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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Oct 13. 2018

어쩌다가 '아싸'야?

인싸가 되지 못한 이유까지 해명해야 하나요.

요즘 시험덕에 그림을 못 그린다
'아싸' 되면 어떻게 하지?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친구들이 서로에게 겁을 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아웃사이더의 줄임말 아싸. 인사이더의 줄임말 인싸. 그때는 아싸라는 단어가 범법자가 되는 것 같아서 어찌나 무서웠던지! 인싸라는 단어는 재밌기라도 하지(야 요즘 인싸는 상하이 스파이시 치킨버거 콤보를 상스치콤이라고 부른데!) 아싸라는 단어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분하지만 몇 년째 대학을 다니면서 학과는 물론 서울 자체에서도 말 붙일 사람이 없는 나는 아싸 중에 아싸라는 진단을 받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단어가 정이 가지 않는 이유는 친구나 애인 등이 없는 사람들을 낙오자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재수 없기 때문이다.


전공시험 작년 기출문제를 안 갖고 있다고? 그건 너희 인간성에 문제가 있는 거야. 대학 이 정도 다니면서 그걸 얻을 정도의 사람도 못 만든 사람은 내가 D나 F를 줘서라도 졸업 안 시킬 거야.



F를 받아서 재수강하고 있는 수업 중에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 학과는 그냥 공부 내용 자체가 어렵고(영어랑 한국어랑 수식이랑 외계어가 섞여있는데 가까스로 해석해도 뭔말인지 모름), 시험문제도 항상 새로워지고(늘 짜릿해! 역학이 최고야!) 그 덕에 나같이 ‘인간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겐 다행히도 개인의 역량에 따라 달린 학과이다. (능력이 안 되면 본인이 아무리 잘나도 실패한다.) 물론 정보력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하지만 학과 성적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본인이 그만큼 뛰어다니면 아슬아슬하게 얻을 수 있다. 학과 성적은 그냥 본인이 공부하거나 머리가 좋거나 해야 하고. 웬만한 교수님들은 형평성을 위해 작년이나 재작년 기출문제를 올려주지만, 이 과목은 올려주지 않는다., 우리 분반의 교수님이 위와 같은 이유로 반대를 하셨기 때문이란다.

진지하게 고민중이다.

나는 작년 기출이 있었다. 재수강이니까. 그러다가 궁금해졌다. 

내가 같이 밥 먹을 동기가 있었다면, 그래서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고 그 원인에 집착하다 우울증이 심각해지지 않았다면, 작년 기출이 있었다면, 재수강을 하지 않았을까?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까?


인간관계를 만들기에 실패를 하고 힘들어했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기출을 얻을 정도의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정말 많이 노력했을 것이다.

 꾸준히 사람들을 만나고 웃으면서 그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가기 싫은 모임에도 나가고, 그만큼 베풀었기에 옆에 사람이 있다. 예전에는 그저 운이 좋아서 그 사람들은 친구가 있다고 믿었는데, 운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운이 없으면 시작도 할 수 없는 것이 인맥이다.


그냥 이건, 삶을 이루는 많은 ‘분야’ 중에 고작 하나인 게 아닐까?

 내가 일본어는 할 줄 알지만 중국어는 아무리 공부해도 잘 안 되는 것처럼 그냥 잘 하는 사람이 있고 못 하는 사람이 있는 노력 하면 되는 ‘분야’인 것이다. 

다만, 이 분야는 이 사회에서는 절대적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잘 하는 사람에게, 노력했던 사람에게 칭찬과 격려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거나 실패한 사람에게 비난을 하는 하는 인맥 만들기. 사회성 기타 등등으로 표현되는 이 분야.

물론 중요하지만 유독 한국은(이렇게 말하기엔 나도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 적은 없다만) 친구와 연애 등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집착하는 것 같다. 그런 관계가 적거나 없는 사람들을 세상을 살아가기에 부족한 사람이라고 비난한다. 그 비난은 당연히 본인에게도 향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뒤늦게 자존감을 높이기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고, 사실은 우리의 목을 조르고 있었나? 아무튼, 그만큼 그동안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했나 보다.

그게 나야.

어떤 분야든, 그게 무엇이든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에 대한 시선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간관계는 못 하는 사람에게만 시선이 향한다. 


연애라도 하지 그래. 친구 왜 안 만들어? 그러면 그쪽이 제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애인을 소개하여 주실래요? 자신이 같이 해 주지도 않으면서 상대방에게는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어떤가? 그런 내가 지금 당신의 눈 앞에 있다. 연애 못 하고 친구가 없다는 이유로 내가 병에 걸려 죽었는가? 체포되었는가? 아니다. 나는 당신의 눈 앞에서 살아있다. 많이 힘들어하고 있지만 남들이 하는 일을 당연하게 하면서. 아침을 맞이하고 학교를 가고 도서관에 가고. 

세미나에서 우연히 들은 이야기가 있다. 강사님은 졸업과 동시에 입사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자퇴하거나 졸업이 늦춰지거나 여하튼 입사를 못 한 동기들이 있었다. 그런데 5년 정도가 지난 후, 각자 자신의 위치에 있더란다. 그때도 자신의 위치를 못 찾은 사람도 또 시간이 지나면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사람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앉을자리가 있다. 

인간성에 문제가 있어서 바로 옆에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는 우리들도 그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자리도 결코 혼자 온 것이 아니다. 뭔가 모자라고 절대 저렇게 되고 싶지 않은 ‘아싸’들도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고, 민폐도 끼치고, 도움을 받고 도와주고 피해를 받으면서 이 자리에 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가야 할 곳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걱정과 조언의 가면으로 비웃고 비난하는 그들이 말하는 사회성이 진짜 사회성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을 볼 때도 돈을 내는데, 타인을 보며 ‘그래도 쟤보다는 낫지’하면서 인생에 위안을 공짜로 받을 셈인가? 위안받아도 되지만 티는 내지 말아 주십시오. 티를 낼 거면 돈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요. 

언제적 그림이냐.... 거의 1년 전 그림이다

그냥, 우린 서툰 것이다. 

누구는 잘 하는 사람이 있고 누구는 못 하는 것처럼, 인간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도 하나의 ‘분야’이다. 내가 중국어를 못 한다고 손가락질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본어를 잘 한다고 칭찬은 받는다. 중국어를 못 해서 중국어 교양수업에서 성적은 잘 받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관계를 못 만들어서 외로울 수 있다. 정보 얻기도 쉽지 않겠지. 잘 못하기 때문에 받는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잘 하고 싶으면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감수해야 한다. 

외국어 공부랑 뭐가 다른가. 그러니까 비난받을 일도, 비난할 일도 기가 죽을 일도 이상한 일도 아니다. 남들이 너무 요란을 떠는 것뿐이다. 그럼, 요란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도, 그대도 아직 살아있고 살아가고 살아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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