 처음이었다.

쑥스러워서 고개를 숙였다.


“아… 네…”

"루달아 잠깐만 기다려.”


그러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가,
자전거를 끌고 돌아왔다.


헤드라이트도 없는 생활형 자전거.
체인 소리만 드르륵 나고, 가로등 불빛에 바퀴가 번들거렸다.

앞에 바구니 달린 생활형 자전거였다.

IMF였고, 로맨스도 구조조정 당했다.


태어나서 친오빠 뒤에 세발자전거 탄 이후

처음으로 뒷자리에 올라탔다.



그때 몸무게는 85킬로였다.

뒷자리는 좁았고, 인생은 무거웠다.


루달아 허리 꽉 잡아.”


나는 모르겠어서 일단 잡았고,

엉덩이는 최대한 뒤로 뺐다.

도덕과 물리의 절충안이었다.


자전거는 출발했고,

그는 운동신경으로 중심을 잡았고,

나는 정신으로 중심을 잃었다.


자전거가 앞으로 쏠리는 순간,

나는 중심 대신 이성을 놓쳤고,
투포환 선수의 마지막 시도인 양

온 집안 생계의 무게 실어서 오빠의 등을


!!!



“아야아야~~ 악!”


급브레이크!

내가 놀래서 때린 건지, 좋아서 때린 건지...

중요한 건 엄청 아팠을 테고

고장 난 내 마음은 인사도 없이 그냥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뛰어왔다.


데이트는 끝났고,

가상 혼인신고서는 폐기됐다.

집에 오자마자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다이어트와 쌍꺼풀 수술이 목표가 됐다.

언제부터인지 옷가게, 미용실, 식당..

나를 보는 사람들의 머뭇거림 시선도 알고 있었다.


오늘 만난 남자는 매너 있어서

짝사랑이라도 좋다.

여기서 끊어지면 완전히 끝나버리는...

삼각김밥의 끈이 되기엔

너무나 아까운 인연이다.


내 짝사랑 국도는

진입하자마자 공사구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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