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가 된 빨강머리 소녀
딸아이를 구하기 위한 아빠의 sos
딸아이를 구하기 위한 아빠의 SOS
학교밖청소년이란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10대라면 초중고등학교에 다니지만 모든 아이가 학교를 다니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 진출하기에는 어리고, 학교를 벗어나 있는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 하지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조차 되지 않는 아이들, 그렇다고 교육기관에서도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경찰이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나는 이들을 찾아 지원하는 일명 '아웃리치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차례 방송 출연으로 SNS에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을 활용해 학교밖청소년을 찾아 도움을 준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홍보했다. 이를 본 한 아이의 아버지로부터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
사연의 주인공은 8살 때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가는 미정이었다. 미정이는 스스로 학교를 그만둔 뒤 머리를 빨갛게 염색하고 다녔다. 그런 미정이를 보고 "빨강 머리"라고 불렀다. 그리고 아이는 은둔형 외톨이가 됐다. 학교를 그만둔 이후로 줄곧 혼자 집에서만 생활했고,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의 아빠가 답답해서 나의 SNS글을 보고 연락을 한 것이다.
입을 닫고 집으로 숨은 아이
아이는 늦은 밤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잠시 외출하는 것 이외에는 온종일 집에만 있었다. 밤낮이 뒤바뀐 생활과 인터넷 게임 중독에 빠져 사회와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다. 아이는 심각한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에 빠져 있었고, 최근에는 종종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하는 등 폭력적인 성향까지 보이고 있었다.
아이는 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아버지 말로는 미정이가 처음부터 이런 행동을 보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누구보다 밝고, 착한 아이였다고 했다. 이에 희망을 안고 미정이를 위해 여러 상담소도 찾았지만, 아이가 왜 학교를 그만두었는지도, 왜 외돌 이 가 되어 집에서 만 생활하게 됐는지도 알아내지 못했다. 결국 나는 정보를 얻기 위해 미정이가 다녔던 학교를 찾아 담임교사와 같은 반 아이들을 만났지만 원인을 찾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우연히 학교 밖에서 미정이와 같은 학원을 다니며, 어울려 다닌 무리를 만나 새로운 사실을 듣게 되었다. 아이는 여러 친구와 친하게 지내며, 밝고 활동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의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했다는 이유로 늦은 밤 건물 옥상으로 끌려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속옷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빌게 된 사건이 벌어졌다. 게다가 온몸에 빨갛게 게챂까지 뿌리고, 그 장면을 촬영해 돌려보며 놀려대기까지 했다. 아이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은 그 이후에도 계속됐고, 학교나 가정에서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았던 미정이는 입을 닫고 집으로 꽁꽁 숨어버린 것이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아이를 집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우리는 멘토를 지정하고, 정기적인 만남으로 땀 흘리며 활동하는 프로그램을 계획했다. 그리고 지역 내 기업체의 지원과 대안학교, 청소년 선도단체 등도 함께 참여했다. 그렇게 아이와 조금씩 신뢰를 쌓아갔다. 항상 느끼지만 드세게 보이거나 무관심한 척하는 아이들도 1:1로 여러 번 만나보면 아직 여린 소년, 소녀일 뿐이다. 미정이 역시 우리의 관심에 '이러다 말겠지'라며 퉁명스러운 태도로 일관하다가,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연락하며 변하지 않자,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미정 : 선생님, 제 잘못이 아니었어요, 저 그때 너무 힘들었어요, 죽으려고도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나 : 잘했다, 잘했어, 얼마나 힘들었니?
그런 미정이는 꽃을 좋아한다고 했다. 꽃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그래서 우리는 다음 프로그램 장소로 꽃 축제가 열리는 태화강 십리밭을 찾았다. 아이와 마음이 통했을까? 미정이는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기다리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함께 커플 자전거도 타고, 꽃구경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참을 돌아다니는데 팻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꽃과 같은 청소년과 함께 합니다' 그곳은 미정이처럼 범죄 또는 학교폭력의 피해자나 사회에서 소외되고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을 위해 무료로 꽃을 배달하며, 정서적인 치유를 돕는 박사장의 꽃집 홍보 부스였다. 그는 오래전부터 봉사활동을 하며,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꽃꽂이도 가르치고 있었다. 딱 미정이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곧장 두 사람을 연결했다. 그 후로 미정이는 박사장의 도움을 받아 예쁜 꽃을 실컷 보며 새로운 꿈을 키워나갔다
몇 달 뒤, 미정이는 SNS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거기에는 사진 한 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진 안에서는 검은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미정이가 직접 만든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있으랴, 미정이는 많이 흔들린 만큼 뿌리가 튼튼하고 건강한 꽃으로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