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나는 26살 독신주의자였고,
신용카드 5개, 마이너스 천만 원 통장.
내가 벌인 일은 아니고, 은행이 떠민 결과였다.
집은 지하 단칸방 100에 33만 원에 살았다.
지나고 나니 내 명의 집 중에 제일 부자였다.
그 백만 원은 진짜 내 돈이었으니까.
가스레인지는 있었고, 수저도 없고, 밥그릇도 없고.
대신, 나보다 더 비싼 피아노만 모시고 살았다.
TV는 없었고, 컴퓨터만 있었다.
외로움은 뉴스로 안 없어지니까.
끼니는 5분 거리 엄마 집 가서 몰래 먹고,
설거지는 5초 만에 도망쳤다.
저녁엔 친구들이 내 방으로 퇴근했다.
친구들 반은 유학 가버렸는데,
그래도 친구는 너무 많았다.
네다섯 명씩 굴러다녔고,
족발 뼈다귀도 굴러 다녔다.
페리카나 양념통닭,
이름 모를 중국집 전단지들을
베개로 이불로 사용했다.
내 방은 원룸이 아니라
난민 캠프였다.
한 달 수입은 200만 원 정도였다.
돈은 있었고, 개념만 없었다.
지하방에 미래는 있어도 전화선은 없었다.
연락은 전부 삐삐였다. 시티폰은 비싸서 패스.
멋 부리다 얼어 죽어도 좋을 어느 겨울날이었다.
삐삐가 울려서 근처 공중전화로 잽싸게 뛰었다.
지금 생각해도 인생에서 제일 빨랐던 순간이다.
장의사 앞, 복덕방 앞.
20원 동전 넣고, 3번 누르고,
비밀번호는 7777이었다.
인생은 개판인데 번호만 행운이었다.
친구 메시지가 들려왔다.
“루달아 나 월급 탔어. 건대 락카페 쏜다. 8시까지 와!”
마침 불타는 토요일이었다.
그 시절엔 불금이 아니라 불토였다.
토요일 밤은 인간의 이성이 증발하는 날이었다.
내 옷장엔 죄다 검정 옷,
동대문 청바지 허리 37인치 두벌.
천 원에 5켤레 검정 양말,
눈화장 파랗게, 입술은 와인색.
머리는 은박지로 돌돌 감아서 브리지 염색.
엄마가 겟돈 타서 사주신 진주 귀걸이.
나보다 귀걸이가 먼저 성공했다.
난 거울 보며 늘 같은 생각이었다.
그렇게 공주 마마병 걸려서 택시 타고 출발.
건대 앞 카페 골목, 락카페 도착했다.
그 시절 클럽은 거의 혼인중개소였다.
부킹 하면 하나쯤은 사귀었고, 운 좋으면 결혼까지..
친구들은 명품 폴로, 나는 폴라티.
친구들은 백화점, 난 이태원 XXL 옷.
사이즈만 글로벌이었다.
백지영의 'Dash' 김현정 '멍'김건모 음악이 나오면
의자 밀리고, 사람 넘어지고,
인생도 같이 미끄러졌다.
토끼춤도 추다가 김범수 '보고 싶다' 발라드가 흐르면,
쭈르르 자리로 숨 돌리고 앉아있다가
이정현의 '와' 테크노 댄스곡이 나오면
좀비같이 다시 뛰쳐나갔었다.
친구들은 이리저리 주파수 던지다가
오늘따라 물이 안 좋다며 나가자고 했다.
2차로 '샤갈이 눈 내리는 마을'에서 커피 마시고,
건대 글방 앞에서 친구들 우리 넷이 회의 중이었다.
“야 이젠 3차 어디 갈까?”
인간으로 갈지,
짐승으로 갈지.
그때 남자 셋이 쑥스러운 듯 접근했다.
한쪽 눈을 가린 머리,
바닥 청소용 긴 청바지 입은 남자애가
“저 우리 일행이랑 같이 한 잔 더 하실래요?”
친구들 의견을 묻기도 전에
내 입이 먼저 나갔다.
“됐거든요~~~!!!
우리끼리 놀 거예요~~~!!!”
그중 제일 잘생긴 놈이 다가와서 속삭였다.
“뭐라고요? 어이없네 진짜! ”
…그 순간.
인생 말고, 방광이 무너졌다.
락카페에서 2000cc 생맥주가 이미 통과한 상태였다.
하체에서
사각… 쭈르륵...
따뜻한 게 청바지 안쪽으로 번지고,
양말 타고 내려가 구두 안에 고였다.
눈 쌓인 바닥 위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나는 멈추고 싶었지만
내 방광은 이미 퇴근한 상태였다.
남자 놈 눈이 접시처럼 커지더니 외쳤다.
“야 이거 미친년이네!!! 얘들아 가자!”
그리고 셋이 동시에 뒤도 안 보고 가버렸다.
나는 길거리에서 인간이 아니라 이동식 온수기였다.
친구들은
"어떡해 하하 옷 가게에서 빨리 바지 하나 사자!"
“야 오늘 또 인생 레전드 찍었다 하하 ”
얘들은 눈물을 흘리며 웃었고
나는 하체만 장례식 치르는 중이었다.
"너네들끼리 재밌게 놀아! 낼 교회 가야 해"
나는 택시를 휙 바로 잡고, 집 앞에 내리려는데
기사 아저씨가 뒤돌아 손을 뻗치며
“아가씨! 오줌 쌌어? 시트 세탁값 이만 원 더 줘!”
청바지는 뜨근했고,
양말은 인생 포기했고,
자존심은 이미 건대 하수구에 있었다.
결국 지하방에 들어와 보니
오줌은 말랐는데, 인생은 아직 축축했다.
다시는 락카페를 안 가겠다고 다짐했다.
나이트는 가고..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아무 일 없다는 듯 교회 가서 반주를 쳤다.
찬송가 제목은
〈주 은혜로〉
참고로, 사촌동생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