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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디가꼬 Sep 08. 2024

프롤로그

던져 버리고 싶은 도시락 가방

전쟁 같은 육아   


 육아를 처음 경험한 사람들은 흔히들 "육아 보다 일하는 게 훨씬 편하다, 군대를 한 번 더 가는 게 오히려 낳겠다"는 말들을 한다. 그만큼 육아가 힘들다는 뜻이다. 게다가 우리에겐 음식 알레르기까지 겹치면서 아내의 고통은 더 커졌다. 출산의 고통 뒤엔 알레르기와 싸워야 할 전쟁 같은 육아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평범해 보이던 육아도 우리에겐 더 특별하게만 느껴졌다, 모유를 떼고 이유식을 시작할 무렵부터 점점 거칠고, 붉어지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처음에는 음식 알레르기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지만, 동네병원에서부터 시작해서 여러 병원을 돌고 돌아 마지막으로 상급병원에서 병명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현실로 받아들였다. 보통 산모들은 출산 후 심한 육체적, 정신적 변화와 함께 호르몬 변화를 겪게 되어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더군다나 평소에도 잠이 많았던 아내는 매일 밤 엄마의 머리맡에서 머리카락에 집착하며 뒤척이는 아들 때문에 심각한 수면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그때는 몰랐다. 왜 하필 엄마의 머리카락에 애착이 형성되었는지?  


 알레르기라는 질환은 그 발생 원인만큼이나 반응도 다양하고, 사람마다 편차와 정도의 차이가 있어 일률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 최근에는 시중에 좀 더 정확하고 과학적인 자료들이 많이 나와 있지만 전문적인 용어나 서적들은 가슴에 잘 와닿지 않고, 먼저 경험한 선배들의 가장 현실적인 경험담은 찾기가 힘들다.  

 책 속에서 소개하는 우리 가족의 경험은 대학병원 간호사 출신인 아내의 의료지식과 시중에 판매되는 전문서적 그리고 실제 아이에게 적용했던 사례를 옆에서 지켜보며 재구성한 것이다. 그동안 피부 보습제와 음식 제한만으로도 관리가 잘 되었고, 증상이 있더라도 대부분 향히스타민제 사용만으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어 아나필락시스까지 가는 경우도 겨의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마다 편차가 있을 수 있으니 참고만 해주길 바란다,  


알레르기와의 한판 승부  


 아내의 찐한 모성애는 소금물 5%가 전체 바다를 썩지 않게 만들 듯이 수많은 알레르기로부터 아이를 지켜내고 있었다. 제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보편화된 방법이지만 쌀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아이를 위해 아내가 첫 번째로 한 일은 어떻게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는 일이었다. 그렇게 인터넷과 관련서적을 이 잡듯이 뒤져 유기농 쌀을 충분히 가열하면 알레르기 성분이 낮아진다는 말에 전라도에서 유명하다는 친환경 유기농 쌀을 주문해서 밥솥에 꼭 두 번씩 밥을 해서 먹였다. 알레르기가 있는 환자들에게 저항원 식사로 알려진 감자나 고구마, 야채와 과일부터 조금씩 먹이기 시작했고, 또 단백질 보충을 위해 닭고기나 돼지고기와는 달리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보고된 소고기를 매 끼니 먹였다. 쌀과 소고기, 야채만이라도 해결되니 먹고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 이후에도 하나둘씩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늘어갈 때마다 마치 인생의 보너스를 얻은 것만 같았다.  


  죽어도 지나가지 않을 것 같은 시간들을 보내고 지금 아이는 뽀얀 피부를 가진 초등학교 2학년의 어린이가 되었다. 매년 국가에서 시행하는 영유아검진을 통해 평균적으로 잘 성장하고 있다는 결과도 받았고, 알레르기 3종 세트인 계란, 우유, 밀가루부터 갑각류와 조개류, 땅콩 등 견과류를 거쳐 참치 같은 붉은 계열의 생선까지 이제 서서히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상비약은 지금도 챙겨 다니지만 책가방 보다 더 큰 도시락 가방은 벗어던진 지 오래되었고, 소망하던 뷔페 먹은 아이를 보는 꿈을 이루었다. 그리고 가끔씩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피자나 파스타를 먹거나 여행 중 맛집탐방까지 하게 되었다.   


 '비록 길이 험하고 어렵더라도 우리가 걷는 한 그 길은 그냥 길일뿐이다'는 말은 힘들 때마다 나를 다시 힘차게 끌어당기는 자석이 되었다. 우리 가족의 이런 소중한 경험이 음식 알레르기라는 큰 절벽 앞에서 좌절하는 많은 부모들에게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끝으로 책 속의 모든 과정을 함께했던 나의 삶의 동반자이자 첫 번째 독자인 아내와 그동안 알레르기와의 전쟁에서 용기 있게 싸워준 아들에게 덕분에 살면서 가장 많이 웃고, 행복했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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