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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디가꼬 Dec 14. 2022

땡돌이가 될 결심

나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다

'땡돌이'는 내 별명이다.

요즘 내가 제일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다.

나는 출근시간뿐 아니라 퇴근시간도 칼같이 지킨다.

아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출근하면 아침 9시,

그리고 저녁 6시, 퇴근시간이 되면 눈치 보지 않고 바로 퇴근한다

집으로 돌아가면 아내와 함께 밥하고, 아이 케어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빠듯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습관처럼 몸에 배어 버렸다.

퇴근시간 시계만 보며 눈치를 살피던 직원들도

먼저 움직이는 나의 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그들에는 구소주 같은 존재다.


같은 사무실에는 나와 전혀 다른 직원도 있었다.

그 직원은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하고 밤 11시에 퇴근한다.

구내식당에서 삼시 세끼를 다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주말에도 예외 없이 사무실로 출근한다.

직원들은 출퇴근 시간 그 직원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다.

일찍 결혼해서 아이들은 모두 성장했다. 집에 일찍 가더라도 취미가 없으면 딱히 할 일도 없다

가끔씩 언제 집에 오냐는 와이프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리곤 한다


물론 남아서 해야 할 일이 있거나, 직원들과의 회식이 있을 수 있지만

매일 늦게까지 남아서 해야 할 일이 있거나, 매일 직원들과 술을 마시진 않는다

그럼 왜 이렇게 같은 사무실에서 다르게 일할까?

자신의 삶의 가치에 순번이 서로 다른 것이다.

나의 인생에 첫 번째는 가족이고, 두 번째는 건강이며, 세 번째는 삶의 질이다

일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보여 남들보다 승진을 좀 더 빨리 하거나, 시간 외 수당을 좀 더 받는 것은

그 다음다음 순번쯤 될 것 같다.


내가 생각을 바꾼 건 나의 경험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군에서 제대를 하고 세상에 나와보니 IMF라는 국가부도사태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20대 젊은 나이에 비교적 안정적인 경찰공무원이 되었다

1998년 6월 30일 부산의 어느 한 마을에 첫 발령을 받았다

당시 부산은 큰 공장이나 대기업보다는 가내수공업이 발달해 있고, 빈부격차가 심했다   

그래서 IMF로 인한 어려운 현실을 좀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


매일 아침 파출소로 변사사건 신고가 접수됐다.

변사사건이란 사인이 명확하지 않은 사망사건을 말한다

대부분 생계가 막막해지고 빚에 쫓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젊은 가장들이었다.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은 가장들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붕어빵이라도 팔아보겠다고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고,

영유아 보호시설엔 먹고살기 힘들어 책임질 수 없었던 부모들이 버린 아이들로 가득했다

 

한참 대학 캠퍼스에서 낭만을 즐기고 꿈을 키울 나이에

세상의 단면을 너무 일찍 그리고 너무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는 세상에 행복하기 위해서 왔다.

우리는 일하면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산다

일을 손에서 놓고 사무실을 떠나 퇴직하는 선배들을 보면

한결같이 직장생활 너무 아등바등하며 살았다고 후회하곤 한다.

돌연사나 사고사로 한순간에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볼 때면 인생이 너무 허무하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절대로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하고 살자고 다짐하곤 한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다시 직장이라는 굴레에 갇히게 되면 똑같은 행동을 반복할 것이고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현실이라 벽 앞에서 언제나 후순위로 밀리게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행복하기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을 바로바로 하기 위해서

땡돌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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