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것을 먹으며 웃는 나이인데, 하며 울었다.
넌 맛있는 것을 생각 없이 먹으면서 웃을 나이인데. 친구들과 웃고, 실수도 연달아서 하는 해맑아야 할 나이인데. 지금 너는 돈에 긍긍하면서 먹고 싶은 것을 아끼고 실수 하나를 할까 봐 온 몸에 긴장을 하고 있어. 그러면 안 되는 나이인데. 예쁜 나이인데, 그저 웃으며 살아가야 할 나이인데.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어.”
항상 고생은 젊어서 사서 하는 거라고 얘기해주던 엄마가 속내를 얘기하면서 울었다.
요즘 굉장히 피곤하다. 신체적으로는 괜찮지만, 정신적으로 피곤하다. 무언가 해결되는 것은 없는데 굉장히 빠르게 뭔가가 지나간다. 그 와중에 생각은 많아진다.
이럴 때 엄마가 말한 ‘맛있는 것을 먹으며 놀 때인데’를 떠올린다. 엄마를 위한다는 핑계로 돈을 아끼지 않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간다. 오늘은 비싼 커피에 디저트까지 시킬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한국에서 고생이 당연하지 않은 나이는 없었다. 10대는 수능 공부에 목숨을 거는 게 당연하고 20대는 취업과 스펙에 목숨을 걸어야 하고 30대 그 이후부터는 말할 것도 없이 다들 힘들어한다. 현재를 고생하면 미래에 편하다고 하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고생을 덜 해야 하지 않을까, 미래는 내 알 바 아니다.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니까.
취준생이기도 하지만 소중한 20대이기도 하니까. 너의 청춘을 갉아먹지 않으면 좋겠다.”
학교 커뮤니티에 졸업 전 취업을 실패했다고 징징거리는 글을 썼는데 달린 댓글이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에게 이 시기는 취업을 위해 전전긍긍해하면서 고생하고 잠도 못 자는 게 당연한 시기였다. 한 번도 ‘소중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꼭 청춘이라 불리는 20대가 아니어도, 지금 이 시간이 지나갈 것이기 때문에 소중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여겨본 적도 없었다. 나에게 고생은 당연했다. 힘든 게 당연했다. 하지만,
고생은 적당했으면 좋겠다. 그놈의 젊으면 사서 하는 고생. 안 사고 돈 아껴서 맛있는 거 사 먹고 싶다. 자소서를 위해 노트북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가도 가끔 고개를 들어 햇볕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싶다. 공고를 찾아보며 어깨가 무거워지다가도 귀여운 동물 사진을 보면서 다시 어깨를 으쓱하고 싶다. 1000원 더 싼 생필품을 사다가도 만원이 훌쩍 넘는 맛있는 음식을 사 먹고 싶다. 잠을 아끼며 공부하다가도 늦잠을 마구 자고 싶다. 내 나이답게 살고 싶다. 이 시기가 곧 지나갈 것이기에 소중하게 살고 싶다.
눈초리를 받아도 좋으니 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싶다.