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출구는 다른 길로 향하는 입구
갈 곳이 없었던 창수
갈 곳이 없었던 창수
작년에 부산에서 전학을 온 창수는 계속해서 말썽을 부렸다. 교내에서 흡연으로 여러 차례 적발되어 사회봉사 처분을 받는가 하면, 학기 초인데도 매일 지각에 무단결석까지 해 1년 치 벌점을 초과했다. 그로 인해 며칠만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출석일수 미달로 유급처분을 받을 상황이었다.
이런 창수를 맡은 담임교사는 이제 막 임용고시에 합격해 학교생활을 시작한 신입 여교사였다
게다가 창수 같은 말썽쟁이가 많은 반을 맡아, 유독 나에게 문의 전화를 많이 했다. 하루는 담임교사가 퇴근하고 쉬고 있는데, "선생님, 아빠가 현관 비밀번호도 바꾸고, 내쫓았어요"라며 창수에게서 급하게 전화가 온 모양이었다, 아이를 그대로 두면 학교로 돌아오게 할 방법이 없어 보였던 담임은 나에게 sos를 요청했다.
나에게 창수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창수를 찾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했다. 하지만 담임교사는 머뭇거릴 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담임에게 우선 찾아보겠다고 약속했고, 몇 시간 뒤 oo pc방에서 창수를 보았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낙동강 오리알이 된 아이
아이는 찾았지만 아빠가 여전히 연락이 되지 않았다. 집에도 찾아가 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바뀐 비밀번호 때문에 집에도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는 3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부산의 고모 집에서 생활했다. 그런데 고모가 말기 앞 판정을 받아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게 됐다. 그러나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죽고 싶다며 신세한탄을 하기도 했고, 창수를 폭행하고 집밖으로 내 쫓기도 했다.
아이를 찾긴 했지만 집에도 갈 수 없고, 그렇다고 내가 계속 데리고 있을 수도 없었다. 담임교사도 방법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창수는 쉼터에 가는 건 죽어도 싫다고 했다. 그곳에서 요구하는 규칙과 질서를 지키며 지내느니, 차라리 아파트나 빈 건물 계단이 더 편하다고 했다. 쉼터에 가더라도 아이의 동의 없이는 일시 보호만 가능했다. 부모가 계속 연락이 되지 않거나, 아아 이 시설을 계속 나가겠다고 요구하면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어른들
밤이 깊어져 창수를 일단 쉼터에 보내기로 했다. 쉼터에 사정을 전하고 특별히 부탁했지만, 예상대로 아이는 곧장 쉼터를 나와 거리를 배회했고,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아이의 아빠를 만나는 게 급선무였다. 여러 차례 연락 끝에 어렵게 만난 창수의 아버지는 대낮부터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 나는 창수 아버지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를 집밖으로 내쳐서는 안 된다고 설득했다. 창수 아버지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혼잣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얼핏 들으니 "할 수 있다"라고 하는 듯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창수 아버지는 그 당시 무언가 중대한 결심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창수는 아버지와 집에서 생활하며, 학교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담임교사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경관님, 창수가 학교를 나오다 안 나오다 했지만 연락은 됐는데, 이제부터는 학교도 안 나오고 연락이 끊겼어요, 어떻게 된 일인지 좀 알아볼 수 있을까요?"라는 것이었다. 다시 찾은 창수는 또래 아이들과 거리를 헤매고 있었는데, 평소와 좀 다른 느낌이었다. 옷은 며칠 동안 갈아입지 않았는지 얼룩이 많이 묻어 있었고, 씻지 않은지 오래된 듯 몸에서도 악취가 났다. 완전히 거지꼴이었다.
알고 보니 창수 아버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달리는 화물차에 스스로 몸을 던졌는데,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가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하루아침에 창수는 고아가 됐고, 더는 창수를 학교로 돌아오게 할 방법이 없었다.
출구에서 찾아낸 입구
창수는 빨리 돈을 벌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직 나이도 어리고, 가진 기술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치킨 또는 피자 배달이 전부였다. 그런데 몇 차례 만나면서 창수가 자동차를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멋지게 튜닝한 자동차를 운전해보는 게 꿈이라고도 했다. 그때 창수처럼 청소년기에 어려움을 겪다가 자동차 튜닝숍을 개업한 범준이가 생각났다. 범준이는 창수처럼 형사시절 내손을 거쳤던 아이였다. 나는 무작정 범준이가 운영하는 가게에 수박 한 덩어리를 사들고 찾아갔다.
나: 범준아, 잘 지내나?
범준: 형사님, 저 요즘 착하게 잘살고 있는데 무슨 일 있은가요?
나: 혹시 이하는 사람 안 필요하나?
범준 : 형사님 그만두시게요" 농담입니다, 안 그래도 종업원 근태가 엉망이라 바꿀생각 중이었는데 잘됐네요, 좋은 애들 있습니까?
나:옛날에 니처럼 힘들어하는 아아 있는데, 얼마 전에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여기서 기술도 좀 가르치고, 데리고 있으면 안 되겠나?
범준 : 그래요? 잘됐네요, 갈 곳 없으면, 사무실에서 묵고 자면 됩니다, 잘은 못 묵어도 굶지는 않심더, 그리고 튜닝 기술 배워 놓으면 먹고는 살만합니다.
나: 고맙다, 범준아
범준 : 저도 어려울 때 형사님이 많이 도와줬다 아입니꺼, 데리고 오이소
그렇게 창수는 범준이와 함께 생활하며, 기술을 배우게 됐다. 몇 달 후, 나는 창수가 입을 옷 여러 벌을 사들고 다시 튜닝 숍을 찾았다. 범준이는 지방 출장을 가고, 창수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 창수야, 할만하나?
창수: 네 선생님 저도 기술 배워서 튜닝 숍 차릴 겁니다
나: 그래 범준이가 잘해주나?
창수: 친형처럼 잘해줍니다
나: 그래 힘들더라도 열심히 기술 배워라, 튜닝 숍도 꼭 차리고
창수: 네 제가 나중에 선생님 차도 멋지게 튜닝해드릴게요
나: 그래, 그래, 하하하
창수를 학교로 돌아오게 할 방법은 없었지만, 건강한 사회인으로 커주길 바랐다. 또 톰 스토퍼드가 남긴 "모든 출구는 어디론가 향하는 입구이다"라는 명언처럼 창수가 학업은 중단했지만,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