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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Dec 31. 2018

오해로 인해 받은 동경

사실 나도 너희와 다르지 않다.

인정한다. 그래, 나는 특정 사람이 잘 꼬이는 팔자다.


그걸 20대 중반이 끝나가는 지금, 한 해의 마지막까지 몇시간 안 남은 지금!에서야 받아들이기로 했다. 예전에는 내가 저지른 잘못이 있는지 무언가 그럴 수 밖에 없던 상황이 있는지 철저히 분석하려고 했는데, 인과관계를 따져보려고 했는데! 그냥 팔자라고 생각하면서 포기했다.


요즘들어 왜인지 갑작스레 나에게 집착하는 친구가 있다. 카카오톡 프로필사진이나 상태메세지 등이 나와 관련된 것일때도 있었고, 정말 뜬금없이 "빨리 와라(나와 달리 그 친구는 본가에 남아있다), 다음달에 보자(내가 계절학기 중이라서 이번달에 내려가지 못 하기에)"같은 메세지를 보내기도 한다.  
스쳐가듯이 알려줬던 계절학기 끝나는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는지, 다른 친구에게서 "oo(그 친구)가 너 o월o일에 내려온다고 하던데?"하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난 내려간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단편적인 나의 정보만으로 혼자서 무언가를 확신하고 남들에게 나를 잘 아는 양 말하고 다니는 패턴은 한두번 겪은것이 아니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가 할 줄 아는건 이것뿐인디?


친한 친구들에게 하소연하자 이런 말이 돌아온다.


야...너 항상 그런 애들이 꼬이더라....?


 말을 듣자 간담이 서늘해지면서 좀 더 침착해졌다. 그랬지 .


나는 친구들에게 스펙타클하게 산다 말 자주 들었는데, 그 중 8할은 주변에 있는 특이한 사람들 덕이다(그렇게 믿고있다).

 어딜가든 따라오며 누군가와 이야기하면 어떻게든 그 이야기를 들으려했 그 친구들. 만약 자신들이 생각한 모습과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하거나, 내가 그들을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면 더욱 집착하던 그들.

뭘 기대하는겨

어렸을때는 그저 맞받아치거나 도망친다고 정신이 없었는데 나이가 들고 이젠 물리적인 거리가 멀다보니(떨어져 있는게 정말 큰 영향을 준다) 진지하게 그들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그들은 나를 좋아한것이 아니다. 나랑 진심으로 친해지고 싶었던 것도 아닐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그들이 되고싶던,갖고싶던 모습을 내가 갖고 있다고 오해했다.



그래서 그들은 남들에게 나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 같다. 확신할 수 있는 근거? 지금 내 카카오톡 배경사진만 바뀌어도 누구와 어딜 놀러갔는지 물어보는 그 친구를 포함한 그들은 이런 말을 자주했다.


너 인기 진짜 많아.

내가 아는 애 중 네가 제일 친구 많아.

너는 완전 엔터테이너. 다들 그렇게 생각할걸?

난 이렇게 사는 사람인데요?

오해다. 아마 그들은 내가 그렇게 보이는 순간을 우연히 목격했겠지. 그리고 그건 그들 그 모습을 원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정작, 나와 친해지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 (심술은 부렸다.) 그렇기에 저런 결론에 이르렀다.

, 그리 저 결론 내릴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나도 예전에 그랬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모습을 가진 친구에게 거의 10년을 바쳤다. 그때의 내 모습과 그들의 모습 비슷했을것이다. 암울하게도..


그런데 내가 원했던 그 친구의 모습은, 그들이 원한 내 모습과는 정 반대다.
  청춘을 바쳤던 친구는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고 담담하고 멍하게 자신의 일만 했다. 난 그 모습을 갖고싶었다. 그 친구는 잔인하게 날아갔고 나는 남겨졌다. 그건 나에게 구원이었다. 나는 나일 뿐이고 내 주변엔 굳이 그녀가 아니더라도 소중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아프게 알게 되었다. 가끔은 충격이 필요하나보다. 그 정도 충격이 아니었으면 난 여전히 한심하게 그녀의 연락처만 보고있었을것이다. 끔찍하군!


집에 내려갈때마다 조용히 조심히 내려가려니 너무 피곤하다. 계절학기가 끝나고 아예 집에 있게 되면 또 무슨 핑계 그 친구를 위로해줘야하나.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비극은, 우린 잘 맞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난 그렇게까지 만나고싶지 않다는 것도.


언젠 그들도 내가 별거 아닌 사람이었다고  깨닫는 날이 오겠지. 아무리 내가 그 친구가 오해하는 그 모습을 부정하고 다시 말해줘도 들리지 않나보다. 웬만하면 그 친구에게 내가 받았던 큰 충격과 상처를 주고싶지않다.


그래도 내가 그랬듯이, 그 친구도 나와 나에게 집착했던 과거의 자신을 비웃으며  시원하게 날아갈 날이 있기를. 자기자신을 좋아하게 되길. 


많은 새해소망 중 하나로 내가 빌어주겠다. 영광인 줄 알아라,이 피곤한 짜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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