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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Jan 29. 2020

방황하는 사람의 책 추천.

"그리고 하루 매 시간을 놀라움의 연속으로 살아가리라"-아크라 문서

힘들다. 방황 중이다. 아니, 힘들어할 힘도 방황할 힘도 없다. 부유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찾아가는 책들이 있다.


책을 읽는 스타일은 정말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마음에 드는 책은 몇 번이고 읽는다. 특히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는 페이지를 주로 읽는데, 힘들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읽는 책들이 있다. 전부 유명한 책이고, 파울로 코엘료의 책이 많아서 조금 민망하지만, 모든 게 허무할 때 처음부터 읽는 나의 책들을 소개한다. 나를 구원해주거나 나에게 파이팅을 외치는 것이 아닌, 그저 조용히 나와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방황해주는,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다고 얘기해주는 나의 동지들을!


첫 번째 책, 삶의 거대한 무게에 짓눌린 나에게는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난 아직 살아있어."
"걸어야 할 때는 걷는 것, 그게 다지"
"내겐 오직 현재만이 있고 현재만이 내 유일한 관심거리요"
 - 사막의 낙타몰이꾼이 산티아고에게 한 말들.


너무 유명한 책이다. 그러나 읽을 때마다 그 시기, 상황에 따라 다른 구절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어린 왕자 같은 느낌의 책이다. 눈 앞이 캄캄할 때,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줄거리는 흔하다. 양치기 청년이 꿈을 위해 방황하고, 깨닫고, 성장하고, 퇴보했다가 전진했다가 하는 이야기. 그러나 파울로 코엘료의 책에서 이야기는 작가의 생각을 전하는 전달장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은 줄거리의 탄탄함이나, 이야기에 빠져드는 반전보다는 그 너머에 있는 작가가 해 주는 이야기를 찾기를 바란다. 

최근에 다시 처음부터 읽었는데, 이번에 나에게 다가온 것은 주인공이 만난 낙타몰이꾼의 대사였다. 낙타몰이꾼의 대사와 묘사되는 모습을 보면 '현재'에만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해서 지쳐있는 나에게 필요한 자세였다. 지금 현재도 막막하지만. 그래도 현재에 집중하면 지금 하고 있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어느새 어딘가로 향하게 된다. 선물하고 싶은 문장은,


떠나지 못하게 그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자신 말고는.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꿈을 보는 것은 아니었다.
비밀은 바로 현재에 있네. 현재에 주의를 기울이면, 현재를 더욱 나아지게 할 수 있지.



두 번째 책, 무언인가 읽는 것도 지친 나에게는

 [아크라 문서]- 파울로 코엘료

그들이 나를 미쳤다고 여기는 것이 재미있으니, 나는 계속 미소 지으리라. 내가 미소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내 몸을 파괴할 수는 있겠지만 당신들은 내 영혼은 건드리지 못합니다.' - 아크라 문서 문답 중.


아크라 문서 또한 이야기는 단순하다. 곧 일어날 전쟁과 재앙 때문에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마을 사람들이 지혜가 있는 사람에게(여기서는 '콥트인'이라고 나온다) 여러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듣는 이야기이다. 긴 이야기를 읽고 싶지 않을 때, 그 정도로 지칠 때 추천한다. 모두 병렬식 구조이기에 읽기 편하다. 재미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거칠게 표현할 때, '발에 묻은 먼지까지 털고 자리를 떠나라.'라는 말이 몇 번 나온다. 아마 작가의 최대 심한 말이 아닐까. 

선물하고 싶은 문장은

이 순간 혼자인 사람들은 "넌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라는 악마의 말에 겁먹을 필요가 없다.
힘든 시기를 겪오 있는 이는 이 점을 기억하라. 큰 전투에서는 몇 번 졌지만 그대들은 결국 살아남아 이 자리에 있다. 그것이 바로 승리다. 그러니 행복한 얼굴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축하하라.
이제 그런 편견, 두려움, 죄책감에서 벗어나라. 내일이나 오늘 밤이 아니라, 지금 당장 벗어나라.


세 번째 책, 나 자신마저 두려워진 나에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제가 나았나요?"
"아뇨, 부인은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다른'사람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닮기를 원하죠. 그건 내 관점에서 볼 때 심각한 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르다는 것이 심각한 병인가요?" 
 "모든 사람과 닮기를 자신에게 강요하는 게 심각한 거죠."
마리아와 이고르 박사의 대화 중.

이야기는 베로니카의 자살이 실패로 끝나며, 그가 '빌렌트'라는 폐쇄병동에 입원하면서 시작한다. 우울증, 공황장애, 조증 등의 다양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며, 모두 '미쳤다'는 이유로 입원을 '당한' 사람들이다. 한 때 우울증에 시달리던 내가 나를 인정하게 해 준 책. 그리고 병원에 가도록 도와준 책.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는 내가 살아가도록 만들어 준 고마운 책이다. 선물하고 싶은 문장은

"우리 모두 미친 사람들이야, 이런 식으로든 저런 식으로든." 
"아무도 무엇에 건 습관을 들여서는 안 돼. 에뒤아르, 봐. 난 또다시 태양, 산들, 그리고 삶의 골치 아픈 문제들까지 사랑하기 시작했어."
"난 다시 삶을 시작하고 싶어 에뒤아르. 항상 저질러버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용기가 없어 포기했던 실수들을 저질러가며. 공포가 다시 엄습해올 수도 있겠지만, 그걸로는 죽기도 기절하지도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 기껏해야 날 지치게 하는 게 고작일 그 공포와 맞서 싸워가며."


네 번째 책, 모든 것이 허무한 나에겐 

[데미안]- 헤르만 헤세

사람들에게 내 처지를 이해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인간의 본질을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얘기하고 싶다. -서론.

개인적으로 데미안은 서론을 가장 좋아한다. 싱클레어가 데미안, 피스토리우스, 데미안의 어머니 등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가며 방황하고, 깨닫고, 배우고, 가르쳐주는 모든 여정도 소중하지만, 그 모든 여정을 맛보기로 보여주는 것이 서론이기에. 이 또한 흔한 책이지만, 삶이 허무해질 때 다시 읽는 소중한 책이다.  선물하고 싶은 문장은

나 자신의 체험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니면, 또 나 스스로가 그것을 준수해 볼 수 있을 만큼 성숙한 다음이 아니면 함부로 충고를 해 줄 수는 없었다.
너는 잘못된 길을 걸었던 거야. 잘못된 길일뿐이야!
자네는 아마 언젠가 나를 다시 필요로 하겠지. 크로머나 그 밖의 일 때문에 말이야. 그땐 네가 나를 부른다고 해서 나는 그렇게 쉽게 말이나 기차를 타고 갈 수는 없을 거야. 그럴 때에는 자넨 자기 자신의 내부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내가 너의 내부에 있음을 알게 될 거야.

이 책들의 공통점은 삶을 너무 크게 혹은 너무 작게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삶에 짓눌리지 않게끔, 휘둘리지 않게끔 도와준다. 우린 너무 큰 것(자연재해 등)이나 작은 것(산들바람)은 딱히 의식하지 않으니까! 그저 세상에 태어난 이상, 더럽지만 자신의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발버둥 치고, 방황하고, 돌아오면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길 응원하는 책들이다. 그리고 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전부 문장 하나하나가 보석이라는 것. 삶이 지칠 때 꼭 메모하면서 읽길 추천한다. 맛난 커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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