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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Sep 29. 2018

너는 언제부터 단짝을 만들었어?

오랜만에 듣는 '단짝'이란 단어

이번에 추석 때 만난 숙모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철경아, 너는 언제부터 단짝을 만들었어?”

대학생 이후가 좀 불량해 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닙니다.

단호하게 인생에 단짝 같은 건 없다, 그냥 이런 친구 저런 친구가 있을 뿐이지 친함에 절대적인 정도를 세울 수는 없다! 고 말하다가, 급하게 입을 닫았다. 연장자 앞에서 인생에 대해 아는 척을 하고 말았다.

숙모가 물어본 건 살면서 자연히 알게 되는 그런 뜬구름 잡는 깨달음이 아니다. 숙모는 초등학교 고학년의 딸이 둘 있다. 그리고 그 얘기를 나에게 하실 때도 내 옆에서 그 소녀들은 내 휴대폰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옆에서 게임도 없고 재미없다는 말이 들리지만 무시하자) 초등학생의 고민인 것이다!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인생 통달한 척을 해 버려서 민망했다.

'같이'가 당연한 사이

들어보니, 숙모는 내 사촌동생들이 단짝을 만들지 않아서 고민이라고 했다. 신기했다. 그때는 나도 그랬고 다들 ‘단짝’이니 ‘베프’ 같은 것을 정하고 그 친구에게 집착하고 그러지 않았는가! 그러나 내 사촌동생들은 반대였나 보다. 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 A랑 놀면, 다음날은 친구 B랑 논다. 친구 A는 내 사촌동생들과 단짝이 되고 싶어 했으나, 다음날 친구 B랑 노는 친구들을 보면서 상처를 받는 것이다. 물론, 내 사촌동생들이 그 친구 A를 보고 모른척한다는 것이 아니다. 대다수의 친구들이 단짝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 흐름에 따르지 않은 내 사촌동생들은 의도치 않게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언젠간 헤어질 것을 안다.

한두 명이랑만 노는 것보다는 여러 명과 노는 것이 좋다. 누구에게 제일 친하다는 뭐 이런 걸로 집착해서도 안된다. 친구란 딱히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니까. 나는 20대 중반이고 이 나이가 돼서야 겨우 머리가 깨닫고 마음이 그것을 따라갔지만, 문제는 사촌동생들은 초등학생이란 것! 저런 생각을 하는 초등학생이 얼마나 되겠나. 게다가 딱히 내 사촌동생들도 저렇게까지 깊은 생각을 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 같지 않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단짝이란 뭐가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같이 행동하는 친구를 뜻했던 것 같다. 급식을 먹거나, 매점을 가거나, 수업을 이동할 때 굳이 “같이 갈까?”하고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같이 가는 그 관계가 정말 중요했다. 정확히는 편했다. 대학생이 되면 그 관계는 수업 관련 정보를 알 수 있는 적당히 친한 동기 정도로 변한다. 권위가 내려갔다면 내려갔다고 할 수 있겠다. 아니면 다들 대학생이 되어서야 자신이 ‘단짝’이라고 불렀던 주변 사람들을 조금 내려놓을 정도로 성숙해지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대학생쯤 그걸 알게 된다면, 내 사촌동생들은 그 시기가 꽤 빠른 편이다. 

정답이든 오답이든 그 스펙트럼은 3차원 그 이상이다!

사촌동생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결론적으로는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답이든 오답이든 상황에 따라 변하니까, 사촌동생들의 나이 때에서는 ‘단짝’이라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사촌동생들의 쿨한 방식은 상처도 덜 받고 나쁘지 않다. 친구 A였던 나는 나보다 10살은 어린 동생들이 부럽다. 숙모는 꽤 걱정을 하시던데, 그게 자기 혼자 고쳐서 되는 문제가 아니니까. 참 어렵다. 그냥 최대한 상처를 덜 받고 고등학교까지 가길 바래줄 뿐이다. ‘단짝’에 집착할 수 있는 나이도 그때뿐이니까, 그걸 즐겨줬으면 하는 바램도 있고. 뭐 이러니저러니해도 그냥 본인들이 겪고 성장해나가야 할 문제니까. 

굳이 친구관계가 아니더라도 그때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은 대부분 그렇게 중요하거나 의미가 있던 것들은 아니었지만 좋은 추억이 있다면 괜찮다. 그냥, 다시 생각했을 때 미소를 지을만한 일이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물론 이런 말들은 머릿속으로만 하고 정작 숙모에게 하지 못했다. 도움이 되지 않는 조카라서 죄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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