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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Nov 19. 2017

내려놓기.

쉽지만 가장 어려운 그것

시험 전까지 계속 미루고 미루다가 거의 한달동안 하루에 0.001씩 손을 대서 겨우 완성한 하늘이다.

분명 나 좋으라고 그리는 그림인데도 내가 원하는 하늘이 안 나와서 몇번이고 고치고 원하는 그림들을 번갈아가면서 보다가 내가 원하는게 정작 무슨 하늘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펜을 놓은 적도 많았다.

완성한 하늘을 보니 내가 원하던 게 아니긴 하다.

내가 그리려고 했던 건 시리도록 맑아서 슬픈 하늘. 

그게 아니면 구름과 하늘이 엄청 화려한 하늘.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닌 무언가가 완성이 되었다.

그런데도, 결코 잘 한게 아닌데도 여기까지! 라고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꽤 괜찮네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하늘을 그릴때는 분명 이것보다 더 나아간 하늘이 되어 있을 거니까.

다음에 또 그리면 되지.

그게 지금이 아니라서 내가 지금 답답한 것 뿐이다.


내려놓기.

이 그림이 최근 2년새에 내가 처음으로 '내려놓는 것'을 성공한 사례이다.

사람이고 일이고 뭐 하나 내려놓을 수가 없다.

둘 중 하나를 내려놓으면 다시 하나가 올라온다.

가끔씩은 진짜 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건 사람의 축복을 위한 신이 아니라 계속 사람을 시험만 하는 신이라고 생각한다. 

어? 얘가 이걸 버티네? 그럼 이거 또 줘 봐야지. 헷 버텨보셈ㅋ 같은

학과 공부야, 내가 내 관리를 잘 못 한것. 그리고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양에 적응을 못한것. 그리고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운것. 모두 당연한 것이고, 나를 좀 더 토닥여 주면서 조금씩 친해지는 과정임을 안다.

하지만 최근의 인간관계란 대체 무엇일까.

나는 도저히 사람을 모르겠다.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전부!

다들 이렇게 사는 거면 얼마나 힘들게 사는 거지?

'내가 지금 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다시는 못 볼거야.'하는 조바심에 억지로 약속을 잡으려는 것에 지쳤다.

친구를 사귄다고 해도 사실상 다들 그렇게 남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거기에 상처받고.

이제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그 사람 반응이 시원찮으니까 다가가지 않게 된다.

분명히 나는 그때 즐거웠고 그 사람과 또 만나고 싶어서, 그래도 부담은 주고 싶지 않아서 

'시간될때 같이 가자'

라고 할때, 이 사람은 나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겠지, 라고 씁쓸하게 생각하는 것이 한두번이어야지.

그렇게 또 사람을 흘려보내고.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붙잡으면 너무 나만 들떠있고.

하지만 누구라도 또 만들지 않으면 나는 완전히 혼자라서. 

혼자인게 싫은 건지, 그냥 그 '지나친'사람들이 나에게 준 상처 때문에 혼자이고 싶은게 아닌건지.

아마 후자겠지. 나는 원래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성격이 아니다.

남에게 관심도 없다. 이런 내가 고등학교 친구들이 있는 이유는, 정말 운이 좋은 상황에 있었기 때문.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지지리도 운이 없는건가. 그때 나는 사람에 관한 운을 다 써 버린 것인가.

나에게 집중하기로 한 시간에 이미 남들 생각만 하고 있다.

그저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쉬운 사람들이기에. 하지만 내가 최선을 다 했는데도 나와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은 거면 내가 보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나 누군가에게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인 걸까.

너무 어렵다. 밥을 먹자고 먼저 톡을 보내려다가 마는 것도. 예전에 여기 같이 가기로 했는데, 그게 예의상 말일텐데 내가 부담주는 것도 싫고.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가야 하는거야!

아니, 그 이전에 내가 하고 싶은건 뭐지? 난 사실 어떻게 하고 싶은거지? 진짜 사람을 사귀고 싶은건가? 그런데 약속 많은건 사실 귀찮은데? 

나는 그냥, 내 가족. 그리고 내 친구들. 내가 정말 친하도 편한 사람들이 옆에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거기까지 기대하고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먼저 다가가기라도 하지 않으면 평생 여기서 사람을 사귈 기회따윈 없어지는 게 아닐까. 그 두려움에 성격에 안 맞게 계속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그리고 지친다. 

정말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도 그 사람도 내가 어딜 가자, 하는 약속을 그냥 넘기는 걸 보고, 언제갈까? 하고 묻는 것은 부담이 되겠구나 싶어서.

그냥 마냥 편한 관계가 어디있겠냐만은,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정말로. 알려고 하는 것도 내 욕심이겠지만. 왜 내가 계속 이런것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해주지 못해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아서 친구에게 딱히 말을 꺼낼 생각도 들지 않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까먹고 있었다. 내가 가장 신경쓰고 친해지고 싶어하는 사람과, 나를 이해해주려하고 내가 언제든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고민을 들어봐도 (내 입장이지만) 이미 내가 부러워 하는 것들 잘 하고 있고. 게다가 자신의 고민을 말할 때만 톡을 빠르게 답하고 어쩌다가 다른 이야기가 되면 12시간은 기본으로 나중에 답한다.

그냥 바빠서 그럴수도 있고 딱히 흥미가 생기지 않는 톡이야 읽고 나중에 답해야지 하다가 하루가 그냥 지나가버릴 수 있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너의 이야기에는 왜 이리 칼답이니 얘야.

생각해 보니 이 친구 거기서 잘 지낸다. 제일 잘 지낼 것이다. 한번도 못 지낸 적을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못 지내고 있는 나에게 흥미같은건 없을 것이다.  아니, 나와 비슷하게 못 지냈던 사람이라도 지금 자신의 환경이 좋으면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좋은 반면교사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 하지만 가끔은 부럽다. 나도 저렇게 아무렇게나 상처주고 그냥 내 앞길 잘 살고 싶다. 상처주고 싶지 않아도 충분히 상처를 주고 있는 마당인데, 그냥 저들처럼 상처주고 아무생각도 없고 싶다.


아는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다 무섭고 다 모르겠다.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겠다. 


이것도 내가 진정으로 마음을 내려놓으면. 욕심을 내려놓으면 이 그림처럼 '나쁘지 않네'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도. ;나쁘지 않네'를 향해서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걸까.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길지 않나, 이 시간이. 

지쳤다고 내려놓을 수 있지는 않구나.

내려놓는 것 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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