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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Nov 28. 2018

실망시키는 연습 중입니다. (1) 능력

실망하는 것은 굳이 연습하고 싶지 않다.

남을 실망시키는 연습을 하고 있다.

멀쩡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수 스펙이다.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들이 마음대로 기대하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그렇게 외치면서, 첫 번째로는 능력에 대한 기대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그린게 없어서 예전에 그린 것이라도 올린다. 글만 있으면 심심하니까!

“이거 기대하고 있어~”

“너 잘하잖아~”

요즘 날 따라오는 말들이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나, 시험을 쳤다고 해도 내 점수는  좋지 않다. 뒤에서 그 등수를 세는 것이 더 빠르다. 그러니까 저런 말들을 들으면 당장 그 자리를 박차고 도망치고 싶다.


이 세상에는 “기대를 받는 관상”이나 “성실하게 할 것 같은 관상”이 존재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스스로에게 많은 기대를 갖고 뭔가를 해도 잘 안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서 나 자신만 해도 기대를 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조금씩만 하려고 하는데, 어째서 남들에게 기대를 받고 있는 걸까? 난 정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교복을 입던 시절부터 왜인지 남들에게 많은 기대를 받았고, 그건 항상 나의 콤플렉스였다. 심지어 다들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입 밖으로 칭찬인지 부담일지 모를 무언가를 꺼낸다. 그 말을 듣는 사람도 생각을 해 달라고요!

일단, 나는 그 기대만큼 전혀 해내는 사람이 아니다. 성실하지도 않을뿐더러(최근에는 생일이라고 하루의 수업을 전부 다 째고 놀았다), 사회성도 전혀 없고(아는 사람 없어서 일주일 동안 말 안 하고 다녀도 잘 다닌다) 딱히 성과에 대한 열정도 없다.

나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는데.

그래, 인정한다. 예전에는 정말 욕심이 많았다. 어쩌면 여전히 그럴 것이다.

그것이 열정이 아니라 욕심이 되고, 노력의 과정이 괴로운 것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괴로워짐을 알게 되었고, 열심히 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나에게 과한 것을 기대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한때 나는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나 자신을 많이 탓했기 때문이다. 그게 너무 괴로웠다. 그래서 어떻게든 스스로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발버둥 치고 있는데, 왜 이런 말을 듣고 있는 것일까!


최근에는 시험공부도 성적을 잘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주변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했더라. 그 증거로, 공부를 하면서 모르는 내용 때문이 아니라 시험을 못 쳤을 때 교수님, 가족들, 친구들에게 받을 시선에 집중했었다. 열심히 한다고 난리란 난리는 다 피웠는데 사실 나는 헛똑똑이었고 알맹이가 없는 사람이다. 그것을 들키는 것이 두려워서 한때 나는 성실하다는 말도 혐오했다. 열심히는 하지만 어설픈 사람, 머리가 안 좋은 불쌍한 사람이라는 인식표가 내게 붙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남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까 봐 항상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러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나의 일상을 살았을 뿐이고, 내 한계도 아주 잘 알고 있는데! 그 이상을 하기 위해 노력할 열정도 없는데! 그리고 아직은 그런 나 자신이 한심한데! 오늘도 지나가다가 교수님께 그런 말을 뜬금없이(!) 들었다.

기대하고 있어~ 잘해, 그 프로젝트!
살려주세요....

이런 기대를 받다 보면, 나처럼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어디까지, 얼마나 하는지를 보게 된다. 그렇게 나와 그들을 끝도 없이 비교하면서 그들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에 절망한다.

오죽하면  요즘 나는 시험을 치는 날이 아니라, 시험 점수가 나왔을 때 교수님이 날 바라볼 그 순간을 버티는 것에 더 긴장한다.

모두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나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할 거야! 해도, 결국 누군가가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위축이 되어버리고 만다. 아니, 뭘 기대한다는 것이며 왜 기대하고 계신가요! 나도 나에게 바랄 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참 좋을 것 같다고요. 이게 짐이 된다면, 그리고 그 짐을 내가 버텨낼 의지가 없다면.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을 할 생각이 없다. 그저, 그들이 나에게 마음대로 기대하고 마음대로 실망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면, 나도 남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실망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이건, 딱히 도덕이나 윤리적, 배려의 측면에서 남을 상처 입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그들의 예상보다 좀 못할 뿐이다! 그러면, 마음을 좀 가볍게 먹어도 되지 않을까. 얼마든지 실망시키고 도망치고 싶다. 실망시키는 나 자신을 인정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언제까지고 나의 세상을 남들이 (심지어 의도하지 않았고 악의도 없는) 주도권을 가지게 둘 수는 없다. 만약, 그분들도 내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많이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당황스럽고 머쓱해하겠지.

그래, 물론 반성해야 할 것은 산더미다. 민망하기도 하다. 나도 잘하고 싶다. 하지만 이게 나의 최선인 것을. 내 실망을 견디는 것만 해도 힘든데, 남의 실망까지 가져다가 책임질 여력이 없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정말로.


내가 나를 진정으로 놓아준다면, 남들이 아무리 부담을 주더라도 나는 자유롭겠지. 그 연습을 하고 있다.

남들을 실망시키는 것에 주저함이 없어야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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