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바꾸면 보이는 것들
누누이 말하지만 여행은 결코 여권을 들고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어야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잠자리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아이의 손을 잡고 집 밖으로 나서는 순간, 그때 이미 여행은 시작된다.
주말이면 나는 아이와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이번엔 전라도, 다음은 강원도, 작년엔 서울, 올해는 충청도. 우리가 걸었던 길을 지도 위에 하나씩 표시하며 흔적을 남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도는 우리가 찍은 점들로 점점 짙어졌고, 어느새 색으로 가득 찬 한 장의 추억이 되었다.
해외든 국내든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지금’이었다. 언젠가 아이가 자라 자기만의 세계를 꾸리게 되면, 아빠와의 여행은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께 걸을 수 있을 때, 부지런히 길을 나섰다.
강원도 평창은 흔히 겨울 스포츠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름의 평창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아이와 처음 마주한 대관령 양떼목장의 푸른 들판은 비염으로 막혀 있던 코마저 시원하게 뚫어주는 듯했다. 목동의 손짓에 따라 물결처럼 움직이던 양 떼, 먹이를 건네며 손바닥으로 전해지던 따뜻한 생명의 온기. 그 순간 아이의 눈빛은 말없이 말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교과서에는 없는 ‘정서적 안정’이라는 수업이라고.
평온했던 공기는 알펜시아 리조트에 도착하자 단숨에 짜릿한 전율로 바뀌었다. 아이와 단둘이 몸을 실은 루지. 가파른 경사를 내달리며 우리는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그 함성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었다. 아빠와 아이 사이에 존재하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해방의 언어였다. 언젠가 아이가 삶에 지치고 힘들 때, 바람을 가르며 함께 웃던 그 기억이 다시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길 바라며 나는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외쳤다.
남쪽에서 살며 열대야에 지쳐 잠을 설치던 우리에게, 평창의 밤공기는 또 다른 배움이었다. 외투를 꺼내 입어야 할 만큼 쌀쌀한 공기. 같은 나라 안에서도 이렇게 다른 계절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사람들은 여름이면 바다나 워터파크를 찾지만, 우리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아직 코로나라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조심스러운 상황 속에서 눈을 돌린 평창은 우리 가족에게 가장 시원하고 안전한 여름 휴가지가 되었다.
그리고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스키점프대였다. 영화 〈국가대표〉의 장면처럼 까마득한 높이 위에 서자 절로 숨이 고요해졌다. 일반 스키보다 훨씬 큰 전용 스키를 바라보며, 그곳에서 몸을 던지기까지 선수들이 견뎌냈을 고독과 수많은 실패의 시간을 아이와 함께 상상해 보았다. 한여름에도 냉기가 감도는 그 장소처럼, 인생에도 각자의 계절이 있고 각자의 높이가 있다는 것을 아이가 몸으로 느끼길 바랐다. 높은 곳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내려오는 길에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날 나는 다시 한 번 확신했다. 경험이 쌓이면 그것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지식이 된다. 몸으로 겪은 배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지도 위에 찍힌 점 하나는 단순한 방문 기록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속에 새겨진 작은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와 함께 길을 나선다. 언젠가 그 점들이 연결되어, 아이만의 세상을 이해하는 지도가 되기를 바라면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이 시간마저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문득 이정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하회마을.’ 익숙한 이름이었다. 경상북도 안동에 자리한 전통 양반마을,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흐르는 곳. 600년 넘게 이어진 기와집과 초가집이 공존하는 한옥마을.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그 유명한 마을의 이름이, 마치 우리를 향해 손짓하는 듯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우리는 방향지시등을 켜고 시간을 거슬러 안동 하회마을로 들어섰다.
더위를 피해 카트를 타고 마을 골목을 천천히 누비며, 우리는 하회탈에 담긴 조상들의 해학과 지혜를 이야기했다. 특히 별신굿 탈놀이는 마치 600년 전 마을 한복판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점잖은 척하지만 허세 가득한 양반을 풍자하고, 인간의 욕심과 허물을 웃음으로 드러내는 등장인물들. 하회탈의 표정은 묘하게 살아 있었다. 고개를 들면 웃는 듯하고, 숙이면 우는 듯한 그 미묘한 곡선 속에 옛사람들의 삶이 스며 있었다.
그 탈놀이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었다. 풍자와 해학, 그리고 공동체의 숨결이 살아 있는 마을 축제였다. 웃음으로 세상을 버티던 사람들의 지혜가 그 안에 담겨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나중에 어디선가 하회탈을 보게 되면, 오늘 네가 직접 밟았던 이 마을의 흙내음을 기억하렴.”
여행은 단순히 노는 행위가 아니다. 훗날 아이가 마주할 수많은 지식에 ‘경험’이라는 색을 입히는 일이다. 책에서 읽은 글자보다, 아빠와 함께 걸은 흙길이 더 오래 남는다. 사진으로 본 문화재보다, 직접 눈으로 마주한 탈춤의 울림이 더 깊이 각인된다.
평창의 시린 바람에서 시작해, 안동의 따뜻한 흙길로 이어진 이번 여정은 아이에게 말없이 가르쳐주고 있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훨씬 다채롭다는 것을.
그리고 그 다채로움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진짜 풍요로운 인생을 산다는 것도 함께. 언젠가 아이가 “이제 친구들이랑 갈게”라며 더 이상 아빠와 여행을 다니지 않겠다고 말하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괜찮다. 이 길 위에서 함께 쌓은 기억들이 아이의 인생 지도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줄 단단한 이정표가 되어 있을 테니까.
여행이라는 거대한 교실에서 아이는 오늘도 자라고, 나는 그 곁에서 함께 넓어진다.
아이와 함께할 수 있을 때 망설이지 말고 떠나라.
아이에게 아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기기 전까지,
지금의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