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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Dec 03. 2018

실망시키는 연습 중입니다.(2) 사람

실망시킬까 봐 온갖 착한 척을 해도 결국 고갈되는 것은 내 체력이었다.

남을 실망시키는 연습 중이다.

나의 성과가 아니라 인간성과 배려에 기대하고 오해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연습.



빨리 내려와!

오랜만에 집에 내려갔다. 생일도 있었고 겸사겸사 가족이랑 친구들도 볼 겸에. 그리고 다른 것을 다 뒤로 내팽겨두고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 위해서!

그러나 학기 중이니까 오래 있어봤자, 2일에서 3일. 가족들과 시간도 보내면서 무엇보다 내가 쉴 수 있어야 한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줄일 수 있는 것은 친구들과의 약속뿐이다. 뭔가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생각난 친구들도 한 명에서 두 명이다. 친구가 많은 것도 아니거니와 그 이상은 딱히 지금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정확하게는 싫은 친구들은 아니지만 그들은 다른 친구 한두 명에 비해서는 우선순위가 아래에 있었다.


 방학 때처럼 오랜 기간을 내려가 있으면 만날 수 있지만, 지금처럼 시간도 촉박하고 나 자신도 지쳐있는 상태에서 만나면 오히려 일이 되어버리는 그런 친구들. 그런 친구 중 한 명에게서 연락이 왔다. 빨리 내려오라고. 언제 내려올 거냐고.  심지어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도 빨리 오라고 되어있고 그녀의 프로필 사진과 배경 사진은 전부 나와 관련된 그림이나 사진이다. 이제 슬슬 압박을 받기 시작한다. 혹시라도 내려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니 알 확률은 낮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내가 먼저 나쁜 사람이” 되기엔 죽어도 싫은 어정쩡한 선함에 그 친구에게 내려간다고 이야기했다.

굉장히 기뻐하면서 계속 “다음 주에 보겠네!”,”내려왔어?” 같은 메시지를 보면 볼수록 어깨가 무거워진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만나기가 귀찮아서? 그런데  왜 모른 척 하지 못 했을까? 무엇이 걸렸기에?


일단 여기서는 솔직해져 보자.

친구란 관계는, 연인처럼 오늘부터 1일! 이제 헤어짐! 같은 관계가 아니다. 상대방은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나는 그 친구와 같이 있고 싶을 수도 있고, 반대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어지는 관계이다. 그 친구가 나를 좋아하는 것이 내가 그 친구를 좋아하는 것보다 크다고 해서 그것이 나의 권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좀 더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그 친구에게 굽신거리면서 들어갈 필요는 없다. (이 경우는 그럴 필요는 없어도 그렇게 되더라)

개인적인 방법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그 친구와는 더 친해지고 싶지 않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지표가 있다. 그건,

 그 친구와의 약속에 쓰는 돈과 시간이 얼마든 간에 아깝게 느껴지는가?

이다. 이건 굳이 시간을 내서 생각해보지 않아도 이미 느끼고 있다. 그래서 답은 본인이 이미 알고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집으로 내려간 기간에는 내 생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부담과 귀찮음과 책임감을 어깨에 가득 짊어지고 그 친구를 만난 날은 생일 당일이었다.

그 친구와 내가 포함된 단체 카카오톡이 있다. 평소에는 나의 카톡 배경 사진만 바뀌어도 금방 연락이 오는 그 친구들은, 내 생일날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려가서 만난 그 친구에게 생일이라고 이야기하자, 나중에 단체 카톡에 생일 축하인사가 올라왔다. 지금까지 조용하던 다른 친구들은 그 카톡을 보자마자 축하한다고 해 주었다.

내가 뭐라도 사달라고 할까 봐 두려웠던 것일까? 나는 적어도 개인적으로라도 성의 있게 축하해주길 바랬다. 돈을 쓰지 않더라도 말이다. (물론 그들은 나에게 받아먹을 것은 다 받아먹었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래인 친구들도 긴 메시지로 축하해주었다. 그러나 그 친구들은 그렇게 끝냈다. 그런데 나더러 계속 같이 여행을 가자고 한다.


나는 이제 너희에게 쓰는 돈은 커피값 4천 원, 카페에서 있을 3시간도 아까운데.

처음에 그들을 상처 입힐까 봐 전전긍긍했던 이유는 결국, 먼저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서였다.

그래서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명백하게 말할 수 있는 섭섭한 일'을 계속, 굳이, 꺼내어서 강조하고 있다. 핑계처럼. 잘못은 그 친구들이 먼저 한 것처럼.

누가 먼저 잘못한 것은 없다. 이 친구들이 나에게는 시간과 돈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은 나에게 그것들을 쓰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더 친해지고 싶지 않은 그들에게 억지로 맞추기 싫은 나의 잘못도 아니다. 잘못이어도 상관없고. 서로의 신호가 어긋난 것일 뿐이다.

 그 여행을 단칼에 거절하였다. 그들이 그랬듯이, 돈이 없다고도 했고 피곤하다고도 했다. 섭섭해하고 당황하는 친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친구들은 자기들은 쓰지 않은 신경을 내가 써 주기를 당연시하고 있구나. 자기들이 서울에 올라오면 당연히 내가 그들을 위해 시간을 낼 것이라고 아는구나. 내가 거절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거절은 그들에게만 당연했었고,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던 개념이었다.


결국 자신을 위해 거절한 사람이 나쁜 사람일 것이고, 상대방을 실망시킬 것이다. 자기만 아는 사람이라고 욕을 먹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그 누가 이기적으로 자기 자신만을 위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남을 실망시키는 연습을 하고 있다.

많이 거창한 것은 아니다. 그저 집중해야 할 곳에 집중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가진 얼마 안 되는 시간과 돈과 정성을, 나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겠다. 왜냐면 그들도 나에게 그들이 가진 것을 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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