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잔이라 불리는 아이

밀림에는 타잔, 학교에는 종원이

by 어디가꼬

밀림에는 타잔, 학교에는 종원이


도서관 건물 뒤편을 지나는데 교복 입은 아이 수십 명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담배를 피우다가도 어른이 보이면, 숨거나 도망치기 바빴다. 하지만 요즘은 도망가기는 커녕 째려보며 담배를 계속 피운다. 다른 어른들 같으면 못 본 척 가던 길을 갔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경찰 제복을 입진 않았지만, 나를 알아본 몇몇 아이는 담배를 끄거나 슬금슬금 피했다.


아이 1 : 김주엽 아저씨다

나: 빨리 담배 꺼라, 너희들 여기서 교복 입고 담배를 피우면 되겠어?

아이 2 : 아저씨는 진자 나쁜 애들은 잡지도 못하고, 왜 우리한테만 그래요, 타잔이나 잡아넣어요

아이들 : 맞아요 타잔 그 OO 정말 나쁜 o이에요

나 : 타잔? 이름이 타잔이야?

아이 2 : 그냥 아이들 사이에서 타잔이라고 불러요


나는 그때 종원이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종원이의 아버지는 지역에서 알아주는 부동산 재력가다. 지역 공무원은 물론 동네 불량배 사이에서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을 만큼 꽤 유명했다. 종원이 생일에는 연예인이 생일 파티 사회를 봐줄 정도였다고 한다. 또 중학생이 되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자, 종원이 아버지에게 부탁받은 조직폭력배들이 학교를 찾아간 일화도 있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아이들이 종원이를 왜 타잔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밀림에 가면 타잔이 왕 노릇을 하듯이, 아이들 사이에선 종원이가 왕처럼 굴림하고 있었다.


그 뒤로는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종원이를 괴롭히거나 건드리는 아이들이 없었다. 그렇게 종원이 아버지는 외동아들인 종원이가 해달라는 건 뭐든지 다 해줬고, 종원이는 아무런 부족함 없이 자랐다. 그런데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언제나 그자 라에 있을 것 같은 아버지가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많던 종원이의 재산도 순식간에 사라졌고, 빚쟁이들이 집으로 찾아와 어머니를 괴롭혔다. 그때부터 종원이의 방황이 시작됐다


비행을 부추긴 외모와 덩치

종원이는 유난히 덩치가 크고, 조숙했다. 머리에 노랗게 염색하면 성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런 외모도 종원이의 비행에 큰 몫을 차지했다. 아닌 개 아니라 또래 아이들은 그런 종원이에게 담배 심부름도 시키고, 찜질방에서 잘 수 있도록 보호자 행세를 해달라고도 했으며, 부모님 몰래 가져온 귀금속을 팔아달라는 등의 부탁을 했다. 놀랍게도 그때마다 다들 종원이의 속임수에 넘어갔다. 실제로 종원이에게 금을 팔았던 금은방 주인은 "신혼부부인데 결혼반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반지를 들고 온 종원이의 자연스러운 태도에 꼼짝없이 속았다고 했다.


또래 아이들은 그런 종원이와 함께 노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 종원이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런 종원이가 오토바이를 훔치는 방법을 알게 되면서 기동력이 생겼고, 비행도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급기야 본인이 직접 나서서 비행 청소년들에게 담배를 대신 구매해 주거나, 금을 팔아주고, 지역 전역을 돌아다니며 수수료도 받았다. 때로는 중간에서 돈을 가로채 도망가기도 했다.

이런 소문이 퍼지면서 비행을 저지르는 아이들 사이에선 타잔을 모르는 아이들이 없었고, 피해를 보는 아이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의 신고로 경찰에 적발되어 여러 차례 경찰조사를 받기도 했지만, 촉법소년으로 만 14세가 되지 않아 매번 소녀보호처분 대상자로 귀가조치를 받았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종원이는 그동안의 사건을 모두 합쳐 한꺼번에 소년재판을 받게 되었다. 재판 날짜를 기다리던 종원이는 이번에는 소년원 송치처분을 피하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 마지막으로 신나게 놀아야 한다며 밤늦게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아저씨들의 뒤통수를 미리 준비한 몽둥이로 때리고 지갑을 훔치는 일명 '퍽치기'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더 대담하게 비행을 저질렀다. 더 큰 범죄를 막기 위해서 종원이를 빨리 찾아야 했다.


죽기 살기로 도망 다니는 아이

종원이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 눈앞에서 놓치기도 했고, 성숙한 외모 탓에 찜질방 또는 pc방에서 숨어 지내는 아이가 도무지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찰이 자기를 찾아다닌다는 것을 눈치챈 종원이는 더 이상 찜질방과 pc방을 이용하지 않았다. 대신 sns로 아이들과 연락해서 돈을 벌어야 했기에 24시간 와이파이가 잘되는 병원 로비와 대기실을 찾아다녔다. 또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여러 장소를 옮겨 다녔다. 이에 나는 또래 아이들을 이용해서 sns로 담배를 사달라고 유인한 후, 주변에 숨어서 기다려도 봤지만, 종원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근처를 몇 바퀴 돌며 눈치를 살피다가 약속 장소를 다른 곳으로 바꾸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많은 비행 청소년을 상대했던 나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저 아이가 만 13세 중학교 2학년이 맞나 싶었다.


하는 수 없이 또래 아이들에게 타잔을 잡으라는 특명을 내렸다. 짜장면이나 피자 같은 포상을 걸기도 했다. 아이들은 같이 비행을 저지르다가도 감정이 상하거나, 마찰이 생기면 다투는 경우가 많아 이런 방법이 효과를 보기도 했던 터였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후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새벽 1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종원이가 지금 oopc방에 있다는 제보였다. 신출귀몰한 종원이를 보았다는 아이들의 제보는 매일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알려준 장소에 가보면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종원이와 가장 친했고, 가장 많이 어울려 다닌 아이의 제보였다. 그 아이는 종원이와 pc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다투게 됐고, 홧김에 나에게 전화했던 것이었다. 드디어 종원이를 찾았다. 가까이서 종원이를 처음 본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큰 덩치에 굶은 머리, 정말 20대 중반으로 보였다. 종원이가 이렇게 오랫동안 잡히지 않고 도망 다닐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독으로 돌아온 사랑

그 후, 종원이는 본인의 예상대로 소년원 송치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종원이 집에 방문해 어머니에게 종원이의 환경을 바꾸어 주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종원이 어머니는 내 말에 공감하고, 여러 차례 전학을 생각해 보았지만, 이미 지역에서 유명세를 탄 종원이는 주변에서도 가만히 두질 않았다. 종원이 어머니는 고민 끝에 큰 결단을 내렸다. 종원이는 필리핀 대안학교에 보내기로 한 것이다, 등록금이 비쌌지만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 하느냐며 아이를 위해 입학을 결정했다. 그곳에선 아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체벌도 한다는 동의서를 받는다고 했다. 그렇게 종원이가 필리핀으로 떠난 후 아무도 종원이를 볼 수 없었다.


종원이의 사례를 보면서 아이를 그렇게 괴물로 만들었던 것은, 아이가 해달라는 데로 무조건 다 해주고 보는 부모의 지나친 정이었다.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무조건 잘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함을 절실히 느낀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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