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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Sep 28. 2019

시간을 이겨내다.

힘든 시간을 '과거'로 만들어버리셨군요. 축하합니다!

이 케이크로 주세요! 초는 안 주셔도 돼요!

어제 내 생애 첫 번째 이력서를 제출했다! (물론 글 쓰고 있는 지금과는 시간 차이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력서인 데다가 외국 기업이라서 인터넷에서 참고할 수 있는 정보가 적었다. 나라마다 좋아하는 사람이 다르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렇게나 다른 문항을 요구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가장 날 괴롭게 한 건, 외국어로 무려 '이력서'를 적어야 하나는 점! 이래저래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데, 어제 제출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나에게 선물을 주겠다!라고 외치면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항상 도서관이나 학교에서 집으로 터덜터덜 걷다 보면, 거리에 케이크나 선물용 빵, 쿠키 세트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집에 가는 그 길에 케이크(조각 말고 한 판)를 들고 걷기였다. 그런데 누군가의 생일을 케이크를 들고 가서 직접 축하해 줄 일이 별로 없다 보니까, 결국 몇 년째 시도도 못 했는데.... 오늘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집 가서 조각으로 안 자르고 홀 그대로 내가 다 먹겠다!

왜 케이크 선물을 했냐고? 아직 붙은 것도 아닌데? 물론 맞다. 지금까지 나는 항상 축하할 일이 있어야만 나 자신에게 보상을 줬다. 예를 들면 시험이 끝나서 노는 것이 아니고 시험 느낌이 좋다거나, 시험 점수가 좋아야만 놀러 가고 맛있는 것을 사 먹었다. 이걸 다시 생각해 본 계기는 어머니와의 대화였다. 그 날은 수강신청 전 날이었다. 수강신청을 매번 실패한 나는 항상 수강신청 기간마다 밤을 새울 정도로 신경이 날카로웠고 마음고생을 했다. 그때 엄마랑 이런 대화를 했다.

나 내일 치킨 먹으려고. 내일 수강신청 끝나고. 

그래? 좋지. 수강 신청할 때까지 마음고생했으니까.

수강신청이 잘 되어서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고생했으니까"라고?


맞아. 그렇지. 내일 치킨을 시키는 건, 확정이야. 잘 되면 잘 되었다고 시킬 거고 못 되면 날 위로하기 위해 시킬 거야. 수강신청 직전까지 마음고생을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지금은 내 인생에서, 이겨낸다는 단어를 새로 쓰고 있다.

이겨낸다 =  그 미쳐버린 시간을 보냈다. 과거로 만들었다.

시간에 굳이 ‘미쳐버린’이란 단어를 적은 이유는 내가 우울증에 잡혀 살던 시간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그건 시간이라기보단 기간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매우 길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우울증이고 약을 먹고살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훨씬 안정적이다. 그때는 시간이 너무 무겁고 무서웠다. 1분 1초, 시침과 분침이 가까워질 때마다 내 목도 조여왔다. 마치 나의 목이 시침과 분침 사이에 끼어있는 기분이었다. 조금 과격한 표현을 쓰자면, 시침과 분침이 겹칠 때, 내 목이 뎅강 날아갈까 봐 무서웠다. 시침과 분침이 일치하면 0도가 되어서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새로운 360도가 생겼다. 0도가 됨과 동시에 360가 새로 생겼고, 계속 반복되었다.

작년에 전공과목 시험을 완전히 망친 적이 있었다. 그 시험을 너무 못 봐서 그다음 시험을 잘 쳐도 f가 나올지도 모를 정도로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었다. 공부에 집중은 당연히 안 되고, 그냥 시험을 치고 싶지 않았다. 몇 번이고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만약 이 시험을 100점을 맞아서 f를 면하고 잘해서 b까지 받았다고 치자. 그래야만 '이겨냈다'라고 할 수 있을까? 100점을 맞는 결과를 내야만 내가 괴로워한 시간은 가치를 부여받는 걸까? 그러면… 너무 힘들지 않은가. 

시험장까지만 가자. 시험은 저녁 6시, 시험 장소는 어느 건물 어느 층. 내가 6시에 그 강의실 안으로만 들어가면, 이긴 것이다. 나의 승리다. 이 괴로운 시간은 그 순간부터 과거가 된다. 

시험장에 들어가면 다신 나올 수 없으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험지에 뭐라도 쓰겠지.

그래도 지금 이 죽을 것 같은 시간은 과거가 되면 그 힘이 없어진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기 직전까지 긴장돼서 죽을 것 같지만 막상 타고 나올 때는, 5분 전의 긴장은 1도 기억이 안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우리는 그때 허세를 부린다고 "별 거 아니네! 한번 더 타자!" 했다가 다시 후회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나는 눈을 꼭 감고 시험장으로 달려갔다. 내가 이겼다. 이제부터 내가 괴로워했던 시간은 과거가 되어 나에게 어떤 힘도 행사하지 못할 것이다. 이겨냈다. 축하할 일이다. 결과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새로운 360도를 얻었다! 

나는 시간을 버텨내고 보낼 때마다 스스로를 축하한다. 이번에도 시간을 보냈어! 내가 이겨냈다니까?! 그러니까 오늘은 맛있는 것을 사 먹자. 좋아하는 카페를 가자. 늦잠을 자자. 


시침과 분침은 가위 날이 아니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일 뿐이다. 오늘도 시간을 보낸 우리에게 선물을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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