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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Oct 23. 2018

글을 쓰고 있다.

내가요? 여기서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다가 글을 쓰고 있지?


원래 그림과 만화만 주구장창 존재할 예정이었던 여기에 글이 50%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물론 글이랑 만화나 그림이 다 한 포스팅에 섞여있지만.)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원래 나는 글쓰기와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책 읽는 것은 좋아했지만, 독후감이나 일기 같은 것을 써서 상을 받아본 적도 없었다. 그 흔한 글쓰기 상이 없는 생활기록부가 내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이다.

글을 써야지! 해서 글을 쓴 것은 아니다.

요즘 그린 것이 없어서 예전 낙서라도 총총

브런치는 이렇게 살다가는 죽을 것만 같아서 만들었다. 운이 좋게 만들 수 있었다.

친구들이든 가족들이든 그 누구에게 털어놓아도 소용없었고, 털어놓을수록 외로웠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털어놓을수록 솔직해지지 못하고 숨기는 이야기만 늘어났고, 나를 알아달라고 할수록 아무도 나를 모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도 그들의 아픔을 10%도 이해하지 못하고 알아주지 못할 거란 확신도. 사람들은 너무 바빴고, 내가 할 일도 쌓여있었다. 같이 출발했던 친구들은 달려가는데 나는 뒷걸음질 쳤다. 적극적으로 도망도 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녹아있었다.

그렇게 브런치는 나 자신만이라도 내 투정을 들어주기 위해, 아무도 없는 대나무 숲에서 아무 말이나 소리치는 기분으로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그림도 글도 여전히 자기 멋대로고 그 어떤 통일성도 테마도 없다. 반성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히히. 안 바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답답한 마음은 전부 일기에 적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괴롭고 그것을 정리하려 해서 되려 더 괴로워졌을 때, 그저 정리하려 하지 않고 미친 듯이 써 내려갔다. 그러니까 언제부터인가 생각의 늪에서 조금 자유로워졌다. 그렇다. 나는 정말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서 글을 썼다.

그림은 아무래도 응축해야 하는 에너지가 있고, 결과에 대한 욕 심덕에 과정도 괴로울 때가 있었는데, 글은 내가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그렇게 큰 욕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냥, 아무도 듣지 않아도 되고, 아무도 안 들어준 이야기를 나를 위해 했다. 힘든 이야기를 할 때조차 남의 눈치를 봤던 대화와는 다르게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정말 온전히 나의 하루를  더 연장시키기 위해 썼다.

솔직히, 쓰고 난 직후 엄청난 성취감이나 후련함도 없었다. 가끔 내 글을 보면서 정말 의식의 흐름이구나, 문장도 이상하구나 정말.... 글 못 쓴다! 할 뿐이다.

그렇게 조금씩 쓰면서 정말 예상도 못 하게 반응도 얻고, 응원도 받았다. 내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생각들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외로웠다. 그런데 나와 같은 사람들도 이 세상에는 많았다. 또한 내 주변의 사람들도 나와 다를 바가 없이 힘들어한다. 그것을 브런치를 하고 1년이 넘게 지나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올해는 작년보다는 좀 더 잘 지내고 있다. 물론, 이 사회에서 말하는 '정상적'인 단계에는 조금도 미치지 못한다. 나의 우울은 여전하고 집중력도 친화력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고 원하는 완성도의 그림이나 글도 전혀 못 내고 있으며 바로 옆에 대화를 나눌 사람도 별로 없다. 이렇게 적고 보니 많이 암울하다. 암울하면 어떤가, 그것이 나인걸. 나만 받아들이면 아무 문제없는 나의 현재 모습이다.

 이 변화가 내가 글을 써서인지 그림을 그려서인지 아니면 심리상담을 받아서인지는 모른다. 그리고 정확히 나도 내가 어떤 부분에서 작년보다 잘 살고 있는지 표현할 수가 없다. 적어도, 작년의 나는 내가 이렇게 활발하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 했다. 미래의 내가 무언가에 만족하면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기쁘지 않은가!

불면증 때문에 잠을 못 이룰 때, 잠에 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고 원인 분석을 하던 나에게 상담 선생님이 해 주셨던 말.

뭘 어떻게 하려고 하니까 그렇지.

사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많은 것들은 그저 흘러가면서 자연스레 일상이 되고 과거가 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 너무 큰 무게와 의미를 둔다. 그래서 뭐라도 어떻게든 해 보려고! 이게 무엇인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남들은 어떻게 했는지! 참고가 아닌 부담을 갖고! 그럴수록 더 안되고! 총체적 난국이고!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렇게 중요한 것은 없다. 많은 의미를 둘 필요도 없다. 그 결과로, 나는 요즘 눈만 감으면 자고 틈틈이 그림을 그리고, 지금은 글을 쓰고 있다. 내 것이 아니었던 그 모든 것이 나에게 녹아있다. 그러니까 내일은, 내가 동경했던 것이 녹아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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