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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Aug 17. 2018

"나 아니면 누가 이런 말 해주겠어?"

부모라는 갑, 자식이라는 을.

(인간관계 보고서에 적을까 말까 했지만, 결국 가족이니 형제니 부모와 자식이니 하는 것도 인간관계이므로 이 매거진에 넣겠다)

나 아니면 누가 말해주겠니? 네 친구가 말해주겠니?


어머니,아버지가 자식에게 하는 말은 걱정이고 진심으로 그를 위해서 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포장’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저 핑계로 넘으면 안되는 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점프해버리는 것이다.

물론, 아닌 부모님도 있겠지. 언제까지나 나와 내 주변 친구들 이야기를 참고했다. 그런데 예전에 어디선가 본 통계치에서, 대학생들에게 자신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더니 ‘부모’가 굉장히 높은 순위로 뽑혔었다. 1위였던가 2위였던가. 여튼 그런걸 보면 사람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하다. 쫄보는 이런걸로 당당해진다.

특히 그놈의,”나 아니면 누가 너에게 이런 말 해주겠니?”. 이렇게 나온 말들은 좋게 말해서 오지랖이나 잔소리이고 사실 그냥 악담이더라.

조언, 위로, 충고들이 뭐 이따구로 생겼냐.

"화장 좀 해. 누가 면접가서 너처럼 관리가 안된 애를 뽑겠니?"

(필자는 아직 취준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3학년이다)

"그만 좀 해. 내가 알아서 해. 그런 문제는"

"엄마 아니면 누가 말해주겠니? 네 친구 A가 말해주겠니, B가 말해주겠니? A는 참 깔끔하고 이쁘게 하고 다니던데, 그리고 B는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잖아!"



참 신기한건 우리 부모님이 비교하길 좋아하는 내 친구 A,B, C든, 아니면 누군가의 잘난 자식인 D든, 다들 저런 소리를 한번씩들 들어봤단다.

그들은 자식인 우리를 못마땅해한다. 우린 그것을 잘 안다. 그리고 내가! 훨씬, 훨씬! 나의 그런 부분을 잘 알고 힘들어한다고. 속상해하는 거, 이해한다. 잘되길 바랄 것이고 (그 잘되길, 이라는 기준은 전부 부모님의 기준이다.).

하지만, 그 어떤 도덕책이나 잘 알려지고 진부하고 판에 박힌 그 어떤 교훈적인 말이라도,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라고 하는 경우는 없다. ‘걱정’의 탈을 쓴 ‘악담’이다.

난 저 아이의 부모니까 이 정도는 해도 돼? 그것을 사람들은 갑질이라고 부른다.


인간관계에는 선이 있다.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에도. 그리고 가족 사이에도. 굳이 따지면 다 남이다. 아무리 자신이 낳고 길렀어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내 자식이고, 아무리 10년 넘게 내가 내 비밀을 다 털어놓아도 의외로 나를 많이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 내 친구다.


몇 년 전, 시험을 망쳐서 속상한 것 보다 엄마,아빠에게 어떻게 말할지 걱정하고 두려워하던 내가 생각난다.

그때 갑자기 궁금해졌다. "으엥. 나 시험 못치면 인생 망하는 것도 나고 가장 속상한 것도 나인데, 왜 굳이 엄마랑 아빠가 화를 내면서 나를 더 힘들게 만들지? 날 위로해줘야 하는거 아닌가?"

그렇게 나는 전교등수가 저번 시험보다 70등이 떨어진 성적표를 내밀면서 정중하게 여쭤보았고 슬프지만 당연하게도 엄청 혼났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서 다음날 학교에 가서 다른 친구에게 물어보자 그 친구도 나를 엄청 이상하게 보면서, 혼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더라. 그 친구네 집도 비슷한 분위기였겠지. 참 씁쓸하다.

그렇다. 또 그 소리 듣고 홧김에 이 글 쓰는거다.  나는 방금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이제 돌아왔고, 아버지의 개념도 배려도 없는 언행에 화가 많이 쌓인 어머니가 괜히 나에게 ‘여행 같이 간 친구들은 셀카도 찍는데 너는 화장도 안해서 안 찍고’이러면서 시비를 건 것이다. (더 짜증나는 건 아들에겐 시비를 안 건다.)

사실, 나에겐 여행 기념품이 하나 있었다. 요즘 왜인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 악몽을 하루도 빼먹지 않고 꾸고있는데, 친구따라 간 소품샵에서 산 드림캐쳐다. 가격은 1만원이 채 되지 않았지만 나는 많이 망설였다. 항상 여행에서 나는 부모님이든 동생이든 친구든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사 갔지만, 이번에는 딱히 사갈 것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감히 나에게 만원을 쓴다? 그래도 될까? 생각하다가 남에게는 몇만원씩 해 주면서 나에게는 만원도 아까워하는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착하지도 않은 놈이 억지로 남 시선에, 그리고 내 시선에 착한 척 하려니까 괴로운것이다. 그래서 그냥 하나 샀. 그리고 남들 선물따윈 없다.

왜 항상 자연스럽게 남 선물은 사면서 내 선물은 안 사고, 남에게 뭘 주려고 한 걸까.

그렇게 생각해도 마음 한쪽에는 미안함이 있었는데, 집에 온 지 5분만에 그 미안함을 확 날려준 우리 어머니, 아버지께 치얼스! 그리고 가기 싫었지만 의무감에 갈까 싶었던 친척집도 가지 않기로! 그 결정을 마음편히 하게 해준 어머니 아버지께 두번째 치얼스! 그래 뭐하러 착한 척을 하고 그래, 별명이 지옥에서 온 아가리파이터면서.


이번 여행을 같이 간 친구가 말했다, “그것이 널 지켜줄 것 같아.”

드림캐쳐를 사지 않았으면 정말 큰 후회를 했을 것이다. 악몽을 또 꿔도 괜찮다. 이젠 잠이 드는 것이 무섭지 않다. 참 오랜만이다.

여름의 청량한 하늘을 그리고 싶었는데.....

상대방이 변하지 않으면 거기서 자기 자신이 벗어나면 된다.


그대는 자유로울 수 있고, 행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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