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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Dec 20. 2018

실망시키는 연습 중입니다. (3) 나를!

나는 별게 없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없어, 나는.

오랜만에 통화를 하다가 울컥했다. 나한테 아무것도 없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서. 내 기대와는 다르게 갖고 있는 것이 적은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답은,

"아무것도 없으면 어때서. 아무것도 아니면 어때서 그래"



요즘 가장 열심히 하고 있다. 나 자신에게 실망하는 연습과 나 자신을 실망시키는 연습을! 마음껏 포기하고 도망치고 겁을 먹으면서 살기 위해.


나는 생각보다 남들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생각보다 능력이 좋지 않으며,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가 많다. 

나는 아직 대학생이며 별다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 않아서 용돈을 받아서 쓴다.

용돈을 받아서 쓰는데 아끼지 않고 간식이나 약속에도 펑펑 쓴다.

나는 내 생각보다 철이 없다. 고집도 세다. 그리고 강하지 않다. 

힘들면 도망친다. 어디 틀여 박혀서 회복될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늘어서 적으면서 엄청 상처 받을 줄 알았는데. 적고 보니까 의외로 별 게 아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평범한 사람의 특징을 늘어놓았다.


내 평범함을 견디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해서 얼마나 숨 막히게 살아왔는지. 내 일이 아닌 것들도 다 나의 부족함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부족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내 힘으로는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좋지 않은 환경이라는 것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친구가 나에게 연락하지 않으면 그게 성격이 좋지 않은 내 탓이라고 생각했고.

열심히 하지 않는(못하는) 나에게 실망했다!

학기 중에 마주하는 시험 하나하나에 예전에 수능을 앞둔 것과 비슷한 정도로 긴장하고 신경 쓰는 약한 정신에 실망했다.

그렇게 신경만 쓰고는 결국 일찍 잠이 들고 늦게 일어나서는 남들 다 달려가는데 혼자 남아서 어리둥절하게 있는 나를 실망했다.

왜 나는 저렇게 못하지?

나도 저 사람들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호감이어야 하고, 맡은 일을 척척 해내며, 독하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이 세상에 그냥 태어나서 살아나갈 뿐인데, 난 모든 것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그래서 나 자신이 무슨 세상을 구할 영웅인 것처럼 많은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의무라도 있는 것처럼. 사실은 그냥 덕질 말고는 관심 있는 분야도 없으면서. 그 외엔 딱히 정성을 쏟지도 않으면서.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하지 못한 자신에게 실망하면서 누구에게 하고 있는지 모를 핑계를 열심히 댔다. 

의미부여는 기뻐할 곳에만 하기로.

나는 진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그래도 된다. 다들 태어날 때 역할을 하나씩 가지고 태어난다는데, 하늘이 멋대로 만들어준 역할이라면 애쓰지 않아도 세상이 나를 그 역할로 이끌어주겠지. 그 외엔 아무것도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아니 그것조차 성가시다. 못할 수도 있지 않나?


생각보다 별 게 아닌 나 자신을 실망시키고 있다. 나에게 실망하고 나를 실망시키는 연습을 하고 있다. 원래 기대는 저버려야 한다. 기대하지 않기란 힘드니까, 대신 실망시키는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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