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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디가꼬 Feb 07. 2023

MBC 프로권투 신인왕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낀 경험

어릴 적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권투


배고프던 시절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체중조절과 개체량 통과를 위해 배고픔을 견뎌야 했던 복서와 닮아 있었다. 그래서 헝그리 복서란 말이 생겨났다.

장정구를 비롯해 박종팔, 문성길, 유명우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권투 시합 중계가 있는 날이면

거리가 한산할 정도였다. 저녁밥상 앞에서 가족 모두가 모여 앉아 "으싸으싸"를 외쳤고, 상대방 선수가 주먹에 맞아 바닥에 넘어질 때면 함성소리에 동네가 시끄러웠다.


그런 영향이었을까? 늘 권투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막상 부모님은 왜 저렇게 힘든 운동을 하느냐며 질색을 해서 배울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좀 자라서 직장에 취직을 하고 취미로 건강삼아 할 운동을 고르다가 동네 권투 체육관에 들렸다. 빠른 속도로 줄넘기를 하는 사람, 땀을 뻘뻘 흘리며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두드리는 사람, 링 위에서 코피를 흘리며 스파링을 하는 사람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권투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권투는 나이가 지긋한 관장이 있었다. 관장은 처음 한 달 스텝과 원투를 가르쳐주고는 그 이후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곳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관장을 비롯해서 왕년에 권투를 좀 배웠거나, 길거리에서 싸움을 좀 해봤다는 양아치(조폭으로 정식 계보에는 없지만, 건들거리는 사람)들이 운동을 하러 오는 곳이었다.


이곳의 장점은 늘 다양한 스파링 상대가 넘쳐난다는 것이었다.

한 번은 체육관 구석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는데, 40대로 보이는 덩치 큰 남자가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챔피언 출신의 전직 권투선수였다. 다짜고짜 나와 스파링을 하잖다. 그때만 해도 글러브 한 번 껴보질 않았다. 링 위에 올라가서 내가 한 것은 스파링이 아니고 맞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머리에 쓴 헤드기어는 시야를 가렸고, 손에 낀 연습용 14온스 글러브는 들고 있는 것만으로 힘에 겨웠다.

쨉 몇 번에 입술안쪽이 터져 피가 났고, 1분도 되지 않아 혀가 턱밑까지 내려왔다.

그동안 육상과 킥복싱으로 단련된 몸에 해병대 출신의 끈기와 경찰관이라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인터넷으로 권투 동영상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샌드백과 거울의 비친 내 모습을 챔피언이라 생각하고 맞지 않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연습을 했다. 이걸 사람들은 '쉐도우 복싱'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매일 챔피언을 기다렸다. 드디어 챔피언이 나타났다. 내가 먼저 다가갔다. "스파링 한번 하시죠"

결과는 뻔했다. 혼자 배운 권투로 한국챔피언을 이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스파링을 통해 권투를 배웠다.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권투는 매력 있는 운동이다


권투는 주먹만 사용한다. 오로지 주먹만을 사용해 대결한다. 쓰러진 상대를 가격하지 않는 신사적인 스포츠다. 모두가 보는 링 위에서 주먹으로 승부를 가리는 정정당당하고 공평한 스포츠다.

샌드백을 두드리거나 스파링을 통해 실컷 패거나 맞고 나면, 온갖 스트레스가 땀과 함께 흘러내리는 느낌이었다. 그게 10년간 나를 붙잡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체육관에 오는 모든 양아치들과 닥치는 대로 스파링을 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체육관에는 나와 스파링을 하겠다는 양아치가 없었다.

그때쯤 어릴 적 꿈이기도 했던 링 위에 한번 올라가 보고 싶어졌다.

매년 열리는 MBC프로권투 신인왕전에 출전하기로 했다.

프로권투 선수의 등용문으로써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전통 있는 전국 권투대회였다.

권투의 인기가 시들고, 선수층이 약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주먹을 사용해서 운동을 하는 투기종목 선수들이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기 위해 참가하는 만만치 않은 대회였다.


MBC프로권투 신인왕전


내가 참가한 체급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라이트급(계체량 61.43g)이었다. 시합에 나가기 위해 70kg이던 몸무게를 약 10kg까지 감량해야 했다. 당시 파출소에서 교대근무를 했던 나는 시합을 위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두들겨 맞으며, 땀 흘렸다. 시합준비는 취미생활과는 많이 달랐다. 그래서인지 그해 겨울은 유난히 더 춥게 느껴졌다.


프로권투 시합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권투위원회에서 시행하는 라이센스를 취득해야 했다.

시합에 나가는 비슷한 체급의 선수와 경기를 통해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 나는 거기서 헬스로 단련된 몸짱의 캡스 직원을 KO로 쓰려 뜨리고 라이센스를 취득했다.


드디어 대회 출전, 그해에는 전라도 무주 실내 체육관에서 시합이 열렸다.

하루 전 체육관 인근에 숙소를 잡았다. 미리 혈압과 몸무게 측정을 통과해야 다음날 시합에 출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전국에서 운동 좀 한다는 남자들이 다 모였다. 시합이 있었던 무주 체육관 주변에는 숙소나 식당이 많지 않아서 가는 곳마다 선수들과 마주쳤다. 계중에는 영화 "주먹이 운다"의 모티브가 됐던 소년교도소에서 온 선수도 있었다. 선수뒤에는 항상 교도관이 따라다니는 게 눈에 띄었다.


드디어 시합날이다.


시합 2시간 전부터 낭심 보호대를 차고 유니폼을 입고, 주먹에 반창고로 테이핑 작업을 했다. 주먹의 골절 부상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글로브를 끼고, 글러브가 팔에서 움직이지 않도록 반창고로 단단히 두른다. 프로 시합용 글로부는 보통 6온스다. 맨주먹과 별차이가 없지만 얼굴의 흠집 방지용이었다. 끝으로 미리 준비해서 이빨에 맞춘 마우스피스가 잘 있는지 확인했다.


프로 데뷔전은 3분 4라운드 경기다. 기다리는 동안 링 위에서 10분 간격으로 벌어지는 예선전을 보고 있자니 긴장감이 고조된다. 링 위에서는 펀치를 맞고 기절하는 선수도 보이고, 병원에 실려가는 선수도 보인다. 카메라는 그런 장면을 찍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긴장이 되니 자꾸 오줌이 마렵다.


긴장된 순간에도 웃을 일은 있었다. 선수들은 홍보를 위해 각자 미리 제작한 권투가운이나 유니폼을 입었다.

홍보는 떡집부터 치킨집과 피잣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중에 유니폼 한가운데 큰 글자로 "떡"이라고 적힌 선수는 1라운드가 시작되지 마다 상대방의 주먹을 맞고 떡실신을 했다.

울산에서 같이 갔던 선수들의 시합은 모두 KO패로 끝나고 나만 남았다. 같이 간 사람들이 나에게 거는 기대도 그만큼 커 보였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낀 경험


시합을 알리는 링 아나운서의 소개로 세컨과 함께 링 위에 올라갔다. 상대선수는 당시 지역에서 유명했던 부산 거북체육관 출신이다. 심판의 주의사항이 끝난 후 서로 인사를 하고, 세컨이 아웃되자 링 위에는 둘만 남았다.

오직 링 위에 서있는 사람은 상대방과 나, 상대방을 쓰러뜨려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종이 울리자 나는 맞지 않기 위해 그리고 한대라도 더 때리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움직였다.

긴장을 해서인지 몸과 팔은 무겁고, 생각했던 것처럼 주먹이 상대방에게 꽂이질 않았다. 하지만 긴장 때문에 맞아도 아프지가 않다. 1라운드가 끝나서 세컨드 쪽으로 갔다. 2라운드를 알리는 표지판을 들고 라운드 걸이 지나간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세컨드은 체력 괜찮냐고 물어본다. 체력은 괜찮은 것 같았다. 심판이 오더니 "1라운드 끝났어, 다음 2라운드야"라고 알려준다. 그렇게 정신없는 4라운드가 모두 끝났다.

결과는 심판 전원일치로 판정승이다. 나는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렇게 첫 대회 첫 시합을 승리고 이끌었다.


링 위에서 내려오니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맞은 눈두덩이가 다음날이 되니 퍼렇게 멍이 들고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건드리기만 해도 아프다. 토너먼트 경기라 다음날 또 경기가 잡혔다. 다시 시합을 할 수 있을까?

시합전날 또 개체량을 통과해야 했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다음 시합을 준비했다. 대진운도 나빴다. 상대방은 바로 전 킥복싱 한국 챔피언이었다. 나는 패배했고, 그렇게 시합을 마무리했다.

그날 이후에도 계속 시합을 준비했지만, 교통사고로 손목을 다치면서 권투시합은 영영 접게 되었다


시합을 통해 승리와 패배를 모두 맛보았다. 아쉬움도 후회도 없었다.

머리와 가슴으로 느낀 경험은 서로 전혀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될 수 있으면 가슴으로 느끼며 살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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