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화력따윈 없는 아웃사이더가 느낀 대학생활.
나는 턱없이 경험이 부족한 20대 후반이다. 그러나 질릴 정도로 고민하고 생각했기에 나름 통달했다고 자신하는 분야는 있다. (사실 분야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하지만). 대학 졸업을 앞둔 4학년이기에 통달할 수 있는 ‘대학 내 인간관계’다.
초, 중, 고 그리고 가족들이나 친척 등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왔지만 대학교의 인간관계가 가장 기이하게 느껴진다. 급식은 혼자 먹기 힘들지만, 학식은 혼자 먹기 쉬운 것처럼 교복을 입은 나날들이 더 힘들 것 같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대학에서 인간관계가 가장 힘들었다.
물론 힘들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초, 중, 고등학교처럼 30명 이내의 사람들과 1년 동안 같이 있는 과는 많지 않다. 공과대학이나 경영대, 법대처럼 학생수가 많은 ‘대형과’는 4년 동안 수많은 수업을 들어도 두 번 이상 만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고등학교처럼 30명 정도인 소수과라고 해도 힘든 건 마찬가지. 게다가 동갑이나 또래를 넘어 다양한 나이 때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데 익숙한 신입생은 많이 없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옆자리의 사람에게 “야, 국어(선생님) 오면 깨워줘.”라고 말할 수 있었으니까!
이렇게 낯설고 새로워서 서툴 수밖에 없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많은 사람이! ‘서글서글, 인싸스러운’ 성격을 강요당한다.
그 과정에서 환영받지 못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소외감이나, 자신이 이상한지 걱정한다. 나 또한 그랬다.
나 빼고 다 친해진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친구를 만들지 못한 내가 부끄럽고 한심해서 자책하다가 끝없는 우울증을 얻었다. 관계를 만들지 못한 사람만 유독 낙오자로 몰아가는 이 모순을 나는 견딜 수 없었다. 관계라는 건, 한 사람만의 노력만으론 부족한데 말이다.
4,5년 정도 대학을 다니면서 알게 된 대학 인간관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동아리든 과 안에서 놀든 술은 잘하면 유리하다. 술자리의 시끌벅적하고 정신없음을 좋아할수록 좋다. 여학생들은 여자, 남자 섞인 자리에서는 굳이 필름 끊길 때까지 마시지 말라. 친구가 걱정한다.
2. 오티 안 가도 친해질 사람은 충분히 친해진다.
3. 수업을 들으면서 친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4. 특히 대형과의 경우, 그래도 같은 과, 같은 전공을 듣기 때문에 수업 때 만나는 사람들과 친해질 거라는 오해를 받곤 한다. 적어도 우리 과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공대의 경우, 여학생들 수가 적기 때문에 여학생들은 여학생들과 친해지면 정말 편하다.
5. 대형과의 경우, 과 안의 소모임이 여러 개가 있다. 그중 하나 진득하게 나가야 한다.
6. 중앙동아리처럼 여러 과의 학생들이 모이는 곳에서도 친해질 수 있다. 대신, 중앙동아리들은 보통 실적은 내야 하기 때문에 활동이 힘들다. 이 또한 진득하게 나가야 친구가 생긴다.
7. 동기, 선배 정말 중요하다. 혼자 정보를 얻기 위해 뛰어다니는 건 서럽기도 하고 힘들다.
8. 신입생 때 생긴 사람들이 끝까지 간다. 그 사람들이 의리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때 친해지지 않으면 다들 다른 사람들을 받아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것들을 무난하게 지키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아닌 사람도 있다. 그게 나다. 나는 이 8가지 전부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런데 4학년이다. 무슨 말이냐고? 이런 사람도 4학년이 된다! 신입생 때는 조금이라도 흐름에서 빗겨나가면 무슨 큰일이 날 것처럼 무섭다. 대학생활이 끝난 것 마냥 절망스럽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어찌어찌 대학생활을 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나처럼 위의 8가지와는 전부 정반대로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도 있다.
나는,
1. 술을 못하고 술자리를 싫어하기에 오티 때도 그냥 잠을 자러 갔으며,
2. 오티에 갔지만 혼자 다녔고 아무하고도 친해지지 못했고,
3. 수업을 들으면서 누군가와 친해지려고 노력해보았으나, 이미 친구가 충분히 있는 그들과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자 말을 주고받을 사람 정도는 생겼다.
4. 4학년인데 과에 아는 사람 아무도 없다.
5. 소모임 하나도 안 들어갔다. 같이 들어갈 사람이 없었다.
6. 중앙동아리, 친구 사귀러 들어갔다가 활동 힘들어서 다 도망쳤다.
7. 동기, 선배 없어서 혼자 과사무실에 전화하고 인터넷으로 정보 얻었다. 잘못된 정보나 누락된 정보 덕에 몇 번이나 학기가 엎어질뻔했다. 그런데, 다 수습되었다. 웬만해서는 다 해결된다.
8. 신입생 때, 충분히 사람을 사귀지 못했다. 겨우 남았던 동기 언니는 사이비 종교로 나를 팔아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만족한다.
물론, 친해지고 싶었던 같은 과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웃으며 지나가는 걸 보면 4학년인 지금도 마음 한쪽이 쓰리다. 그러나 만족한다. 대학교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을 사귀기가 힘들다. 원래 다니던 사람들이 고정되면 그들과 몇 년을 함께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더라도 친구 정도로 발전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다양한 학교, 학과 나이 때의 사람들을 많이 사귀었다.
작년, 연합동아리의 사람들과 친해졌다. 그중 한두 명에게 용기 내어서 개인 약속을 잡았고 친해졌다. 활동 요일만 기다리면서 즐겁게 주말을 맞는다.
3년 전, 잠깐 학교에서 활동을 같이 했던 동기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3년 전에는 그렇게 서로 긴장하고 어색했던 우리가 몇 년이 지나고 각자 어깨의 힘을 풀고 만났다.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고등학생 때 친했던 친구들이 대학원, 편입, 전과, n 수, 이사 등으로 서울로 오면서 만나기가 훨씬 자주 만나고 유명한 맛집들도 같이 다녔다.
지금은 망해버린 재작년에 들었던 동아리의 한 친구에게 연락이 와서 친해졌다.
보시다시피, 전부 운이 좋아서 생긴 인연들이다. 그러니까 만약 이 글을 읽는 그대가 친화력이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운 신입생이든, 몇 년 지났는데도 친구가 안 생기는 재학생이든, 대학에서 사람과 즐겁게 지낸 기억이 없는 졸업생이든, 나는 그대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나도 그랬다.
그대는 이상하지 않다. 이상해도 된다. 사람 성격 다양한데, 그중 한 성격만 정답이라고 외치는 분위기가 어찌 옳겠는가? 나의 헛질들로 그대가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는다면 정말 기쁘겠다.
그런데, 딱 하나만 더 얘기하고 싶다. 4년의 대학생활 중, 가장 만족스러운 인간관계망을 가진 나의 지금은 전과 확실한 차이가 있다.
어깨의 힘을 뺐다. 긴장을 풀고 사람을 마주했다.
긴장을 하면서 사람을 대하면 상대방에게도 그 긴장이 느껴진다. 이 사람이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마음을 안 줄까 봐 불안하다. 그리고 여전히 그렇다. 그래도 대화할 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낼 때, 먼저 약속을 제안할 때 심호흡을 한번 하고 어깨의 힘을 뺐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굉장히 잘 보일 필요도 없다. 지금 내 옆의 사람들은 정말 소중하지만 하루아침에 남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떠났다고 너무 절망하지 말자. 우리의 인생엔 누구도 올 수 있고 누구도 갈 수 있다. 밉보일까 봐 너무 기죽지 말라. 혼자라서 민망해도 용기 있게 동아리의 문을 두드려보자. 학과 모임에 진득하게 붙어 있어 보자. 옆자리 사람에게 말을 한번 걸어보자. 이 모든 게 힘들면 안 해도 된다. 민폐 정도가 아니라면 이보다 더 나대도 된다. 대신, 사람 때문에 힘들면 어깨의 힘을 풀고, 자기 자신에게 더 잘해주고 집중하라. 그럼 언젠가 그대는 그대가 가진 관계망에 만족할 것이다. 남들에겐 정답인 게 나에겐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남들이 규정지어놓은 '올바른 인간관계망'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내 많은 친구들 엄청 좋아! 행복해! 정도는 아니어도 나쁘지 않네? 정도면 된다.
오늘도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 내일은 중학교 동창이 날 만나러 온다. 내일도 나쁘지 않은 하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