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 담당

by 루달

우리들 사랑이 담긴 조그만 집에

옹기종기 모여 정다운 이야기,

서로의 즐거움 슬픔을 나누던 밤


1987년, 조하문 '눈 오는 밤'자주 흘렀다.

엄마, 고모, 나는 아랫묵에 빨간 담요를 깔며

귤도 까먹고 저글링도 하면서 겨울을 보냈다.





나는 냄새로 깬다.

알람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동네의 잡음마저 삼키며 눈이 내렸다.

집안은 따뜻한 기온으로 잠이 솔솔 오는 저녁.


잠든 지 얼마 안 됐다.

그런데,
자면서도 뇌 어딘가의 거름망이 작동했다.
이건 아닌데, 같은 냄새였다.

한번 킁.
다시 한번 킁.



방문 틈으로
무언가가 눌린 채 타는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탄 것도 아니고, 타다 만 것도 아닌
끝장 직전의 냄새였다.


후각만 깬 상태로

킁킁 냄새 따라 3시 방향.

레이더 추적 센서로 걸어갔다.

부엌에는
보리차 끓이는 노란 큰 주전자가 있었다.
플라스틱 꼭지는 이미
자기 역할을 포기한 얼굴이었고,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불붙기 직전,
가스를 껐다.

그리고 자랑하려고
엄마를 깨웠다.

엄마는
가스 올려놓고 잠든 상태였다.
일어나더니
한쪽 눈만 열렸다.

다른 한쪽은
눈곱물에 봉인돼
끝내 열리지 않았다.


“어머 어머 —”

엄마는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차고
부엌으로 뛰쳐나갔다.

머리는 부스스했고
시각 장치는 반만 온라인이었다.

엄마는 찬장 그릇이 무너질 듯 한숨을 내쉬며


“아이고 주여 감사합니다”

양손가락을 꼭 낀 채 빠르게 흔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준비했다.
칭찬?
영웅 서사?
집을 구한 딸! 하하하.



엄마는 부엌을 나오며
나를 한 번 봤다.

“넌 아빠 닮아서 개코야. 얼른 불 끄고 자!”

뿌듯한 마음을 엿장수한테 팔아넘기며

난 다시 기어들어갔다.

이렇게 불날 뻔한 걸 막은 게
처음은 아니다.

막내고모가
시집가기 전 우리 집에 같이 살던 때였다.

고모는
가스불에 물을 올려놓고
그 위에 콘택트렌즈를 삶았다.

왜 삶았는지는
아직도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깜박 한채 잤다.

나는 또 자다가
뇌에서 비상벨이 울려 깼다.

'적들이 침투했다 기상!'


한번 킁

다시 한번 킁킁


몸은 누워 있는데
후각만 먼저 출근했다.

냄새를 따라
몽유병처럼 부엌에 갔더니
냄비 안 물은 바싹 말라 있었고
콘택트렌즈는
바닥에 아귀찜 살점처럼 붙어 있었다.

나는 가스를 끄고
부엌 창문, 마루 창문을
죄다 열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드디어 잡았다.

늘 나와 티격태격하던 고모.
현행범.

고모방에 문을 거칠게 잡아 열고


“고모!!!!!!”

눈이 나쁜 고모는
눈을 뜬 게 아니라
눈에 힘만 잔뜩 줘서
더 작아졌다.


“왜 그러는데…”

“고모 때문에 집 날아갈 뻔했잖아.”

……

“아이코… 렌즈!!”

그때 나는
아주 음침하게 눈을 떴다.

“고모 됐거든.
내가 금방 껐어. 왜 이렇게 정신이 없어!”


" 뭐? 저 여시가! 넌 아빠 닮아서

눈치도 빨라 어서 자!"

그날 이후
이 집에는 공식이 하나 생겼다.
불은 가끔 나고,

나는 그때마다 거의 깬다.


몇 달 뒤 고모가 뽀뽀를 한다.

다시 킁킁.


여드름 잔향기가 없어졌다.

시집가려나 보다.


난 이 집의 후각 담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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