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크가 들리지 않고, 보이다.

3. 포렌식 이후, 엄마의 걱정

by 루달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사회


포렌식을 맡긴 다음 날, 지인 경찰이 퇴근 후 집으로 찾아왔다.


“전화기 없으니까 답답하지? 당장 임시폰 사러 가자!”


그의 말투엔 불필요한 위로나 감정이 없었다. 대신 단호한 판단과 실행력이 있었다.


우리는 전투적인 기세의 발걸음으로 매장을 향했다.

코로나가 한창이라 마스크 때문에 어떻게 걷던 상관없었다.

기존 번호를 정지시키고 새 임시폰을 개통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둠 속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사람은 엄마였다.


“아이고야! 왜 전화가 안 되다냐? 걱정돼서 열쇠 아저씨 불렀어. 문 열라고 하는데 가족 확인이 돼야 한다고… 절차가 왜 그리 복잡하다냐!! 그리고 뭔 일이데. 너 괜찮긴 허냐?”


엄마의 얼굴에는 안도와 놀람이 한꺼번에 번져 있었다.

3호선 끝에서 끝까지 밤길을 달려온 엄마를 보는 순간,

울컥한 마음이 온몸에 번졌다.


“엄마, 언제부터 기다린 거야? 나 해킹당했었어. 걱정 마. 경찰서 신고했고… 어서 집에 들어가자.”

애써 태연하게 말했지만, 아직도 흩트러진 심정이었다.


"참 엄마 이 분은 친한 형사님이신데 많이 도와주셨어"


"안녕하세요. 우리 딸 신경 써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아 네 안녕하세요. 놀래셨죠. 저도 경찰 생활 오래 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인데, 그래도 걱정하지 마시고 좀 쉬세요"


나는 많이 놀라신 엄마를 부축하고 집으로 올라갔다.

그날 밤, 엄마는 두 손을 꼭 잡고 방안을 울릴 만큼 절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 딸에게 마귀 사탄 얼씬도 하지 말게 하오시고, 바라고 소망하는 공부도 완수하게 도와주시옵쑈셔!”


내 손을 어찌나 강력히 잡고 흔드시던지,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엄마만의 세뇌였다.

그리고선 다급하게 말씀하셨다.


"맞다! 둘째 고모 아들 코로나 때문에 길에서 걸어가다 갑자기 쓰러져 죽었단다. 40살 밖에 안 됐잖아. 어휴 당뇨도 있었는디, 아따 장례식도 못해당게. 너도 조심혀라."


한참을 멍하니 생각이 잠겼었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말까지 나올 때였다.

나는 집까지 위험하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혀왔다.


출근길 첫차에 몸을 실은 엄마의 뒷모습에는

밤새 맺힌 긴장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나의 식도는 더 깊이 타드러 갔다.




방으로 돌아와 임시폰을 쥐고 긴 호흡을 몇 번 한 후

동공에 힘주어 설정을 다시 확인하고, 보안을 강화했다. 그런데도 불안은 이미 몸 안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세상은 조용한데 내 손끝만 분주했다. 이제는 정비가 끝났다고,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끄집어낸 분별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임시폰에서도 이상한 징후가 또 나타나기 시작되었다.

각 사이트마다 비밀번호가 계속 오류로 반복됐다.

화면 위엔 나 아닌 누군가의 의지가 먼저 도착했다.


그럴수록 날카로운 연필로 노트와 벽지에 메모했다.

무언가가 기기를 원격으로 조종하는 듯한 낯선 감각.



(이 당시 비밀번호가 바뀐 이유를 2년 뒤 알게 되었다)



그리고, 힘들게 시작한 목표마저 물거품이 되어 괴로웠다.

달 동안 매달려 준비했던 과제를 제출하지 못한 채 모든 게 허공 위에 분쇄되었다.

그토록 절실했던 희망마저 꺾이자, 깊은 낙망이 밀려왔고 염세적인 생각이 어둠처럼 피어올랐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닥치는 걸까

그저 무탈함을 바라는 것이 사치일까


정말 정신과의 문을 두드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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