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형 청소년들의 어긋난 선택
새벽 3시에 만난 아이들
새벽 3시에 만난 아이들
야간근무를 하다 보면 늦은 시간 배회하는 청소년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내가 만난 동구(가명)도 그랬다. 우리의 첫 만남은 11년 전, 새벽 3시 번화가 한 건물 모퉁이에서였다. 동구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누구 한 명이라도 걸리면 당장 싸움이라도 시작할 듯한 기세로, 그 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항상 침을 뱉는 것이었다. 마치 그것이 멋스러워 보이는 동시에 상대방 기선 제압하는 데 탁월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오토바이 뒤에 타고 그들의 자신삼을 한껏 높여주는 여자아이도 몇몇 있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그 아이들을 검문하고 기록에 남겼다. 그렇게 방황하는 아이들과 범죄는
때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 예방 차원에서 한, 내게는 필사적인 임무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구라는 아이는 본인 이름과 연락처, 집 주소 등을 순순히 알려주었다. 다음은 동구와의 첫 만남에서 이뤄진 대화 일부다
나: 너희들, 이 시간에 여기서 뭐 하노?
동구 : 그냥 있는데요
나: 이름이 뭐꼬?
동구 : 동구요
나: 어데 사노? 나이랑, 전화번호, 주소 불러봐
동구: 16살이고요, 010......
대부분 동구 또래 아이들은 나 같은 어른이 가르치려 들거나, 야단치듯 다가가면 경계하고 거부감을 느껴 입을 닫기 마련이다. 사실 입을 닫으면 전문가라 해도 답이 없다. 더 큰 문제는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는 아이 중 상당수가 부모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로부터 나는 최대한 그들에게 눈높이를 맞춘 말투와 행동으로 최대한 건들거리며, 다가간다. 수년 동안 경찰 생활을 하며 터득한 나만의 노하우다.
틀린 적 없는 나쁜 예감
동구와 만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주간 근무 중에 동구가 불러준 주소지로 순찰 방문했다. 아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고, 혹시나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을지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문과 현관문이 열려 있어 바로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마주한 광경은 처참했다. 전기와 수도는 오래전에 끊어진 듯했고, 여기저기사 냄새가 날 만큼 지저분했다. 거실과 안방에도 쓰레기가 가득했다. 방하나가 문이 닫혀 있어 조심스레 열었더니 또래 남녀 아이 5~6명이 뒤엉켜 자고 있었다. 머리맡에는 밤새 피운 담배꽁초와 먹다 남은 술병이 굴러 다녔다. 그때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절단기였다. 누가 봐도 의심을 살만한 물건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깨웠다.
나: 동구야, 일어나 봐 이 절단기 뭐꼬?
동구: 어? 진짜 왔네.
나: 이 절단기 뭐냐고?
동구: 아, 그거요 어제 고깃집 터는데 썼어요
지구대에 연락해보니 정말 어젯밤 고깃집 절도사건 발생보고가 접수되어 있었다. 그 즉시 아이들을 절도사건 용의자로 입건해 지구대로 데리고 갔다. 범죄와 관련된 조사를 진행하고, 아이들 모두 보호자에게 인계했다. 그 후 아이들은 소년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우리나라는 촉법소년이라고 해서 만 14세가 넘지 않으면, 보호처분만이 가능하다. 이에 동구는 보호처분으로 판결이 났다.
동구와의 안타까운 이별
경찰청 조사(2018~2020) 결과에 따르면 범죄소년 검거 인원이 6만 4.595명으로 집게 됐다.
재범률은 평균 33%로 나타났다. 또 소년범 3명 중 1명은 네 번 이상 범죄를 저지른다고 보고됐다.
동구의 사례가 그랬다. 고깃집 절도사건 이후에도 동구와는 전화로 안부를 묻기도 하고, 가정 방문을 하기도 했다. 꽤 가까워졌다고 생각했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리라 믿었는데 다시 절도를 저지른 정황이 보였다. 다름 아니라 과일가게 절도사건이 접수된 무렵, 동구의 집에 먹다 남은 과일이 나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세 차례의 신고가 들어왔는데 모두 동구가 저지른 것이었다.
그 사실을 어김없이 나에게 걸렸다. 그때마다 지구대에서 조사했고, 특별한 예방조치 없이 검거만 했다.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인 줄 알았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후, 길에서 동구를 만났다. 보호 처분으로 보호관찰 중이라고 했다. 보호 관찰은 교도소를 비롯한 기타 시설에 수용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하며 선도로 개선하는 제도다
왠지 그날 나를 경계하는 듯한 동구 모습에 마음이 쓰여, 동구가 알려준 고모 집으로 방문했다. 아니나 다를까, 동구는 그곳에 없었다. 다시 거리로 나간 듯했다. 어릴 적 부모님 이혼으로 아버지와 단둘이 살게 된 아이. 그마저도 생계를 위해 지방으로 돌아다니며 아버지로 인해 혼자가 된 아이, 아버지가 보내준 생활비는 유흥비로 탕진하고 전기와 수도가 끊긴 집에서 홀로 배고픔과 외로움을 견뎌야 했던 아이.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안쓰러움만 남는 동구였다. 그랬던 동구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게 되면서, 처음으로 아이들을 처벌보다 선도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