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를 탄 네 덕에 깨달은 소중함.
“야, 너 A랑 아직 연락해?”
오랜만에 만난 친구 B가 물었다. 흠, 오랜만에 듣는 이름 A. 그녀는 초,중,고,대학교 새내기때까지 가장 자주 만나던 친구였다. 하지만 나는 항상 A와의 마지막을 예상하곤 했다. A는 좋게 말하면 다른 사람의 모든 점을 편견없이 받아주는 친구였다. 그건 깊게 들어가보면 그저 “남에게 관심도 감정도 갖지 않는” 모습이었다. A에게 다른 사람이란 아무것도 아니고 마치 NPC(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조작하지 않는 캐릭터. 여기서는 그냥 배경취급, 이란 의미로 썼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연락도 그녀가 나에게 전화를 주겠다고 하고는 지금까지 하지 않아서 끊겼다. 당시에 화를 내는 문자도 보내고 전화도 해 보았으나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
“아니, 나 A랑은 딱히 좋지 않게 끊겨서.” 라고 하니까, B는 예상했다고 한다. A의 그 배려없는 성격은 대학에서도 여전해서, 많은 이들에게 민폐를 끼치고는 갑자기 남자친구와 함께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모순된 이야기지만 지금은 A에게 감사한다. A에게 집착하고 있던, 세상에는 가장 친한 친구 하나면 되고 그 사람에게 버림받지만 않으면 된다는 나의 세계는 부숴졌다.
깨지고 나서 나온 세계는,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충격이었다. A에게서 벗어난 후에야 비로소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의외로 나 같은 놈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몇명인가 있더라. 그 몇 명이 평생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잠깐 가는 길이 같아서, 어쩌다보니 내 곁에 있는, 어쩌면 딱히 서로가 특별할 것도 없던 그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신기하게도, 사람이 떠나면 사람이 온다.
친했던 동기가 알고보니 사이비종교로 나를 끌어들일려고 했다는 것을 알고 멀어졌을 때, 별 시덥잖은 이유로 연락을 먼저 해준 B였다. 많은 용기를 갖고 들어간 동아리가 잘 운영되지 않아서 나오게 되었을때는 또 다른 모임이 생겼다. 내가 한 것이라곤 그저 떠나가는 것을 막지 않고 오는 것도 막지 않은 것 뿐이다. 이렇게 담백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아니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건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때마다 A를 생각한다. 한때는 A를 많이 원망했었다. 네가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잘 알면서 그랬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건 궁금하지 않다. 중요한건 나에게 A는 소중했으며, A는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겨두고 갔다. 네가 아니었으면 난 여전히 한두명에게 엄청난 집착을 하면서 괴로워하고 괴롭혔겠지. 그렇다고 지금 사람에게 집착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친구들이 아니라 나 자신임을 알았다. 내 세상은 나 하나뿐이며 가끔 그런 이기적인 세상에 놀러오고 눌러앉다가 다시 돌아가는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그리고 모두가 돌아가서 혼자 남더라도 별 일은 아니라는 것도. A가 없는 세상은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그 세상보다 지금 이 세상이 훨씬 살만하다.
우린 서로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가 소중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